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국정화는 '1948년 건국절' 보급하겠다는 발상"

권형진 기자 입력 2015. 11. 1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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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 강행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서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 주장 한상권 교수 "건국절은 헌법의 핵심 가치인 독립운동·민주화운동 역사 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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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형진 기자 =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으로, 북한은 국가 수립으로 서술되고 대한민국에 분단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1948년 8월15일은 정부 수립이 아니라 건국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하면서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으로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으로 기술된 역사교과서가 있다"고 한 것과 같은 지적이다.

새로 만드는 국정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을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나서 재확인해 준 셈이다. 이미 교육부가 지난 9월23일 고시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기존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꿨다. 뉴라이트에서 주장하는 '1948년 건국절'을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기술한 헌법 전문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11일 이에 대해 "'1948년 건국절' 주장의 핵심은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절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라며 "현재의 대한민국은 1919년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계가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정화 강행,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다. 이날 토론회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도종환·정진후 의원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주최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공동 주관했다.

발표자로 나선 박 실장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배경을 짚으며 "건국절 논란과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같이 간다고 보면 된다"며 "국정화는 기본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건국절을 보급하겠다는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박 실장에 따르면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들은 1945년 8월15일까지를 독립운동기, 1945년 8월15일 이후부터 1948년 8월15일까지를 건국운동기라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은 항일독립운동을 통해 새 정부를 수립한 게 아니라 3년간의 좌우 투쟁을 통해 새로 건국된 나라"라는 것이다.

박 실장은 "일제강점기에 친일반민족 행위를 했더라도 해방 후 반공투쟁을 하거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가하면 건국공로자가 된다"며 "결국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이들을 민족의 지도자로 둔갑시키려는 음모가 건국절 제정"이라고 주장했다.

'1948년 건국론'이 체계적인 모습을 갖추고 등장한 것은 이영훈 서울대 교수가 2006년 7월31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칼럼에서다. 이 칼럼에서 이 교수는 "나에게 1945년의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라고 말했다.

두번재 발표자로 나선 한상권 덕성여대 교수(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네트워크 상임대표)는 '1948년 건국절' 주장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뉴라이트 계열에서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해방의 타율성'이다. 우리 민족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연합국에 의해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 교수는 "우리 민족이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지 않고 친일파만 있었다면 굳이 조선에 독립을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 민족의 해방은 국내외에서 줄기차게 전개한 독립운동과 연합국의 군사적 승리에 힘입어 맞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공화주의와 민주주의, 평등주의를 핵심가치로 한 독립운동 이념은 제헌헌법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대한민국의 기본 가치가 되었다"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를 비롯해 뉴라이트에서 대한민국 건국 원년을 1919년이 아니라 1948년이라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실효적 지배를 통해 국가를 운영한 적도 없었다'는 점이다.

한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독립기념일은 실제 독립한 날이 아니라 독립 선언을 한 날로 삼는 게 대부분"이라고 반박했다.

미국도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1776년 7월4일을 독립기념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인정한 것은 7년 뒤인 1783년이다. 미국의 헌법이 선포된 것은 1788년이고, 조지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으로 미국 정부가 수립된 것은 1789년이다.

한 교수는 "실효적 지배를 기준으로 국가 독립을 판단할 경우 독립운동의 역사는 실종되고 우리가 주장하는 '식민지배는 불법이자 무효'라는 '불법무효설'은 설 땅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신 식민지배는 '합법적이고 유효하다'는 '합법정당론'으로 귀결될 우려가 있다.

한 교수는 "1948년 건국절 주장은 헌법의 핵심가치인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한꺼번에 소거(消去)해버리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라며 이렇게 지적했다. "건국절을 주장하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던 김구 선생 등 대다수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의 활동은 무시된다. 대신 임시정부에 의해 탄핵당했고 4·19혁명으로 하야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건국 대통령으로 추대된다."

한 교수는 "헌법은 항일독립운동, 반독재 민주화운동, 분단극복과 평화통일을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기본정신으로 삼고 있다"며 "1948년 건국절 주장은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며 헌법을 부정한다는 것은 곧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고 강조했다.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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