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보통여자>-타락한 새라 모습 아닌 상처받은 우리 모습
상처의 크기만 다를 뿐 우리 모두는 상처를 갖고 있으니까. 새라는 상처를 숨기지 않고 만화가, 아니 우리 앞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매 화 앞이나 뒤에 붙는 인터뷰 모습에서 묘한 경건함도 느껴진다.
저녁 무렵 홍등이 켜지면 문이 열리고, 영혼 없는 웃음을 팔다 아침이 되면 바람에 날리는 모래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들은 아침이 돼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있다. 매매춘 종사자, 창녀, 걸레, 혹은 뭐라고 불리건 간에.
<보통여자>는 지난 8월 새롭게 문을 연 웹툰 플랫폼 코믹스퀘어에 연재 중인 작품이다. 9월 둘째 주 현재 9화까지 발표됐다. <보통여자>는 휴게텔에서 종사하는 성노동자(라 불러주기를 원하는) 새라의 이야기다. 그동안 만화에서 성노동자가 등장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1970년대 성인만화에는 ‘호스티스’가 나왔고, 1990년대에는 ‘용주골(집창촌)’이 나왔다. 호스티스건 용주골이건 거기에 구체적인 ‘사람’은 없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고생하다 남자에게 배신당한 순박한 우리 누이이거나, 저녁 무렵 홍등을 켜고 전시된 섹슈얼한 육체였다. 순결하거나 아니면 섹시하거나의 양극단에서 소비될 뿐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칠 나와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 웹툰 <보통여자> 1화의 한 장면. / 코믹 스퀘어 제공 |
휴게텔에 종사하는 성노동자 이야기
그런데 <보통여자>의 주인공 새라는 ‘지키지 못해 미안한’ 순결한 우리 누이도 아니었고, ‘인간이 거세된’ 섹슈얼한 육체도 아니다. 아, 하나 더. 사치하기 위해 돈을 쉽게 벌려고 유흥가로 나온 여성도 아니다. 새라는 이혼하고 혼자 두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다. 아직 구체적인 사정이 나오지는 않지만, 새라는 너무 힘들어 이혼했고, 이혼 후 우울증에도 시달렸다. 괴로운 결혼생활, 이혼, 우울증, 먹고살기 위한 성노동까지. 상투적으로 보이지만 만화는 ‘허구’가 아니라는 걸 세부의 진실을 통해 드러낸다.
<보통여자>는 만화가가 주인공 새라와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새라는 “즐거운 기억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다고 말한다. 1화에서 새라가 집창촌에서 일하던 시절 군대에 가기 전 삼촌의 손에 끌려온 순진한 총각과의 경험을 보여준다. 상투적인 스토리가 아닌가 생각할 무렵, 만화는 인터뷰 장면으로 돌아온다. 빙긋 웃고 있는 새라에게 만화가가 묻는다. “마음에 드는 남자손님이라도 있었나 봐요?” 2화에서는 새라가 20년 동안 좋아하던 록그룹 콘서트에 가는 회상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계속 들떠 있던 새라를 찾아온 손님은 콘서트를 하던 뮤지션이다. 3화는 휴게텔을 찾은 장애인에 대한 에피소드를, 4화는 진상손님을 보여준다. 5화에서는 세 보이고 싶은 마음을, 6화에서는 아웃팅 당하는 악몽을, 7화에서는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습을, 8화에서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문신을 새긴 사연을 들려준다.
<보통여자>는 휴게텔이라는 공간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성매매에 대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19세 이상만 볼 수 있는 작품이지만, 섹슈얼한 육체를 재현하지는 않는다. ‘마나각’ 작가의 작화는 육체보다 얼굴에 집중한다. 작가는 간략한 선으로 얼굴에 많은 감정을 담아낸다. 만화 칸의 앵글은 클로즈업이 활용된다. 마치 내가 새라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혹 호기심에 <보통여자>를 클릭했더라도, 몇 화만에 새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귀 기울이다 보면 신파를 넘어 ‘보통여자’ 새라를 만나게 된다.

| 마나각 작가의 웹툰 <보통여자>의 주인공 새라는 자신의 일을 ‘성노동’이라고 불러주기를 원한다. / 코믹 스퀘어 제공 |
만화가, 주인공 새라와 인터뷰하는 형식
새라는 만화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보통여자’라고 말한다. 처음 만화를 볼 때 ‘성노동자도 보통여자다’라는 선언이 들렸다. 선명했고, 논쟁적이었다. 두 번째 볼 때에는 절규가 들렸고, 세 번째에는 흐느낌이었다. 그러다 어린 여자아이를 키우는 새라의 무표정한 얼굴이 보였다. “난 일이 먼저야. 새끼가 둘이나 되니….” 선언도, 절규도, 흐느낌도 아닌 한 명의 사람, 보통여자 새라가 다가왔다.
이 만화를 읽고 어떤 이는 성노동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할 것이다. 용어가 잘못됐다거나, 부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성매매는 불법’이라고 사법적 판단을 할 것이다. 하지만 도덕이나 사법보다 앞서, 휴게텔 안에도 사람이 있다는 걸 먼저 떠올리자. “여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은 2009년 1월 20일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옥상뿐 아니라 어디든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유효하기 때문이다.
<보통여자>는 놀랍게도 거기 있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외면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조곤조곤하게 들려준다. 왜 불법적인 이야기를 하느냐 하지만, <보통여자>가 초점을 맞춘 이야기는 불법 성매매가 아닌 그녀의 이야기다. 두고 온 아이에 대한 염려, 인간의 밑바닥을 드러낸 진상손님에 대한 분노, 아웃팅에 대한 걱정, 뭔가 붙들고 싶은 희망에 대한 기대. 8화에서 새라의 등에 새긴 연꽃, 호랑이, 도마뱀 문신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문신을 새기고, 센 척하는 손님방에 들어가 옷을 벗고 문신을 보이니 바로 고분고분해지더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끝나면 뻔하다. <보통여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간다. 새라가 문신에 대해 말한다. “굳이 해석하면 나를 제발 해치지 말아달라고…. 꼬리를 끊어 줄 테니 나를 도망치게 해달라고….”
어디 문신뿐일까. 새라의 삶, 그리고 우리 삶에는 그보다 더한 생채기들이 새겨져 있을 터인데. 만화를 보다 보면 타락한 새라의 모습이 아니라, 상처받은 우리의 모습이 읽힌다. 상처의 크기만 다를 뿐 우리 모두는 상처를 갖고 있으니까. 새라는 상처를 숨기지 않고 만화가, 아니 우리 앞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매화 앞이나 뒤에 붙는 인터뷰 모습에서 묘한 경건함도 느껴진다.
우리가 새라의 상처에 공명한다면, 우린 아마 더 많은 아픈 이들의 상처에도 공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공명의 파장이 모이면 비난과 조롱이 가득한 위악의 제국을 흔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걸 솔직하게 드러낸 성노동자 새라의 증언은 당연히 소중하다. 민감한 소재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작가 마나각의 작화와 연출도 칭찬받아야 한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
주간경향 공식 SNS 계정 [페이스북] [트위터]
모바일 주간경향[모바일웹][경향 뉴스진]
-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편집실에서] ‘처녀 수입’ 망언, 후진 행정의 민낯
- 재판 개입 유죄 선언했지만…또 반복된 “양승태는 몰랐다”
- 쿠팡 잡으려다 골목상권 무너질라…‘대형마트 24시간 시대’ 누가 웃을까
- [구정은의 수상한 GPS](24) 베트남, 미국이 침공할까봐 떨고있다고?
- 서울시교육감선거, 진보·보수 모두 각자도생?
- [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보기](29) 체로키, ‘인디언 제거법’의 인종주의는 끝났는가
- 행정통합의 ‘나비효과’…판 커지는 지방선거
- [전성인의 난세직필] (47)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과 순환출자 규제의 유효성 제고
- [IT 칼럼]봇마당과 자율적 기술 통제의 환상
- [취재 후] “투자 말고 투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