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미국 식량 원조'의 추억
문학작품은 그 자체로 예술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역사이기도 하다. 오래된 소설을 읽는 재미가 바로 그것이다. 조해일의 옛 소설 <뿔>을 읽었다. 주인공이 지게꾼에게 하숙짐을 들려 서울시내를 걸어가며 겪는 시간들이 나온다. 왕십리 ‘육합춘(六合春)’이라는 이름의 중국집을 지나가는 장면이 있다. 놀랍게도 몇 해 전까지 실제로 영업하던 식당이다. 산둥 출신 화교 식당 이름은 ‘루’ ‘각’ ‘춘’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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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식량 원조는 해방공간과 전쟁 기간, 그리고 전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어린 시절 교회에 가면 뜨거운 우유와 옥수수빵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조개탄을 때는 난로 위에서 펄펄 끓는 양은주전자에 우유 덩어리를 넣던 전도사, 기도 한 줄을 외면 거친 옥수수빵을 나눠주던 목사도 생각난다. 얼굴에 그나마 버짐이 덜 피었던 건, 아메리카의 은총 덕이었던 것일까.

이런 미국의 식량원조 배경에는 미 공법 480항이 있었다. 잉여식량의 외국 원조에 관한 미국 의회의 의결사항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크게 늘어난 미국의 식량생산은 전쟁의 종식과 함께 골칫거리로 변했다. 남는 식량은 한국과 일본 같은 전후의 궁핍한 국가에 공여되었다. 이는 곧 세계가 미국의 식량에 목을 맨다는 뜻이기도 했다. 빵과 국수, 쇠고기, 식용유 같은 식품은 이제 미국산을 빼고는 얘기할 수 없다. 미국산 밀로 만든 빵으로 아침을 먹고, 점심에는 국수를, 저녁에는 미국 콩기름에 볶은 반찬으로 밥을 먹는다. 미국산 옥수수로 만든 온갖 달콤한 것들도 빼놓을 수 없겠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선생의 자전적 에세이 <그 겨울 그리고 가을>에는 그가 겪었던 1951년도의 기억이 소상히 나온다. 소년 시절 미군 보급부대를 따라다니며 허드렛일을 한 그의 회상이다. 내 시야에 유독 선명하게 들어오는 얘기는 미군들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그가 눈칫밥을 먹는 장면이다. 절박한 시절에 배곯지 않았던 건 다행이지만, 눈칫밥이 어디 다 살로 갈 수 있었을까 싶다. 먹는 일의 고단한 감정은, 개인사의 가장 중요한 기억으로 남는다. 지금 우리의 한 끼도 그럴 것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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