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532) 기생충 질병|

2015. 10. 1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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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생리의학상, 인도주의 성과에 주목 신비의 영역인 한의학 '과학화' 선행돼야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이례적이었다. 노벨상에서 흔히 떠올리는 독창적이고 난해한 과학지식이나 창의적인 연구방법도 없었고, 언론의 주목을 끌던 스타 과학자도 없었다. 오히려 평범한 과학자의 끈기와 노력이 돋보이고, 선진국보다 후진국을 위한 인도주의적 성과가 강조된 보기 드문 사례였다. 화려한 첨단 과학기술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현대 과학의 진정한 참모습을 드러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교훈적인 노벨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도 회충·촌충 같은 기생충에 대해 가슴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기생충 검사를 위해 대변을 학교에 제출하고 단체로 구충제를 먹고, 뇌염모기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다행히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아무도 기생충을 걱정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 땅에서는 우리를 괴롭히는 기생충이 사라졌다. 물론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상수도와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되고, 기생충으로 오염된 퇴비 대신 화학비료를 사용하게 된 덕분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기생충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동남아시아·중남미의 후진국 주민들은 여전히 기생충에 시달리고 있다. 매년 50만명이 뇌염모기가 옮겨주는 말라리아 원충(플라스모듐)에 의한 말라리아로 사망한다. 사망자의 90%가 아프리카 주민이고, 80%가 5세 이하 어린이다. 오염된 민물을 통해 확산되는 사상충에 의한 하천실명증과 코끼리피부병 때문에 평생을 끔찍한 고통 속에 보내는 사람도 1억50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기생충에 의한 후진국의 풍토병을 해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가 직접 경험했듯이 생활환경 개선이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후진국이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진국이 무작정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기생충에 시달리는 후진국 주민을 위해 치료제를 개발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시닌을 개발한 중국의 투유유와 사상충에 의한 질병을 고쳐주는 아버멕틴을 개발한 일본의 오무라 사토시와 미국의 윌리엄 캠벨이 주인공들이다.

투유유는 중국을 포함한 동양의 전통의학에서 널리 사용되던 개똥쑥(아르테미시아)에서 키니네와 클로로퀸에 내성을 가진 말라리아를 치료해주는 특효약을 찾아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아르테미시닌을 사용한 지난 15년 동안 말라리아에 의한 사망자가 50%나 줄어들었다. 중증 말라리아에 걸린 어린이의 사망률도 30% 이상 줄었다. 말라리아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나라도 있다.

오무라는 토양에서 방선균의 일종인 스트렙토미세스 아베르미틸리스를 찾아냈고, 캠벨은 새로운 미생물에서 사상충에 의한 질병에 효과가 있는 아버멕틴을 분리해냈다. 아버멕틴의 유도체인 이베르멕틴은 사상충에 의한 풍토병 치료제는 물론 예방약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WHO는 2020년까지 코끼리피부병을 완전히 해결하고, 2025년에는 하천실명증을 해결할 예정이다.

투유유의 노벨상이 중국 전통의학의 승리라는 평가는 잘못된 것이다. 중국 전통의서가 투유유에게 영감을 준 것은 분명하다. 개똥쑥이 말라리아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고, 4세기 동진의 갈홍이 남긴 '주후비급방'에서 에테르를 이용한 저온 추출방법도 찾아냈다. 그러나 투유유의 현대 과학적 연구는 전통 중의학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한의학에 더 많은 투자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설픈 것이다. 여전히 신비의 영역에 남아 있는 한의학의 과학화가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기본적인 약재의 명칭과 기원식물조차 정리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한의학은 과학기술 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신비주의적 한의학은 지원할 가치가 없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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