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네, 대동강 맥주".. '아차, 종북'

김은지 기자 2015. 9. 1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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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긴 맛있었다. 고된 하루 일정이 끝난 덕분인지,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목 넘김이 좋았다. '괜찮네, 대동강 맥주'라고 내뱉었다가 이내 ‘아차’했다. 지난해 토크 콘서트를 벌이다 강제 퇴거당하고 구속된 신은미·황선씨 사건이 생각나서다. 수사 당국은 그들의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는 발언조차 문제 삼았다(<시사IN> 제385호 ‘대동강 맥주가 맛있으면 종북?’ 기사 참조).

'그럼 나도 이제 종북 되는 건가?'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괜히 찜찜했다. 뭔가 내가 ‘3대 세습의 사실상 군주 독재국가인 저 나라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증명을 해야 할 부담감도 생겼다. 함께 저녁을 먹던 취재원이 이곳을 주변 각국의 에이전트들이 정보전을 펼치는 북·중 경계지역인 중국 단둥(인천지방경찰청 직원들의 비위 의혹을 제보받고 지난 5월 현장 취재를 갔던 곳이기도 하다)이라고 소개했던 탓이기도 했다. 고작 이 정도 발언 가지고 마음이 불편한 나 자신도 마음에 안 들었다. 맥주 하나 마시는 데도 별걸 다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이 우습고 씁쓸했다. 새삼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다는 현실이 다가왔다.

ⓒ시사IN 양한모 :

이것도 분단 비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발언과 사고까지 제한하고 심지어 벌을 주는 사회. 유무형의 제재에 신경 쓰고 조심해야 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는 비단 귀찮고 짜증나는 문제만은 아닐 테다. 가볍게는 맥주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트위터 ‘우리민족끼리’를 리트윗하다 2012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정근씨는 자신의 행위가 농담이었다면서 '농담을 농담이라 설명할 때 더 이상 농담이 되지 않는다. 이는 농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공안 당국에 항의했다. 그는 1심에서 유죄였지만 2·3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좀 폼을 잡아보자면 스스로를 검열하고 감시해야 하는 삶은 적어도 내겐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자꾸 통일은 대박이라는데, 멀고 험하게 느껴지는 담론보다는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체제 내 탈분단은 이런 게 아닐는지. 취향에 따라 대동강 맥주가 맛있으면 맛있다고 말해도 겁나지 않고, ‘우리민족끼리’ 트윗이 너무 결연해서 촌스럽다고 비웃을 수 있어도 움츠러들지 않는.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취향과 유머 코드를 드러낼 수 있게 만들 때, '내년에라도 통일될 수 있다'는 현실을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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