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불꽃처럼 살다간 '꽃과 여인'의 화가

한윤정 선임기자 2015. 10. 22.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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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6일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향년 91세로 임종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지난 8월20일 천 화백의 장녀 이혜선씨(71)가 유골함을 들고 미술관을 방문, ‘천경자 상설전시실’과 그의 작품이 보관된 수장고를 둘러봤다고 22일 밝혔다. 이씨는 당시 “병석에 계시던 어머니가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이후 병세가 악화돼 8월6일 새벽 의사가 보는 가운데 돌아가셨으며, 시신은 화장한 뒤 뉴욕 성당에서 장례를 치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20세기 한국화단 최고의 여성화가로, 꽃과 여인을 주로 그렸던 천 화백은 1991년 ‘미인도’ 위작 시비를 겪으면서 큰 충격을 받고 붓을 꺾었다. 1998년에는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뒤 큰딸이 사는 뉴욕으로 건너가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생활했다. 사망설이 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2월 대한민국예술원이 그의 근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하면서다. 예술원은 딸 이씨에게 공문을 보내 천 화백의 의료기록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씨는 이런 요구가 천 화백과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응하지 않고, 예술원 탈퇴서를 제출했다. 이씨는 2013년에는 천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이 관리 소홀로 훼손됐다며 반환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천경자 화백의 사망소식이 알려진 22일 관람객들이 천 화백의 기증작품으로 구성된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 상설전시관에 들어서고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천 화백 모녀와 계속 접촉해온 서울시 공무원 유모씨는 “투병과 사망 사실이 모두 이씨의 주장 그대로다”라며 “위작 시비에다 사망여부마저 의심하는 한국사회에 실망해 공개를 꺼리다가 이번에 밝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원은 이날 “고인의 본적지인 서울 강남구청에 8월6일자로 사망신고가 접수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도 상설전시실에 작은 빈소를 마련했다.

위작 시비 사건의 작품인 ‘미인도’(1977)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천 화백은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재학 시절 혼담을 피해 일본 유학을 떠나면서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일본화 고등과에서 모델을 관찰해 섬세하게 사생하는 법을 배운 그는 1942년 제22회 선전에서 ‘조부’로 입선한다. 그 후 귀국하던 길에 만난 일본 유학생과 결혼해 이혜선씨 등 1남1녀를 낳지만 곧 이혼하고, 6·25 때 여동생마저 잃은 뒤 유부남이던 신문기자와 사랑에 빠져 1남1녀를 더 얻는다.

‘생태’(1951)

천 화백은 이 같은 삶에서 나온 여인의 한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의 한국화로 그려 1960~1980년대 화단에서 여성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신의 화풍을 개척했다. 자신의 괴로움을 서로 몸을 꼰 뱀 35마리로 표현한 ‘생태’(1951)는 화단에 충격을 던지며 그의 존재를 알렸다. 또 ‘길례언니’(1973)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 ‘황금의 비’(1982) 등 몽환적인 여인이 등장하는 작품에는 고독과 애틋한 사랑,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초현실주의적 분위기, 이국에 대한 동경, 자신을 지탱하려는 나르시시즘이 복합적으로 묻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길례 언니’(1973)

천 화백은 파격적인 의상과 짙은 화장, 하이힐, 선글라스를 즐겼던 스타 화가로 김환기·박고석·김흥수 등 화단 동료들은 물론 박경리·한말숙·전숙희 등 여성문인, 조용필·이덕화·윤여정 등 연예인들과도 교류했다. 1972년 베트남전 기록화가로 참여했고 남태평양, 아프리카를 여행한 뒤 그림으로 남겼다. 글솜씨도 뛰어나 <여인소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등 10여권의 수필집을 냈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1976)

1954~1974년 홍익대 동양화과 교수를 지냈으며 서울시문화상(1971), 예술원상(1979), 은관문화훈장(1983)을 받았다. 미술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천 화백의 작품 중 최고가는 2009년 K옥션을 통해 거래된 ‘초원Ⅱ’(105.5×130㎝, 1978)로 12억원을 기록했다. 또 지난해 국내 경매시장에서 거래된 작품의 평균 호당 가격은 8250만원으로 박수근(1억7800만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한윤정 선임기자 yjh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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