'진정한 프로레슬러' WWE 에디게레로를 추억하다

뉴스엔 2015. 11. 1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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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김종효 기자]

에디 게레로가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었을까.

10년 전인 2005년 11월 13일(현지시간), WWE 팬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위대한 멕시코계 미국인 프로레슬러 에디 게레로(에두아르도 고리 게레로 엘런스)가 갑작스레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그간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알려진 지병도 없었기에, 게다가 사망 직전까지 훌륭한 경기를 보여준 에디 게레로의 사망 소식이었기에 더 큰 충격이었다. 에디 게레로는 사망 직전에도 WWE의 중요한 위치에서 맹활약했다. 그러던 에디 게레로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그 누구도 선뜻 믿기 힘든 얘기였다.

프로레슬링 전문 매체 프로레슬링 뉴스레터(http://wrestlingpaper.com)는 10년 전 세상을 떠났음에도 아직도 많은 팬들의 그리움을 자아내고 있는 프로레슬러 고(故) 에디 게레로와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WWE는 2006년 레슬매니아 22에서 '하트 브레이크 키드' 숀 마이클스와 에디 게레로의 맞대결을 추진 중이었다.

사실 WWE 각본진들은 에디 게레로와 언더테이커의 대립을 추진하려 했다. 에디 게레로와 언더테이커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WWE 스맥다운(Smackdown!)의 간판으로 활약했지만 이상하게도 서로 맞붙거나 같은 장면에 출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에디 게레로와 언더테이커는 지난 2004년 WWE PPV 아마게돈 메인 이벤트에서 마주한 적이 있었다. 싱글 경기는 아니었으나 4자간 경기에서 JBL, 부커 T 등과 함께 경기에 참여한 에디 게레로와 언더테이커는 시종일관 경기를 이끌어가며 베테랑다운 모습을 자랑했다. 이외에도 에디 게레로와 언더테이커의 합을 보기 위해 WWE는 방송 경기가 아닌, 라이브 이벤트에서 4차례나 맞붙도록 해 가능성을 시험했다.

WWE 각본진 출신의 코트 바워는 과거 MLW 팟캐스트에서 "당시 열린 에디 게레로와 언더테이커의 경기는 내가 본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였다"고 떠올렸다. 코트 바워는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은 에디 게레로가 언더테이커의 눈 부위를 집중 공략하며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면서도 언더테이커의 기량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회사 내부에서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WWE 빈스 맥맨 회장이 해당 아이디어를 반려시켜 둘의 맞대결이 레슬매니아를 비롯한 WWE PPV에서 이뤄질 수 없었다고 밝혔다.

대신 빈스 맥맨 회장은 에디 게레로와 숀 마이클스의 경기 성사를 위해 힘을 실었다. 에디 게레로와 숀 마이클스 역시 WWE에서 오랜 기간 동시기에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링 위에서 한 번도 맞붙은 적이 없었다. WWE는 당대의 테크니컬 레슬러인 에디 게레로와 명경기 제조기인 숀 마이클스가 맞붙는다면 최고의 경기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사실 에디 게레로와 숀 마이클스는 공통점이 많은 인생을 살았다. 둘 다 악동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거듭났다는 점 역시 같은 점이었다.

전(前) WWE 각본진들은 빈스 맥맨 회장 역시 숀 마이클스와 에디 게레로의 맞대결에 대한 아이디어를 좋아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WWE는 이 둘의 대결을 홍보하는 영상 제작까지 기획한 상태였다.

레슬매니아 22에서 치러질 두 선수의 대결에 대한 복선을 위해 WWE는 전년도인 2005년 11월 PPV(페이퍼뷰)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에디 게레로와 숀 마이클스가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것으로 대립을 암시하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에디 게레로는 WWE 서바이버 시리즈가 열리기 불과 2주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경기가 열렸다면 두고두고 회자됐을 명경기의 아이디어는 빛을 보지도 못한 채 에디 게레로와 함께 땅에 묻혔다.

에디 게레로는 지난 2005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사인은 심장마비였으며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이 좁아진 데다 심장 크기도 비대하게 커져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에디 게레로 사망 후 프로레슬러들의 스테로이드 및 진통제 사용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다. 에디 게레로 역시 교통사고 후유증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 진통제를 상습복용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에디 게레로 사망 후 WWE는 곧 내부 약물 검사 강화 및 유가족을 보살피겠다고 약속한 뒤 아내인 비키 게레로를 고용해 WWE RAW와 스맥다운 단장 역할을 맡겼다.

비키 게레로는 훗날 인터뷰에서 "지난 15년 동안 에디 게레로가 거실과 화장실에서 프로모를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에디 게레로의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본 것만으로도 자신이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키 게레로는 "에디 게레로는 정말로 자기 자신을 믿었고 링 위에서의 경기력에서도 그런 면이 나타났다. 그의 시합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또 "에디 게레로는 정말로 팬들을 존경했고 매 경기마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100%를 바쳤다. 팬들도 에디가 진심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프로레슬링은 에디 게레로에게 거대한 의미가 있었다.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이었다"고 에디 게레로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에디 게레로는 링 위에서 많은 웃음과 추억을 팬들에게 안겨준 프로레슬러로 기억되고 있다. AJ 리가 프로레슬링을 하게 된 계기라고 고백했던 레슬매니아 20에서의 꽃가루를 맞으며 승리를 만끽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고(하지만 에디 게레로 커리어에 있어서도 최고 명장면 중 하나인 당시 모습은 물의를 일으키고 사망한 고 크리스 벤와가 옆에 있어 안타깝게도 현재는 WWE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없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WWE 스맥다운을 대표하는 수퍼스타' 후보에 선정될 정도로 팬들이 그리워하는 프로레슬러다.

1995년 미국 관중 앞에서 처음 선보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에디 게레로를 대표하는 기술로, 공중에서 개구리가 도약하듯 몸을 움츠렸다 펴는 동작을 통해 일반 스플래시보다 더 큰 데미지를 주는 '프로그 스플래시'는 최근까지 세스 롤린스가 에디 게레로를 추모하는 의미로 사용해 팬들을 환호케 했다. 이렇듯 늘 최선을 다해 팬들을 위한 레슬링을 했던 진정한 프로레슬러 에디 게레로는 아직도 팬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사진=ⓒWWE.com)

김종효 phenom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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