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와 한 끼] '크레이지 셰프' 최현석, 차가운 요리의 대가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음식을 담는 자루다. ...죽어 땅에 묻히는 순간 생전에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은 스러져도 인간이 먹었던 음식만큼은 자손의 단단함, 혹은 썩어 문드러진 뼈로 남는다.’-조지 오웰 1936년 작,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중에서
미래에 대한 식견이 탁월했던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조지 오웰은 정치인이나 시인, 주교의 동상은 있는데, 요리사나 베이컨 숙성 전문가, 농부의 동상이 없는 것을 개탄했다. 그로부터 80년 후, 여전히 노벨 요리상이 창설되진 않았지만, 요리사의 지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2015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요리사 전성 시대다. 자고 일어나면 요리 프로가 하나씩 생길 정도니 요리사가 사라지면, 미디어는 잠시 잠깐 카오스 상태에 빠질 지도 모를 일이다. 한적한 농촌이나 거친 바다에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는 tvN의 ‘삼시 세끼’부터, 식재료가 무질서하게 들어찬 도시인의 냉장고에서 15분 만에 한 끼를 뽑아내는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까지, 요리사가 등장하는 예능은 여전히 방영 중이거나 기획중이다.
‘셰프 한 끼’는 말 그대로 셰프와 그의 식당에서 한 끼를 먹으며 다양한 대화를 나누는 시리즈로 그 첫 주인공은 최현석이다.
최현석을 소개한다. 그는 세계 그 어느 곳보다도 요리사가 뜨는 이 도시에서도 가장 유명한 요리사다. 꼭 텔레비전이나 광고 출연이 아니더라도 누구 못지 않은 열정의 소유자이며(그는 주방에서뿐 아니라 로봇 수집이나 야구, 격투기에도 열을 올린다),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존재다(빈폴의 티셔츠 광고부터 홈플러스의 주방 세제광고까지). 차가운 파스타를 비롯한 1,000개가 넘는 창작 요리를 만들어서 크레이지 셰프로 불린다.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서 허세 넘치는 몸짓과 표정으로 요리해 ‘허셰프’라는 별명도 있다(그는 마치 마술사가 금가루를 뿌리듯이 소금을 뿌려댄다). 유학은 물론이고 학교에서 요리를 배운 적도 없다. 어릴 때부터 갈빗집에 가면 갈빗대가 뻐근해질 정도로 먹어야 후회가 없다, 는 과식을 조장하는 문화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호텔 주방장, 어머니는 한식당 찬모였다. 군대 제대 후 일거리를 찾다가 어려서부터 익숙했던 요리사를 택했다. 1995년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쿠치나’에 들어가 2004년 메인 셰프가 되었고, 2010년부터 ‘엘본더테이블’ 총괄 셰프를 맡고 있다.
앞으로 ‘셰프 한 끼’에서 기자와 동행해서 셰프들의 감춰진 면면을 들여다볼 셰프는 이유석이다.
요리사들의 술집으로 더 유명한 가스트로 펍(Gastropub, 요리가 훌륭한 선술집) ‘루이쌍끄’의 젊은 수장으로 프랑스 파리의 미슐랭 3 스타급 레스토랑부터 작은 비스트들을 거치면서 요리 수업을 받았다. 이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실력을 쌓은 후 도쿄에서의 미식 여행을 끝으로 2010년 압구정에서 프렌치 ‘심야 식당’ 루이 쌍끄를 오픈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예수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삶에서 실현하는 것이 목표인 이유석은 수란에 비벼 먹는 하몽(스페인산 생햄)과 볶은 양파를 닭 육수에 넣어 끓인 진국 어니언 수프로 쓰러져 가는 압구정 레스토랑 상권을 일으켜 세웠다. 최근, 급식 업체에 대량 공급될 ‘수란’ 개발로 특허까지 받아냈다.
추석 연휴 하루 전날 이유석과 나는 최현석이 총괄 셰프로 있는 가로수길 엘본더테이블을
찾았다. 이유석은 ‘수란’ 프로젝트와 ‘이유석의 이유식’ 책을 준비하느라, 약간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이었고, 최현석은 엘본더테이블로 몰려드는 점잖은 손님들의 저녁 오더를 정리하느라 날이 서 있었다.
엘본더테이블의 오픈 키친에는 헬퍼와 세컨드 쿡, 퍼스트 쿡, 메인 셰프들이 놀라운 분업으로 식재료를 다루고 있었다. 피가 흥건한 소고기, 빗소리를 내며 기름 속에서 끓고 있는 오징어, 달걀, 버섯, 올리브, 식초, 기름, 향료, 소금, 후추가 정리된 서랍이 사각사각 여닫히면, 파스타와 채소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 나는 샐러드로 변하고, 초콜릿 코트를 입은 푸아그라가 접시 위에 올려진다.
이곳의 요리사들은 팬을 모험적으로 끝까지 밀어붙인다. 더 강하게 더 뜨겁게!
커피 필터 같은 모자를 쓰고 흰옷을 입고 움직이는 요리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장신의 최현석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았다. 우리는 바에 앉아 오픈 주방의 스태프들을 관찰하며 이 활력 넘치는 ‘라이브쇼’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매니저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우리를 2층의 룸으로 안내했다. 신성한 레스토랑에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금기라는 듯.
최현석과 이유석은 앉자마자 뉴욕에서 미슐랭 2 스타를 받은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치열한 경쟁 때문에 모이면 서로를 씹어댄다는 소문과 달리 두 요리사의 화제는 훈훈했다.
“작년에 임정식이 크리스마스날 결혼해서 우리가 축가를 부르느라 한동안 모였었죠. ‘루이쌍끄’ 이유석이랑 ‘밍글스’의 강민구랑 나, 이렇게 셋이서 옴브레스라는 밴드를 결성해서 연습했죠. 나는 기타 치는 거 좋아하니까, 기타 치고. 크리스마스날 셰프들의 축가를 들으며 결혼하다니! 운도 좋아.” 최현석의 말에 이유석이 양념을 쳤다. “옴브레스여! 영원하라!”
그는 말하면서도 절도 있게 주문을 했다. “차가운 파스타 하나, 스테이크는 미디엄 레어 괜찮아요? 봉골레 리조또 이건 꼭 먹어봐. 튀김 요리 그리고 카프레제(식전 샐러드)로 브라따 치즈 샐러드는 서비스. 오케이?” 자신의 요리에 확신을 가진 남자의 주문은 매력적이다.
조선 비즈(이하 비즈) 뉴욕 트라이베카에 있는 임정식의 ‘정식당’을 가봤는데, 한식 식재료를 자유자재로 구사해서 양식 코스 안에 집어넣는데 놀랐어요. 뉴요커들 예약이 밀려서 당시에 자리도 간신히 잡았죠.
최현석(이하 현석) 임정식 요리 저도 먹어봤어요. 참 잘해요. 뭔가 거친듯하면서도 예민하고 대충 하는 듯하면서도 정교해. 임정식에게 고마운 게 엘본더테이블도 뉴욕에 레스토랑 내려고 했는데, 정식당이 한식 한류의 위상을 확실히 높여놨더라고.
비즈 이번에 한국판 미슐랭 가이드 격인 코릿(KorEat)에서 뽑은 레스토랑 50위 중에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가 1위, 임정식 셰프의 정식당이 2위를 했더군요.
현석 (당황하며) 엘본더테이블은 몇 위죠? 50위쯤 한 건가요? 등수도 안 올랐군. (헛기침하며) 생각해보니 제게도 심사위원 의뢰가 왔었던 것 같은데, 놓친 것 같아요.
비즈 자신이 안가서 순위에서 밀렸다고 생각하나요?
현석 (얼버무리며)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로비가 됐든, 연줄이 됐든 시대적으로 맞는 맛집이 선정됐다고 봐요. 유명세에는 다 이유가 있지요. 저는 제 요리에 자신이 있어요. 그나저나 루이쌍끄는 몇 위했죠?
이유석(이하 유석) 8위요. 하하.
현석 이 사람이 정말 장사를 재밌게 해요. 레스토랑들이 많이들 경직돼 있는데, 루이쌍끄는 심야식당 컨셉에 메뉴도 변화무쌍하죠.
테이블 위에 놓인 다섯 가지 소금의 맛을 보는 사이, 드디어 요리가 나왔다. 최현석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코릿 순위로 살짝 굳었던 표정이 음식이 나오자 여봐란듯이 부풀어 올랐다. 코릿 순위와는 별도로 실시간 맛집 랭킹 어플 ‘전국맛집 TOP1000’에서 선정한 스타 셰프 레스토랑 인기 순위에서 최현석의 엘본더테이블은 이연복의 목란, 정창욱의 비스트로 차우기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꽃이불을 덮은 얹은 수란 모양의 브라따 치즈 샐러드는 ‘접시꽃 당신’처럼 약간 팬시해 보였다.
“이 꽃은 식용 꽃이에요. 난꽃인데 한국에선 식용으로 안 나와서 화분 몇 개 놓고 따로 키운 거예요. 이 꽃이 식감만 있고 무향 무미 무취에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재료를 한꺼번에 같이 드시면 요리에서 꽃향기가 날 거예요. 눈에 보이는 걸 같이 드세요. 한꺼번에 소스까지. 유자와 바질이 만나서 꽃향기를 내죠. 그 안에 씹히는 말린 토마토가 베이스예요.”
이유석은 입안에서 가든파티가 펼쳐지는 것 같다, 고 너스레를 떨었다. 최현석은 입안 저쪽에서 활짝 피어나는 꽃향기를 맡아보라고, 그런데 그것은 사실 꽃향기가 아니라고 흥겹게 부추겼다.
두 번째 메뉴는 봉골레 리조또였다. 봉골레 리조또라는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이것 또한 최현석 스타일의 즐거운 함정이 있다. “아! 이거 너무 훌륭한데요!”라고 이유석은 지나치게 감동받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동의를 구했다.
그것은 파스타를 쌀알 크기로 잘게 잘라 만든 리조또였다.
‘접시꽃 당신’에 이어 ‘봉골레 리조또’에서 우리가 진짜 한 방 먹은 것 같은 표정을 짓자, 최현석이 드디어 허세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최현석의 테이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듯. 이 크레이지 셰프는 식재료의 이면을 보여주는 마술사가 되고 싶어한다.
“쌀로 리조토를 하면 20분 걸리는데, 쌀이 익을 동안 손님이 기다려주지 않죠. 미리 익혀놓으면 제대로 나오질 않고. 그런데 생 면은 아침에 뽑아놓고 3분만 익히면 돼요.” “익힘 정도가 아주 좋은데요.” 이유석은 자신이 만드는 ‘이유석의 이유식(그의 아이는 막 첫돌을 넘겼다.)’에 최현석이 이 요리를 콜라보레이션 해줄 것을 간절히 바라는 눈치였다. “알덴테로 삶은 면은 리조또와 파스타 사이에서 리듬을 타죠.”
도마 위에서 난타당한 링귀니에 이어 등장한 요리는 최현석의 시그니처와 다름없는 차가운 파스타다. 동료 요리사를 포함해 황홀한 표정의 식객들에게 둘러싸여, 최현석의 아드레날린 수치는 최고조로 올라갔다.
최현석은 저민 소고기와 채 썬 사과가 절도 있게 올라간 냉 파스타를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저어 집어 들었다. 그 모양이 꼭 조지 오웰이나 김훈의 원고를 다루는 것처럼 신중했다. 일종의 잔치 국수 면(카페리니)에 소금과 후추, 트뤼플(송로버섯) 오일을 섞어 비벼서 고기와 사과를 곁들여 먹는 그 콜드 파스타에는 최현석의 인생 역전이 담겨 있다.
요리 입문 11년 만에 최현석은 라쿠치나에서 독립해 ‘소노마벨리’라는 스테이크 하우스로 옮겼으나 안타깝게도 그 가게의 주인은 영양탕 가게를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3개월 만에 폐점이라는 쓴맛을 본 후, 그의 요리를 알아주는 한 블로거의 도움으로 테이스티 블루바드라는 레스토랑을 열어 진정한 자기 세계를 구사하기 시작한다.
차가운 파스타의 시조인 ‘콜드 캐비어 카펠리니’의 전설은 그때 시작되었다.
“바질 페스토에 냉 카펠리니를 비벼서 그 위에 캐비어를 쌓아올렸죠.” 그의 혁명적 유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국수처럼 짜서 석류알갱이를 연어 알처럼 쌓아올린 후 파스타 모양의 디저트를 내놓기도 했다.
재기발랄하게 형태를 위장하고, 과도하리만치 파격적인 요리법은 최현석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초콜릿을 입힌 푸아그라와 포기김치 모양의 엔다이브 샐러드, 간장 젤리를 덮은 삼겹살 수비드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비즈 이런 식으로 1000여 개의 요리를 만들어 냈단 말인가요? 메뉴 개발은 보통 기존의 있던 것들을 좀 더 새롭게 만들어 내는 식인데, 당신 방식은 정말 크레이지 하네요.
현석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 메뉴 개발을 하는데, 그릴 때 머릿 속에 예상한 맛이 그대로 나오는 편이에요. 김치 모양의 엔다이브 샐러드도 그래요. 엔다이브(지중해산 꽃상추의 일종)를 소금에 살짝 절여서 거기에 토마토 다져서 바질, 배 넣고 채우면 김치랑 똑같아요. 거기에 모차렐라 치즈를 곁들이면, 두부 김치 모양의 카프레제가 되는 거죠.
유석 실험 정신이 정말 탁월한데, 맛도 좋아요. 저는 메뉴 하나 만드는 데 한 달은 걸리는데 현석 형은 즉석에서 막 만들어내요.
현석 작곡도 심혈을 기울여 하는 게 있고 즉흥 연주도 있잖아. 저는 즉흥 연주에 강해요. 예전엔 매달 메뉴를 바꿨는데 요즘은 3개월에 한 번씩 바꿔요. 특별한 것들만 모아 드림팀을 짜서 나중에 해외에 레스토랑 낼 때 선보이려고요.
비즈 최현석 셰프의 메뉴가 도시적이고, 고정 관념을 깨는 파격의 감칠맛이 있다면, 이유석 셰프의 메뉴는 시골풍의 서정적인 맛이 있어요. 스페인 보케리아 시장 이름을 딴 보케리아는 수란과 하몽, 큼직한 느타리버섯을 버무려낸 조화가 일품이에요. 재료의 맛이 정직하게 느껴져요.
현석 그래서 루이쌍끄는 늘 장사가 잘 되죠(웃음). 술 마시면서 요리도 먹는, 가스트로 펍은 이유석이 처음 했을 거예요. 나는 술을 잘 안 마시니까… 그런데 이 친구는 술을 안 마시면 손을 떨지 않을까?
유석 와인 한 두잔 곁들이면 좋지요. 술과 요리를 곁들이면 가게가 더 솔직하고 따뜻해지니까요.
비즈 셰프가 되려면 좋은 혀, 좋은 손 그리고 또 뭐가 중요할까요?
현석 좋은 셰프가 되려면 먹는 걸 좋아하면 돼요. 그리고 또 남 먹이는 거 좋아하고. 그거면 충분해요. 미각 후각은 다 훈련되는 거니까요.
비즈 그러고 보면 이연복 셰프도 후각을 잃고 나서, 더 섬세하게 요리하게 됐다고 하죠.
유석 먹는 것 안 좋아하는 사람 중에 좋은 요리사는 없어요.
현석 저희 집안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도 다 요리사였어요. 거창한 게 아니고 그냥 기술직 요리사였죠. 당시만 해도 인식이 좋지 않았죠. 저는 할 게 마땅히 없어서 요리를 시작했어요. 저만은 요리를 안 시키고 싶어 하셨거든요. 유석은 아마 유학했지?
유석 네 저는 파리와 스페인에서 공부했어요.
최현석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이프를 들어 스테이크를 썰었다. “고기 좀 드세요. 말린 토마토에 포도 소스를 끼얹어 먹으면 풍미가 진할 거예요.” 얼른 포크를 들지 않으면 입에 넣어줄 기세였다.
비즈 오너 셰프인 적은 한 번도 없었나요?
현석 없었어요. 저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어요. 유석 셰프하고 저는 물성이 달라요.
유석 저도 돈 빌려서 오픈했어요(웃음). 지금도 여전히 자수성가 중이에요(웃음). 한 달 월세 빠듯하게 내면서요.
현석 저는 가게 차릴 돈도 없었어요(웃음). 예전엔 저도 오너 셰프가 되고 싶었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가 큰 레스토랑만 운영했어요. 그런데 오너 셰프가 되면 그렇게 큰 사이즈를 운영할 수가 없어요. 셰프들이 진짜 힘들게 살아요. 중노동에 임금 수준도 박해요.
제가 이 업을 20년을 했는데, 여전히 힘들어요. 생각해보세요.
간사하고 간사한 사람 혀를 만족시켜야 되는 게 셰프의 일이에요.
셰프는 하루 12시간 이상 서서 일한다. 고된 업무와 스트레스로 한창나이인 30대에 심장마비로 숨진 요리사들도 많다. 2004년 미슐랭 3스타였던 베르나르 르와조는 레스토랑 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기사를 접하고 자살하기도 했다.
음식에 스트레스를 가미하지 않기 위해 셰프들은 함께 모여 애환을 나눈다. 최현석과 이유석처럼. 키가 큰 셰프는 키 작은 셰프가 꾸리는 28석짜리 레스토랑을 부러워했다. 심야식당은 손님의 기쁨과 외로움에 가까이 있지만, 그만큼 손님과 셰프 간의 ‘안전거리’가 없다. 다이닝 레스토랑은 ‘안전거리’로서의 격식을 지키기 위해 포크와 나이프, 테이블 탑 크로스 하나에도 셰프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현석 셰프들이 접시 욕심도 많고 테이블 웨어에도 공을 엄청나게 들이죠. 그런데 그럴수록 손님은 좋지만, 우리는 돈 하고는 멀어져요(웃음). 장사하려면 평양면옥, 하동관 이런 걸 해야 답이 나와요.
유석 지난주에 임정식 셰프가 우리 가게에 와서 술 마시다 흥이 올라서 평양냉면 만들어주고 갔어요(웃음). 육수 내놓으라고 하더니, 처음 만든 솜씨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맛있는 냉면을 뽑아내던걸요.
비즈 어쨌든 스타 셰프에 대한 시선이 마냥 고운 것만은 아니에요. 주방에 있어야 하는 셰프가 왜 방송에 나오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지요.
현석 저는 요즘 일주일에 방송 두 개를 해요. ‘냉장고를 부탁해’와 ‘인간의 조건’. 한 달 중에 촬영은 딱 6일이에요. 전 지금 총괄 셰프이기 때문에 주방에서 팬 잡고 직접 요리를 해야 하거나 하진 않아요. 수시로 주방에 들어와서 디렉션을 하지만, 주방장들을 믿고 레스토랑 전체를 담당하는 게 중요한 일이죠. 테이블 웨어부터 메뉴 개발, 손익보고 이런 것들. 저한테는 그런 게 다 요리예요.
비즈 방송 출연이 레스토랑의 영업에 도움이 되나요?
현석 제가 작년 4월 이후에 열심히 TV에 나왔어요. 그때가 우리가 생때같은 아이들 보내고 슬퍼할 때죠. 그런데 그 슬픔에 전체 경기가 많이 안 좋았어요.. 정말 힘들었죠. 거리에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좀 나가서 방송을 뛰었어요. 처음엔 별로 반응이 없었는데, 점점 더 레스토랑에 손님이 느는 거예요.
방송 끝나고 가게에 오면 홀이 만석이에요. 그 기분이 논에 물 대놓고 온 농부처럼 뿌듯했어요.
유석 그렇죠. 셰프는 내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먹고 있는 걸 보는 게 행복이죠.
현석 그런데 방송에 노출이 많이 될수록 좋은 소리 안 좋은 소리 동시에 들어요. “TV에 나와 얼굴 팔아서 장사 하는 거 아니냐?” “방송하면서 주방엔 언제 들어가느냐?” 그런데 저는 말씀드렸다시피 총괄 셰프예요. 경영자 마인드를 갖고 다섯 개의 주방을 책임져요. 그리고 저는 셰프로서 음식 맛있게 먹는 거 보는 것도 좋지만, 제가 나오는 프로그램 보고 위로받았다는 말 들으면, 그것도 참 좋더라고요. 방송 나가는 걸 재밌어하진 않는 데, 그런 말 들으면 보람 있어요.
TV 속 셰프들은 냉장고 속의 처치 곤란 재료를 탐스럽게 변신시키고 유럽으로 미식 여행을 떠난다. 전국 각지에서 칼을 벼린 고수들은 요리왕 자리를 두고 결투를 벌인다. 그리고 소방관이나 파일럿을 꿈꿨던 아이들은 청소년이 되어 요리사가 되는 구체적인 꿈을 꾼다.
현석 요즘 스타 셰프를 꿈꾼다, 고 하면 비난하시는 분들 많은데 요리사로 유명해지겠다는 의욕은 인정받아야 한다고 봐요. 처음 라쿠치나 주방에 들어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홍합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모시조개 바지락을 20kg 정도 삶았어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외국 식재료 용어가 무섭게 오고 가고, 가까스로 맡은 역할이 마늘 빵 굽는 거였어요. 14시간을 마늘 빵만 굽고 집에 들어가는 데, 설움이 복받쳤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닌 직장인데 서럽더라고요. 스물 세 살 때. 지금도 진짜 요리만 팔 수 있다면 좋고, 그게 저도 꿈이지만, 그게 쉽지가 않아요. 요리를 뒤로하고 방송만 하면 문제가 되겠죠. 본질만 잊지 않으면 돼요. 저희는 요리하는 사람이라는 거죠.
유석 다양성을 존중받으면 기쁘죠. 셰프들도 각자의 장기대로 가는 거예요.
현석 저같이 이상한 메뉴 만드는 사람도 있고 정통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고. 파인 다이닝(Fine dining)하는 사람도 있고 펍(pub) 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유석 다양성 차원이 아니더라도 저는 최현석 셰프를 정말 인정해요. 제가 경력이 지금 15년 정도 되는데, 제가 시작할 때 현석 형은 이미 미식가들 사이에서 인정받던 라쿠치나 부장 셰프였어요. 라쿠치나 50명 셰프 중에 총괄 셰프 밑에 이인자였죠. 필드에서는 이미 실력으로 검증을 받은 분이에요.
현석 한편에서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너무 비싸고, 이태리 요리 너무 어렵다고도 하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 스테이크 소스는 그냥 포도주 끓여서 졸인 거에요. 이건 그냥 토마토 말린 거고. 이건 그냥 면 삶아서 기름 넣고 소금, 후추만 뿌리면 되는 거거든요. 어떻게 담느냐 이런 건 나중에 고민하면 돼요. 극장에서 영화 볼 때도 있지만, 뮤지컬이나 오케스트라 연주 보러 가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파인 다이닝은 셰프와 서버들이 정성스럽게 서비스하는 그 음식 문화를 즐기는 거라고 봐요.
비즈 그런데 소금은 왜 그렇게 뿌리세요?
현석 주방에선 이렇게 안 뿌리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고기 구우면서 저를 흉내 내면서 소금 뿌리면서 웃고 재밌어하잖아요. 그게 좋아요. 요리하면서 함께 웃을 수 있으니까요.
비즈 접시 위의 요리 외에도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방법을 여러모로 고민하는 듯하네요.
현석 그래서 저를 미쳤다고 하나 봐요(웃음). 예전엔 바닷가재와 리코타 치즈로 속을 채운 가방 미니어처 라비올리(이태리식 만두)를 만들어서, 그 가방을 만든 디자이너에게 대접한 적도 있어요.
유석 반응이 어땠나요?
현석 기립박수를 받았죠.
비즈 셰프마다 장기가 있어요. 가령 이유석 셰프는 어니언 스프처럼 위로를 주는 소박하고 따뜻한 요리, 최현석 셰프는 확실히 차가운 요리에 재능이 있지요?
현석 예전에 저희 스승님이 한마디 하셨어요. “콜드파트 우습게 보지 마라. 차가운 요리 잘하는 사람이 요리 잘하는 거다.” 차가운 요리를 좋아하는 건 변화무쌍하고 재미난 요리를 할 수 있어서예요. 성게 알로 짠맛이 나는 수플레를 만들 수도 있고, 간장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도 있죠.
비즈 분자 요리의 대가 페란 아드리아의 레스토랑 ‘엘불리’가 생각나네요. 궁극적으로 꿈이 뭐죠?
현석 뉴욕, 상해, 도쿄… 세계 미식 도시에 레스토랑을 내는 거예요. 꼭 오너가 돼서 내 레스토랑을 하거나 할 필요는 없어요. 전 그냥 제 주방만 있으면 돼요.
저는 지금도 평론가들 의견에는 크게 연연해 하지 않아요.
요리사는 손으로 말하는 거고, 손님이 맛있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생각이예요. 신나게 만들고 재밌게 먹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되는 거예요. 지극히 속물적인 요리사죠(웃음).
최현석은 두 손을 마주 잡고 비볐다. 요리사는 손으로 손님은 혀로 말한다. 더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얼마 전 개봉한 화성 조난 영화 ‘마션’에서 가장 먼저 안도한 장면도 주인공이 화성에서 감자를 키워 케첩을 찍어 먹을 때였다. 조난 혹은 재앙에 직면한 인간을 ‘안도하게’ 만드는 어떤 상황과 행위의 핵심에 요리가 있다. 어쩌면 그것이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아 절망하는 현대인들이 그토록 요리사에 열광하는 지점 일지도 모른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한 가지 욕망에 집중하게 되는 법.
요리사는 그렇게 복잡하고 외로우며, 과잉이며 결핍인 이 시대의 서브히어로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소금으로 행위 예술을 하고, MSG로 짠맛과 단맛의 날카로움을 깎아내는 셰프들의 다양한 쇼맨십을 보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낸다.
마지막으로 서빙된 소프트 쉘 크랩 튀김까지, 접시가 깨끗히 바닥을 드러냈다. 최현석과 이유석은 헤어지기 전까지 요리사로 이루어진 삼인조 밴드 ‘옴브레스’ 재결성 문제로 티격태격했다. 최현석은 기타 치는 시늉을 하며, 강민구와 이유석이 음정이 불안정하고 박자가 맞지 않는다고 투덜댔지만, 이유석은 곧 떠날 상하이 미식 여행에 들떠 그런 불평은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음악 장르로 치면 실내악과 오페라가 공연되는 최현석의 대형 공연장 엘본더테이블을 나와 이유석은 자기만의 연극 무대인 루이쌍끄로 돌아갔다. 새벽 1시까지 칼과 불의 성전에서 또 한 차례의 성대한 전쟁을 치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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