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A380 여기장 "'우웅' 소리 들으면 가슴 두근두근"

조지원 기자 2015. 11. 1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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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친 황연정 대한항공 A380 기장이 제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조지원 기자
대한항공 A380 외부 모습 /대한항공
황연정 기장

‘하늘을 나는 럭셔리 호텔.’

프랑스가 자랑하는 에어버스 A380의 별명이다. 날개 폭 80m, 길이 72m. 세계에서 가장 큰 최신 항공기다. 2층 구조로 최대 850명까지 태울 수 있다. 한 번 뜨면 1만3000km를 나는 A380에 현대 과학기술이 집약돼 있다. A380 1대 당 가격은 4억달러(한화 4600억원)를 넘는다.

전 세계 기장들에겐 꿈의 항공기다.

황연정(42) 기장은 대한항공에 네 명 뿐인 여기장이다. 그리고 A380을 모는 유일한 여성 기장이다.

지난 6일 대한항공 서소문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방금 프랑스 파리 비행을 마쳤다”는 그는 긴 머리에 검은색 코트를 입었다.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A380은 날개가 길어 착륙하는 모습을 보면 한 마리의 우아한 학(鶴)이 내려오는 것 같아요. 참 예쁘죠.”

황 기장이 손에 쥔 스마트폰 뒷면에 ‘A380 황연정’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5학년인 쌍둥이 남매가 학용품용 스티커로 만들어 줬다고 했다.

“A380을 조종한 지 2년이 다 되는데, 아직도 A380 모는 조종사란 사실이 실감이 안 날 때가 있어요. 여기장에겐 기회를 안 줄 것으로 생각했어요.”

여성 조종사가 흔한 외국에도 A380을 모는 여기장은 흔치 않다.

황 기장은 “루프트한자 소속 여자 기장이 어떤 기종을 모느냐고 해서 A380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더라구요. 프랑스 공항 직원들도 ‘정말 A380 기장이냐’고 자주 물어 봐요.”

‘호호’하고 웃는 그의 표정에서 자부심이 묻어 났다.

황 기장은 A380이 가진 매력을 ‘승객과의 소통’이라고 했다.

“비행 시간이 긴 A380은 승객과 소통할 시간이 있어요. 기내 방송을 듣고 기장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승객들이 보내는 응원 메시지도 꽤 됩니다.”

LA에서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한 여자 승객이 ‘목소리를 듣고 반가웠다. 같은 여자로서 자랑스럽다’는 편지를 전하기도 했다.

“승객들 메시지를 받을 때, ‘아, 이 직업, 선택하길 잘했구나’하고 생각합니다.”

황 기장이 처음부터 기장을 준비한 것은 아니다. 친구와 함께 인턴 승무원으로 근무하다 우연히 앉은 조종석에서 “내가 할 일은 비행기 조종”이란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고 했다. 승무원을 그만 두고 조종사 시험을 준비했다.

초대형 항공기를 조종하는 어려움은 없을까?

황 기장은 “연료 소비가 많은 A380 특성 때문에 신경 쓸 것이 많지만, 조종법은 예전에 탔던 A330과 비슷해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다”고 했다.

여성 기장의 장점을 물었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비행기 조종석에는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어요. 기장석과 부기장석만 있어요. 여자라서 더 세심하고 그런 것도 없어요. 만약 내가 세심하다면 어디까지나 개인 성격이죠.”

황 기장은 “‘여자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주변 시선을 견디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여기장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 만으로 안 됩니다. 무조건 제일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았어요. ‘스트레스 받아도 티 내지 말자. 절대 악쓰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지 말자.’ 사실 ‘의연한 척’하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어쩌면 지난 20년 동안 진정한 내 모습은 ‘척’하는 걸 연기하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황 기장은 “육아는 원래 여자 몫인데 잠깐 도와준다는 남편의 태도가 힘들 때가 많다. 육아는 공동으로 하는 것이지 잠시 맡아 주는 것이 아니다. 일하는 엄마는 다 힘들다”고 했다. 직장 맘들이 겪는 어려움은 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황 기장의 남편 김현석(47)씨도 같은 항공사 기장이다. 김·황 부부는 국내 첫 부부 기장이다.

황 기장의 목표는 뭘까?

“정년까지 사고 없이 안전하게 비행 하는 것, 지금보다 더 많은 여자 후배들을 받는 것.”

그는 “여자도 기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여학생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했다.

“비행기가 ‘우웅’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아, 하늘을 날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 낳고 몇 달 만에 조종석에 앉았는데, 손이 절로 움직였어요.”

그는 “항공사 근무 20년인데도 비행기 엔진 시동 소리를 들으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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