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도시] 한국 마천루의 효시 삼일빌딩

조권형기자 2015. 10. 2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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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m 치솟은 검은빛 빌딩, 고도성장기 상징 역할하다
길이와 너비의 안정적인 비례감을 자랑하는 삼일빌딩. 검은빛의 단순하고 명료한 이 빌딩은 준공 이후 관광명소가 되기도 했다.
삼일빌딩 13층 사무실에서 내다본 삼일대로 전경. 전면이 유리창으로 이뤄져 외부를 향한 개방감이 뛰어나다.
철골과 유리의 단순 반복으로 단단하고 곧은 인상을 주는 삼일빌딩 외관.

1세대 건축가 김중업 설계
철골·유리 커튼월 기법 적용…단순하면서도 비례감 안정적

63빌딩 건립전 최고층 빌딩, 서울 관광명소로도 주목 받아

도시 풍경엔 영향 못 줬지만 우리 시대 단면 새겨져 있어
오피스빌딩 이상 가치 담겨

탑골공원에서 남산 쪽으로 걸어 내려오다 청계천변에 이르면 오른쪽에 직사각형의 검은빛 빌딩이 우뚝 서 있다. 철골조와 검은 색조 유리로 완성된 외관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다. 다른 빌딩들에 비해 그리 높지는 않지만 폭과 높이의 알맞은 비례로 안정되고 단단한 느낌이다. 지난 1970년에 준공된 이 빌딩은 한때 한국의 최고층빌딩(114m)이었으며 한국 최초의 현대적 빌딩이었다. 바로 서울 종로구 관철동 삼일빌딩이다.

동시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인 고(故) 김중업씨의 작품이면서 한국인이 최초로 설계한 초고층건물이다. 지은 지 올해로 45년째인 이 건물은 현재도 현대적 건물 틈에 끼여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인이 직접 설계한 최초의 초고층빌딩

1970년에 준공된 이 빌딩이 한국 최초의 현대적 빌딩으로 불리는 것은 철골과 유리로 지어 곧게 올린 최초의 건물이어서다. 이러한 공법으로 당시 20층대에 머물던 빌딩 층수를 31층으로 단숨에 끌어올렸다. 이후 1985년 여의도 63빌딩이 완공되기 전까지 국내 최고층빌딩 자리를 지켰다.

동시에 당시 국내 최초로 철골을 외벽으로 노출시킨 디테일과 철골 사이를 유리로 채운 커튼월(curtain wall)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세계적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가 지은 '시그램 빌딩'과 유사하다.

삼일빌딩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이렇다. 이 건물 발주자인 김두식 삼미그룹 회장이 당시 직접 김중업에게 의뢰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의뢰를 받고 세계의 오피스빌딩을 살피러 투어를 떠났다는 후문이다.

본인 자신도 고층 오피스 건축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 그런데 그 투어는 시그램 빌딩에서 멈췄다고 한다. 디테일과 단순함의 조화에서 너무나도 강한 인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 당시 일본에서 건축용 철강이 생산되기 시작해 국내도 고층빌딩 건립 여건이 무르익었다. 김중업은 단순해 보이는 이 빌딩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김중업은 "31층의 높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보를 뚫고 닥트를 배열해 날씬하게 보이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회고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김중업은 이 빌딩 완공 후 비운을 맞게 된다는 것. 그는 정부에 비판적인 언사를 했다는 이유로 설계비용도 다 받지 못한 채 1971년 프랑스로 강제출국당했다. 이에 대해 김중업은 "삼일빌딩의 설계비는 받지도 못했는데 엄청난 세금이 부과돼 성북동 집과 애써 모은 석물들이 몽땅 남의 손에 넘어갔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 도시 풍경에 영향 못 미친 마천루의 효시

삼일빌딩이 한국 마천루의 효시로 불리지만 이 빌딩이 도시에는 큰 영향을 못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옛 관광명소로는 널리 활용됐지만 삼일빌딩이 주변 빌딩이나 도시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삼일빌딩 뒤를 이어 63빌딩 등 국내 빌딩 시장에 본격적인 초고층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삼일빌딩의 미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작업은 거의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삼일빌딩 주변으로 전혀 다른 건물들이 들어선 것이 그중 한 예다.

정인하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삼일빌딩으로부터 최고층빌딩 자리를 넘겨받은 63빌딩이 또 다른 건축 방식으로 풀어간 것처럼 당시의 건축물은 다음 세대에 영향을 주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러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고도성장기 한국을 대표하는 건물이라는 점이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삼일빌딩에는 오피스건물의 용도를 뛰어넘은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이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40년이 넘은 낡은 건물이지만 오피스건물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40여년 이상을 지켜온 삼일빌딩의 미래다. 리모델링 등을 통해 전혀 다른 건물로 재탄생할 수 있어서다.

손진 이손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서소문에 붉은색 커튼월로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던 옛 효성빌딩이 하루아침에 리모델링의 이름 하에 무참히 짓밟혔다"며 "삼일빌딩은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물관이 된 공장, 거장 건축혼 품다


안양 김중업박물관
1950년대 설계한 건물 리모델링, 고인의 도면 모형 스케치 등 전시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이 자신을 기념하는 박물관이 된다면 어떨까.

바로 고(故) 김중업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가 지난 1950년대에 설계한 제약회사 유유산업의 사무동과 공장이 지난해 '김중업박물관'으로 탈바꿈해 오픈한 것. 안양시는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예술공원에 위치한 이들 건물과 부지를 사들여 박물관으로 리모델링했다. 건축가를 기리는 박물관은 이곳이 처음이다.

'김중업관'으로 꾸며진 2층 건물이 옛 유유산업 사무동이다. 기둥 역할을 하는 구조물을 외부로 노출시켜 내부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어진 건물이다. 내부 전시실에는 김중업이 남긴 건축 도면과 모형, 메모와 스케치 등이 갖춰졌다.

이곳의 백미는 김중업의 큰아들이 기부한 나무 모형들이다. 김중업의 대표작인 아현동 프랑스대사관(1961년 준공)과 신당동 서산부인과(1965년 준공), 그리고 지금은 철거된 제주대 본관(1964년) 모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공장동은 '문화누리관'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준공 당시 건물 입면에 국전 조각가 박종배의 모자상과 파이오니상 등 예술작품을 설치한 선구적 건물이다. 이곳에서는 예술교육과 특별전시가 이뤄진다. 옥상에 레스토랑과 옥상정원이 있어 도심 속 여유를 즐기기 좋다.
김중업박물관 김중업관

조권형기자 buzz@sed.co.kr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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