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통념 바꾼 '윤내현 고조선 연구' 개정판

[한겨레] 고조선 연구(상)
윤내현 지음/만권당·3만5000원
1979년부터 1981년까지 하버드대 인류학과 객원교수로 가 있던 윤내현(76)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그곳 옌칭도서관에서 고조선에 관한 방대한 중국·북한·러시아 사료들과 논문·저서들을 만났다. 오늘날 한국(한반도) 고대사에 관한 우리의 인식 지평이 윤 교수와 당시 옌칭도서관 소장 자료들의 조우, 그 이후 그의 연구에 의해 차원을 달리하게 됐다는 점에서 그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윤 교수의 고조선 연구들이 여전히 논란거리라 할지라도, 그것이 고조선의 연대와 강역, 그리고 한4군의 위치, 한민족의 형성 등 한국 고대사 전반의 기존 연구나 학설, 관념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전혀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그의 두툼한 <고조선 연구>(1994)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고조선 연구>가 20년 만에 상(총론)·하(각론) 두 권짜리 개정판으로 다시 선보인다. 먼저 출간된 상권에서 이 원로학자는 “<한국고대사 신론>(1989) 출간 이래 필자는 다른 학자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으면서 필자의 주장에 잘못이 없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했다. 그 결과 기본 골격에는 크게 잘못이 없지만 부분적으로는 수정해야 할 점이 다소 있음을 발견했다”면서 수정작업을 거친 이 책 내용이 “고조선에 관한 필자의 최종 결론”이라고 밝혔다.
나름 치밀한 문헌고증과 고고학의 최신 성과들을 반영한 그의 파천황적 주장들은, 이제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새롭다. 예컨대 이런 내용들.
서기전 2333년 무렵 국가 단계로 진입한 고조선의 강역은 지금의 베이징 동쪽 난하로부터 동북쪽은 아르군 강과 흑룡강, 남으로는 한반도 남쪽 해안에 이르는 만주·한반도 전역에 걸쳐 있었다. 고조선이 기자조선으로 넘어가고 다시 위만조선을 거쳐 한4군으로 이어진다는 기존 통설은 잘못됐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한4군은 모두 고조선의 서쪽 변경지역인 베이징 인근 난하 동부지역, 요서지역에 있었으며, 주나라 망명객 기자의 조선은 서부 변경지역에 있던 고조선의 작은 거수국(제후국)에 지나지 않았다. 낙랑군 등 한4군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서지역에 있었다.
윤 교수는 한국 고대문화의 연원을 중국 황하유역이나 시베리아 등에서 찾는 통념화한 외부 전래설이 근거 없는 고정관념·선입견 탓이라 지적한다. 실제 고조선 지역의 신석기 시대 개시는 주변 지역보다 늦지 않았으며, 청동기 문화 개시 연대는 오히려 황하유역이나 시베리아 지역보다 앞선다는 걸 고고학적 발굴 및 연구들은 보여준다.
윤 교수는 고조선의 존재를 부인하고 한4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일제 식민사관 이래의 일본 학자들 ‘전통’을 경계하고, 만주에 대한 자국의 연고권을 주장하기 위해 만주를 한국사의 범주에서 제외하고 싶어하는 일본 학자들과 중국 동북공정 사관의 이해 일치를 다시 상기시킨다.
윤 교수는 그러나 ‘대백제’ 같은 ‘거대제국 고조선’ 주장은 배격한다. ‘상식’과 ‘통계적 사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헌·고고학적 고증 신봉자인 그를 이지린 등 북한 학자들 연구와 유사점이 있다거나 통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불신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또 다른 야만일 수 있다.
윤 교수의 견해를 비판하거나 반박하는 건 자유지만, 먼저 그가 이 책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제시해놓고 있는 고조선 연구 사료 판별법, 연구방법에 관한 예시들을 읽어 보라. 그러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박대통령 11년전 “만주군 박정희? 우리 군대 없었으니까”
■ 이재명 “내가 매표행위?…시작은 박 대통령 기초연금 공약”
■ 마지막 순간까지 평탄하지 못했던 미술계 거장 천경자
■ [화보] 죽음을 부르는 위험한 ‘셀카’…당신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 [화보] 영화 속 ‘배트맨’이 스크린 밖으로 나온다면…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