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의 사상, 진보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

입력 2015. 11. 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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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박성민의 2017오디세이아
(20) 역사전쟁2

느닷없는 국정교과서 ‘전쟁’은 대한민국이 ‘절대’를 신봉하는 사회임을 잊지 않도록 일깨워준다. 이 나라는 원래 국가주의·민족주의·반공주의·시장주의가 강하게 지배해 온 사회다. 때문에 익숙한 상태로 돌아가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상대주의·주관주의·회의주의로 특징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에 있었던 지난 20년이 오히려 예외적인 시기였다. 인식론적 관점에서 보면 역사전쟁은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싸움이다. ‘올바른’ 역사해석이 가능하다고 ‘믿는’ 쪽과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보는’ 쪽의 싸움이다. 단순한 정책의 싸움이 아니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이념과 사상의 싸움이다. 누가 이길까? 결국 ‘신념의 차이’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다.

동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냉전이 끝나가던 1989년 미국의 정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논문 ‘역사의 종언’을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발표하였다. 그는 이 논문을 발전시켜 1992년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이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원래 “역사는 끝났다”고 처음 선언한 사람은 프리드리히 헤겔이었다. 헤겔은 1806년 예나에서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에 대한 압도적 승리 이후에 근대 국민국가, 혁명적 이념, 근대 국민군의 위대함에 대한 경외심으로 그렇게 선언했다. 후쿠야마는 이 헤겔적 사관을 가져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이데올로기가 자유민주주의만 남게 되어 대항하는 이데올로기가 소멸하였다. 역사는 끝났다”고 단언한 것이다.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정당

냉전의 끝을 알리듯 독일은 통일되었고(1990년),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1991년). 절대적 이념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이 당선돼 ‘문민정부’가 출범하였다. 모든 것을 ‘북한’이라는 프리즘으로 보던 ‘안보 보수’(군인)의 시대가 끝나고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야”라는 ‘시장 보수’(기업)로 권력이 이동했다. 1992년 대선에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출마한 것은 그런 시대적 흐름의 상징이었다. ‘세계화’의 구호 속에 ‘개방’의 파도가 숨 돌릴 틈 없이 몰려왔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는 ‘생존’의 시대였다. 국가도 개인도 살아남아야 했다. 북한과 싸우고 가난과 싸웠다.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자”는 그 시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슬로건이다. 1980년대 ‘민주’의 시대를 거쳐 1990년대 ‘개방’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기술혁신과 세계화가 몰고 올 무한경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 채 김영삼 정부는 호기롭게 1994년 ‘세계화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통찰한 대로 그 당시에 세계화를 추진할 수 있는 나라는 ‘냉전의 빚을 받으려는’ 미국밖에는 없었다. 우리는 세계화 ‘대책’ 위원회가 아닌 ‘추진’ 위원회를 발족시킨 탓에 1997년 아이엠에프(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유난히 더웠던 1994년에, <응답하라 1994>가 잘 그려냈듯이 ‘가난’도 ‘독재’도 경험하지 않은 ‘신인류’가 태어나고 있었다. ‘소비자’의 정체성으로 무장한 이들은 절대적 ‘획일’을 거부하고 자유롭고 발랄한 상대적 ‘개성’에 열광하며 문화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의무보다는 권리를 먼저 찾는 세대의 등장이었다. 생존 시대의 주역인 60대 이상의 세대가 ‘국민’의 정체성으로 권리보다는 의무를 먼저 찾은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가치관과 인생관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두 세대의 세대전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자판기 커피’ 세대와 ‘에스프레소 커피’ 세대의 존재론적 충돌이다. 부모와 자식인 (20~)30대와 60(~70)대의 화해할 수 없는 전쟁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들은 어떤 질문에도 어긋나는 답을 한다. 역사전쟁도 결국은 세대전쟁이다.

아파트 가격 상승과 주식 활황으로 많은 국민이 중산층으로 진입하던 1990년 초, 두 세대 사이에 낀 (지금은 40~50대가 된) 민주화 세대는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1989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아닌 <상실의 시대>로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제목이 그 세대의 심리를 잘 포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즈음 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른을 맞았다. ‘살아서 서른을 맞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세대가 서른을 맞는다는 것은 실존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박일문은 1992년에 나온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서른, 불안한 나이다. 길고도 어두운 터널을 기어와 나는 이제 서른 살이 되었다. 나는 시궁쥐처럼 살았다. 겁 많고 비굴하고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나는 너무 늙어버렸다’고 했는데 그건 그 또래의 공통된 고백이었다.

1994년에 최영미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썼고 같은 해에 김광석도 ‘서른 즈음에’를 발표했다. 많은 이들이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를 읽던 시절이었다. 1994년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되었으나 김일성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무산되었다. 그해 10월에는 성수대교가 붕괴했고 1995년 6월에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곳곳에서 거품이 커지고 있었다. 1997년에는 결국 아이엠에프 금융지원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리와 건물이 무너지듯 경제와 나라가 붕괴됐다. 이런 거품 붕괴의 혼란을 이문열은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에서 잘 묘사했다.

민주화 세대가 겪은 정체성의 혼란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은 1992년에 나온 이인화의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대사 “나는 누구인가? 나는 잠들어 있는가, 혹은 깨어 있는가? 누구,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자 없는가?”에서 따온 이 제목은 20여년이 지나 오늘날 ‘새정치민주연합’에 던지는 핵심적 질문으로 돌아왔다. 새누리당은 ‘보수’ 정당이다. 정의당은 ‘진보’ 정당이다. 그렇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놀랍게도 아무도 모른다. 과연 새정치민주연합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정체성은 존재의 본질이다. 정체성이 흔들리면 존재는 방황한다. 특히 전쟁에서는 치명적 약점이다. 이슬람 국가 건국을 목표로 하는 아이에스(IS)는 종교적 신념이 최대 무기다. 사회주의자는 사상이 혁명의 무기다. 나치즘도 강한 민족주의가 정체성의 근원이다. 기독교가 유지되는 것도 절대적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이나 신앙으로 조직은 유지되는 것이다. 믿는 것이 있어야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왜 싸워야 하는가를 설명하지 못하는 조직은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사상이나 신앙이 강한 조직은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전사들이 많다. 사상이 없으면 조직은 유지될 수 없고, 조직이 무너지면 전략은 무의미하다. 그렇다고 확실한 이익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사상과 신앙이 있다면 ‘동지’가 될 수 있고, 이익을 공유한다면 ‘동업’이라도 하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은 그저 ‘동거’할 뿐이다.

새누리당은 ‘보수’ 정당이다
정의당은 ‘진보’ 정당이다
그렇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놀랍게도 아무도 모른다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생각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신념 없는 정당은 이길 수 없다
대중은 자신이 믿는 것 위해
모든 걸 거는 정당을 지지한다

홍수환의 두 다리를 기억하라

유명한 권투선수 홍수환이 ‘4전5기’의 신화를 쓸 수 있었던 것은 비록 네 번 다운은 됐지만 두 다리가 풀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정당에서 두 다리는 ‘정체성’과 ‘리더십’이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둘 다 위기다. 다리가 풀렸다. 당을 이끄는 지도자가 확실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지지자들은 동요하지 않는다. 와이에스(YS)가 3당 합당을 했을 때, 디제이(DJ)가 제이피(JP)와 손을 잡았을 때, 노무현이 정몽준과 후보단일화를 했을 때,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를 수용했을 때도 지지자들이 이탈하지 않은 것은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연대와 변화를 (선거 승리를 위한) 불가피한 전략으로 이해하고 용인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신념을 위해 싸웠기 때문에 지도자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전쟁은 사상과 신념의 산물이지 전략의 산물이 아니다. 한국의 보수는 북한·시장·역사에 대한 절대적 신념으로 무장한 채 ‘새로운 사상’(뉴라이트)의 실천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 근현대사에 던져진 세 가지 핵심 질문, 즉 왜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나(왜 조선은 쇠락하고 일본은 강대국이 되었나), 분단과 전쟁은 피할 수 없었나,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어떻게 경제 강국이 될 수 있었나에 대해 현재의 역사교과서가 충분한 답을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교과서를 읽어본 나도 그렇게 느꼈다.)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실증 연구 자료 등도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이는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보수의 거침없는 진격에는 ‘뉴라이트’의 사상·이론·자료가 뒤를 받치고 있다.

정당의 정체성은 사상·정책·조직문화로 구성된다. 많은 사람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지지율이 낮은 이유를 ‘조직문화’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싸가지가 없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한다’, ‘규율이 없다’, ‘배타적이다’, ‘계파갈등이 심하다’, ‘리더십이 약하다’, ‘운동권 문화다’, ‘부패에 대해 온정적이다’, ‘책임을 지지 않는다’,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다’ 등등인데 다 맞는 얘기다. 그렇지만 이런 분석으로는 새누리당의 높은 지지율을 설명하기 어렵다. 새누리당의 후진적 조직문화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진보적 의제로 싸우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 지지층이 결집하지 않아 지지율이 낮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협소한 지지층만을 향한 노선이 중도 유권자의 외면을 받고 있으니 그물을 넓게 쳐서 외연을 확대해야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당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정책만으로 지지를 확대하기는 쉽지 않다. 예컨대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곧바로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정당과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크다면 정체성을 벗어나는 정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이탈하는 유권자는 의외로 적다. 지지를 철회한 사람들이 정책적 이유를 내세운다 하더라도 숨겨진 이유는 다른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정책에 대한 찬반 여론이 정당이나 후보의 지지로 곧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 비중은 생각보다는 작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싸울 ‘사상과 이념’이 없는 것이다. 사상이 없으면 정체성이 흔들린다. 이것이 새누리당과의 결정적 차이다. 사상이 없으면 국가를 경영할 비전도, 목표도, 전략도 만들 수 없다. 이념이 없으면 정책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도 없다. 이론이 없으면 구체적 대안을 만들 수 없다. 사상이 없으면 적도 분명하지 않다. 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누구를 위해 싸우는지, 왜 싸우는지도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새누리당이 아닌 것?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종북’과 싸우면서 지지자에게 왜 싸워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설명하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은 지지층에게 그런 집요함을 보이지 않는다. 이념 싸움을 두려워한다. ‘사상운동’과 ‘이론투쟁’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믿는 ‘이념’이 없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자신들이 진보주의·자유주의·보수주의 혹은 다른 무엇을 사상으로 갖고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새누리당이 아닌 것’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아무도 새정치민주연합이 누구인가 말할 수 없다.

사상 없는 정당은 ‘강한 정당’도 될 수 없고, ‘대안 정당’도 될 수 없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폴 발레리는 “생각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통찰한 바 있다. 사상이 없는 정당을 ‘정치적 결사’로 부를 수는 없다. 신념 없는 정당이 사상과 이념에 투철한 ‘전사적 리더’가 이끄는 정당을 이길 수는 없다. 대중은 자신들이 믿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정당과 지도자를 지지한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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