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학교폭력은 왜 아무도 몰라야 합니까

이혜리 기자 2015. 10. 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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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주원의 죽음..카톡에서 알게 된 진실..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

“강남 애들은 폭행 안 해요 서서히 옥죄는 방식으로 하죠” ‘가해자 없음, 피해자 없음’ 주원의 죽음에 경찰이 내린 결론이다.“정신적 폭력이 더 무섭다고 교육부 누리집에도 나와 있잖아요 피해자만 찌질한 애, 형편없는 집안 그렇게 몰아가며 쉬쉬하는 걸 봐왔는데 어떻게 내 아이 죽음에 침묵합니까” 무기력한 제도 앞에서 주원 어머니는 지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 5월17일 자정을 앞둔 시각, 서울 송파구의 7층짜리 빌라 옥상에 주원(가명)이가 올랐다. “나 지금 옥상인데 여기서 떨어지면 죽나?” 주원은 스마트폰으로 친구 몇 명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안 죽어.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내 장례식이 있다면 와줄 거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 그냥 없던 사람으로 해줘.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미안해. 지금까지 부족한 친구였어서. 고마웠고 사랑해.” “지금 어디야? 주원아, 박주원!” 전화와 메시지가 끊겼다. 건물 아래에선 사람들이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주원이를 향해 손사래를 치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그러면 안돼!” 그러나 주원이는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응급실로 옮겨진 주원이는 35일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다 6월22일 숨을 거뒀다.

서울 강남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주원이의 첫 위기는 2012년, 중학교 1학년 때 찾아왔다. 주원이는 반 부회장에 뽑힐 정도로 활달했다. 그러나 입학 3개월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주원이의 친구였던 예진이(가명)와 사소한 다툼이 있은 뒤 예진이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주원이의 이름은 없었지만 주원이를 겨냥한 글이었다. “나만 나쁜 애 만드네. 애들 거의 대부분 너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좀 조심하고 살아. 이 글 보고 찔리는 사람 있을 거다.” 아이들은 그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6월 말 오후 9시쯤 주원이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단체 카카오톡방에 초대됐다. 자신들을 ‘선배’라고 지칭한 5명의 아이들은 주원이에게 욕설을 했다. “니 같은 새끼는 밟혀야 돼. 한번 확 밟아줘야 정신을 차리고 안 깝치지.” “니 같은 애들 아무도 안 받아줘. 사회에서도, 학교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니가 개 같은 성격 참고 있었다면 우리가 니×한테 이럴 이유가 없잖아.” “니 신상 다 털렸어.” “어디서 쓰레기 같은 ×이 이 세상에 굴러 들어와서 이 세상 물을 흐리냐.” “이 세상에 살지 마. 지구의 산소가 아깝고 니 몸으로 들어가는 산소들이 불쌍하다.” “진짜 죽어야 되는 새끼는 이런 새끼야.” 주원이는 남의 남자친구를 빼앗은 ‘꽃뱀’이 돼 있었다. 9시부터 11시까지 600개가 넘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오갔다. 학교에 가면 주원이 곁으로 아무도 오지 않았다. 체육시간엔 짝이 없어 벤치에 혼자 앉아 있곤 했고, 어떤 날은 비에 쫄딱 젖어 집에 들어오기도 했다.

또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을 안 주원 엄마는 여러 차례 학교를 방문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매번 비슷했다. “저희도 골치가 아픈데요, 학교 입장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주원이 자존감이 낮아서 대응을 못하는 건데 학교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점점 공포에 질린 주원이는 1학기가 끝날 무렵부터 학교를 못 가게 됐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기 일쑤였다. 집 근처에 산책을 나갔다가도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보이면 이내 엄마 뒤에 숨거나 다른 길로 돌아갔다. 우울해하는 주원이를 위해 여행도 다녔고 심리상담도 받았다.

2학기부터 주원이는 강화도의 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목사가 운영하고 전교생이 50명 정도밖에 안되는 시골 학교였다.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알고 이름을 불렀다. 말 그대로 ‘관계’의 회복이었다. 스마트폰과 페이스북, 카카오톡이 없는 그 학교에서 주원이는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도 잊을 수 있었다.

17살이 된 올해, 전에 다니던 중학교 근처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공포가 다시 주원이를 엄습했다. 첫 등교 날 아빠의 손을 잡고 교문 앞까지 갔던 주원이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집으로 되돌아왔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주원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주원이는 학교에 나가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러면서도 연극 동아리에 가입해 친구·선배들과 연극대회를 준비했고, 학교에서 찍은 사진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이혜경씨는 4월21일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날 이후 주원이가 달라졌다고 했다. 평소보다 한참 늦게 귀가한 주원이는 멍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가족들과 간 식당에서도 아무 말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며칠 뒤 주원이는 그날 학교에서 겪은 일을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친구들이 모여 앉아 자기 욕을 하고, “같잖은 게 친한 척한다. 재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는 아이가 안타까워 도와줬는데 그 아이는 되레 “네가 왜 날 신경쓰느냐”고 말했다고 했다. 주원이는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항상 내가 미안하다고 먼저 그러는 게 너무 속상해” “나도 혼자 이겨나가는 걸 연습하려고 해”라고 말했다.

5월17일 주원 가족은 모처럼 외식을 했다. 학교에 들러 늦게까지 연극 연습을 한 주원이를 차에 태우고 서울 외곽의 막국숫집으로 갔다. 저녁을 먹고 간 카페에서 주원이는 “자퇴하겠다”고 했다. 이야기 막바지에 주원 아빠가 물었다. “내일은 학교에 갈 거니?” 주원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 갈 테니 하복 치마 길이를 줄여달라고 했던 주원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주원이는 음악을 듣고 싶다며 언니에게 이어폰을 빌려 옥상으로 올라갔고, 그렇게 옥상에서 떨어졌다.

6월 중순, 주원이가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학교에서 첫번째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열렸다. 그러나 주원이는 22일 오후 6시를 조금 넘겨 숨을 거뒀다. 26일 주원 부모가 학교에 찾아갔다. “한 달 넘게 아이가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학교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교장선생님은 “학교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구체적으로 언제 누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주원이 친구들한테 서운했던 것 아니냐”고 했다. 주원 엄마는 울면서 따졌다. “서운했다고요? 사람이 사람한테 서운하면 자기 목숨 끊나요? 선생님 자식이라도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나요? 한 대 때린 건 안 때린 거고 여러 대 때려야 때린 건가요?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맞아 죽는다고, 정도가 심해야만 학교폭력인가요?”

학교에선 그때까지도 주원이 투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주원이 빈소를 찾는 연극반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는 다들 알리지 않았으면 한다. 모두들 너무 과하게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고등학교 관계자는 “다른 아이들이 받을 정신적 충격을 우려해 주원이의 상황에 대해서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며 “학교에서는 주원이가 누구와 밥을 먹는지, 집에 누구랑 가는지 등까지도 체크를 했지만 친구들과 공감대 형성이 잘 안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서울 수서경찰서는 “가해자 없음, 피해자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이 학교에 방문해 반 아이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지만 학교폭력과 관련된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학교 측에서도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1 대 1 면담을 하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답변한 학생은 없었다. 중학교 때 주원이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재하고 욕설을 한 학생 몇 명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은 “신체적인 폭행이 있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혜경씨는 “요즘 강남 애들은 그렇게 폭행 안 해요. 강남은 그런 지 오래됐어요. 서서히 사람을 옥죄는 방식으로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면 처벌받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때로는 정신적인 폭력이 더 무섭다. 교육부의 학교폭력예방 누리집을 보면 학교폭력은 정신적인 피해를 주는 행동까지를 포함하며 사소한 괴롭힘과 장난도 학교폭력에 해당된다고 나와 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무엇이 주원이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진실은 비밀번호로 잠겨 있던 주원이의 스마트폰 카카오톡에서 뒤늦게 발견됐다.

3월5일 주원이는 친구 하영이(가명)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고민이 많다. 고등학교 전학간 날 학교 가려고 아빠 차 타고 교문 앞에 딱 차를 세웠는데 교복 입은 여자애들 보니까 막 무섭고 눈물이 펑펑 나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빠 옆에서 한참을 울다가 아빠가 그냥 집으로 다시 데려왔어. 학교 갈 엄두가 안 나더라. 나랑 피해자네 가해자네 했던 여자애는 중학교 졸업하고 다른 고등학교로 갔다더라. 친구 남자친구 빼앗은 여자애로 몰려서 왕따가 되고. 여기저기서 맞고 계란에 밀가루 세례까지 받고. 학교 쓰레기장에서 의자로도 맞아봤어. 다른 학교 가려니까 다시 생각나. 잊은 게 아니었어. 잠깐 묻힌 거지. 교문 들어서는 게 싫다. 상담실 가도 뭐 말하기도 싫어.” 중학교 때의 기억은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며 주원이를 괴롭혔다. “분위기 괜찮았느냐”는 하영이의 말에 주원이는 “끼리끼리 진짜 심해. 완전 교실이 여기저기에 덩어리로 모여 있어” “인간들은 다 쓰레기야. 이 동네에 있는 학교는 서로 다 이어져 있지. 어딜 가든 붙잡혀”라고 했다.

주원이가 많이 사용한 말은 “미안하다”였다. 주원이는 아이들에게 “내가 마음대로 말 걸고 그랬던 거 불편했다면 미안해” “내가 너희랑 같이 다니는 거 애들한테 다 까이고 만만한 게 너희밖에 없으니까 온 거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 오해하게 했다면 미안해” “혹시 내가 실수했거나 기분 나쁘게 한 게 있었다면 미안해” “내가 애들한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게 욕먹을 일이 될 줄은 몰랐어”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주원이는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아이였다. “지금 죽어버릴 것 같은 이 고통도 나중에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 왜 조그마한 상처에 인생을 놓으려 하고 너의 미래를 단정지어버리는 거야? 난 엄마한테 주말마다 카메라 들고 혼자 여행 다니겠다고 했어. 내가 돌아다니고 싶은 데 다니면서 사진 찍고 글도 쓰고. 일부러 혼자 가는 거야. 길도 잃어보고. 남들과 다르게 니가 하고 싶은 걸 해봐.” 시험을 못 봐서 고민하는 하영이에게 주원이가 보낸 메시지다.

“주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해요. ‘싸워봐야 뭐가 변하겠어?’ ‘죽은 아이가 살아나겠어? 누군가 사과라도 하겠어?’… 그런데요, 이런 생각으로 숨죽이고 살고 있으면 가슴에 맺힌 한은 어떻게 푸나요? 난 내 새끼 어미인데요. 너무 두려워서, 고통스러워서 그렇게 옥상에서 자기 몸을 던진 그 마음을, 이래선 안되지 않느냐고, 아무리 힘들어도 소리내서, 힘을 내서 얘기를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9월 초 만난 주원 엄마 이혜경씨가 말했다. “20년 넘게 강남에 살고 있는데 학교폭력이라든가 학교비리 문제는 별로 기사로도 안 나와요. 은마아파트에서, 타워팰리스에서 어떤 학생이 떨어져 죽었대. 얘기는 많지요. 소문나면 동네 안 좋으니까 그때마다 말을 막는가보다 생각했죠. 피해자는 찌질한 애, 형편없는 집안, 그렇게 몰아가면서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그런 상황을 늘 봐왔는데, 도저히 너무 한이 돼서 말을 안 하고는 내가 견딜 수가 없고, 내 아이의 아픔을 억울하다고 말을 안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저는 싸우고 싶어요. 죽은 걸로 끝나는 건 아니잖아요. 그 죽음을 하찮게 생각하는 것과 마음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사과하는 건 다른 거잖아요. 제가 답답한 건 이 현실이에요.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잖아요. 학교도, 경찰도 다 모른다고만 해요. 희망이 없어요. 희망이…. 단지 그것뿐이에요.”

주원이의 고등학교 친구는 주원이가 죽고 난 뒤 메시지를 보냈다. “진짜 내가 너무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다 알고 있었어. 니가 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더 잘 챙겨주고 그랬어야 하는데 내가 미안해. 이미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사과 받아줬으면 좋겠어.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슬프지 마. 내가 기도할게. 너네 어머니께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어. 니가 곁에 있어줘. 난 그럴 자격이 없어. 그래서 힘내시라고 울지 마시라고 말할 수가 없었어. 주원아 이제는 행복하고 편하게 살아. 천국에서 보자.”

폭력 앞에 사회는 얼마나 무기력한지. 주원이는 우리에게 “당신의 아이는 안녕하시냐”고 묻고 있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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