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불복종 확산]"건국 쓸 수 없다면 '정부' 용어 빼자" 뉴라이트 주장, 새 교육과정에 수용
역사 국정교과서의 밑그림을 제공하는 새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서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이 기존 교육과정에 있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표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치도록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가 지난 9월23일 고시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포함된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이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을 수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1월24일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8번 문제. 보기로 제시된 1948년 8월15일 경축식 사진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표기돼 있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 제공 |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6일 교육부에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 8월 중순 편찬준거 개발 자문회의에 참석한 한 자문위원은 “○○○ 선생이 1948년 건국을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 표현하지 말고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하면 건국절을 주장하는 분들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며 “편수용어 검토 시 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초 열린 회의에서 또 다른 자문위원은 “ ‘성취기준’의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정’을 ‘대한민국의 수립 과정’으로 바꾸면 좋겠다”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은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건국이었으므로 ‘건국’이라는 용어를 쓸 수 없다면 ‘정부’라는 용어는 빼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검토의견서를 제출했다.
새 교육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뀐 것 자체가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을 수용한 결과였던 셈이다.
교육부는 지난 3일 확정고시 후 “교과서 편찬기준과 관련한 사항은 모두 국사편찬위원회에 일임했다”며 발을 뺀 상태다. 교육부 관계자는 “ ‘건국절’로 바꾸려면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나 각종 기념일 관련 규정을 다 바꿔야 한다”며 “사회적인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배 국편위원장은 지난달 12일 행정예고 때는 건국시점을 묻는 질문에 답을 피하다가 28일에는 ROTC중앙회 나라사랑 조찬포럼에 참석해 “임시정부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수립과의 관계를 정부가 나서서 명료하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황교안 총리는 지난 3일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하면서 ‘1948년 건국’ 개념으로 해야 한다는 취지로 화답한 바 있다.
역사학계의 대다수 학자들이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로 규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1919년 3·1운동 후 수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행정자치부 소속 국가기록원이 보유하고 있는 1948년 당시 경축식 사진도 ‘정부 수립’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이 사진은 국편이 주관한 지난 1월24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도 그대로 출제됐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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