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은 10년 전부터 우토로에 기부했대요

2015. 9. 1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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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토요판팀에서 팀장을 맡으면서 생명 면을 쓰고 있는 남종영입니다. 호랑이, 돌고래, 백로, 산양, 강아지 같은 동물 이야기를 써왔는데요, 옛날에는 저도 사람 기사 쓴 적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친절한 기자'로 뽑혀 나왔어요. 그러고 보니 첫 등판이네요.

지난 주말, 휴가차 일본 오사카에 있었어요.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럴 경우에는 십중팔구, 아시죠? 기사 쓰라는 겁니다. 문화방송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우토로가 나왔다는 거예요. 하하와 유재석이 우토로 어르신들에게 고향 음식 가져가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고. 여행을 마치고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죠. "그럼, 우토로로 돌아갈까요?"

선배는 차마 가라 못했고 저는 모른 척 한국에 왔습니다만, <무한도전>을 안 본 분들을 위해 우토로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일제시대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강제징용되어 갑니다. 대다수가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군수공장에서 일했어요. 교토부 군용비행장 건설지역에도 조선인 노동자들이 집단 거주하며 일했지요. 조선인들은 함바집 마을에 머물렀고, 1945년 해방 이후 귀국하지 않은 사람들이 남아 자연스레 조선인 마을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우토로입니다.

문제는 우토로의 땅주인이 '닛산차체'라는 일본 기업이었다는 점이에요. 반세기 이상 조선인은 불법거주자 취급을 받았고, 소유권이 여러차례 바뀌며 재개발이 시도되면서 강제퇴거 위기에 몰렸어요. 이런 사연을 취재하러 간 게 10년 전입니다. 2005년 5월 "당장 출장 가라"는 <한겨레21> 편집장의 지시에, 들어본 일본말이라곤 '토토로'밖에 없는 제가 '비루 구다사이'(맥주 주세요)라는 말 하나 외우고 이튿날 오사카행 비행기를 탔지요.

야쿠자! 저를 맞이한 건 우토로의 땅주인 이노우에 마사미였어요. 꽤 힘있는 조직에 계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어렵사리 만든 인터뷰 자리에서 그분이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나, 야쿠자 아니야. 어쨌든 한국 정부가 5억5000만엔에 우토로 땅 사라." 그까이 거 사면 어때? 역발상을 해봤어요. 시민들이 솔선수범해 모금에 나서면,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책임있게 움직일 거라고 본 거죠. <한겨레21>은 6월부터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우토로 살리기' 캠페인을 벌여요. 예상을 뛰어넘어 모금운동은 불타올랐습니다. 매주 금요일 마감날이면, 저는 모금액수가 담긴 엑셀 파일을 기사로 정리했지요. 그때 기사로 못 썼던 이야기가 많아요.

지금 와서 말씀드리면, 사실 그해 8월 유재석이 1천만원을 우토로 살리기에 써달라며 기부했습니다. 거의 처음 들어온 거액이었기 때문에 흥분하고 감동하고 고마워서 인터뷰하자고 그랬지요. 유재석은 꼭 익명으로 하고 싶다며 정중히 사양했어요. 10년이 지났으니 인터뷰를 수락하지 않을까 싶어 지난 9일 다시 연락했는데, 소속사 관계자를 통해 "많은 분들이 참여하셨고, 제 기부가 특별히 큰 도움을 준 건 아니"라며 고사하더군요. 우토로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지난달 23~24일 <무한도전> 촬영 때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방송에 나오진 않았지만 유재석과 하하는 저녁 대접이 끝난 뒤에도 밤늦도록 설거지를 하고 마을회관의 카펫을 직접 갈아주는 등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갔다며 칭찬이 자자하더군요. 한 분은 저에게 귀띔을 해주셨습니다. "촬영 때엔 한마디도 없더니, 나중에 보니 개인적으로 큰돈을 남기고 갔어요." 유재석이 또 50만엔을 조용히 기부하고 갔다나 봐요.

한-일 시민사회의 주도로 우토로 운동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고 있어요. 15만명이 참가한 모금운동으로 우토로 살리기 여론이 확산되자, 2007년 한국 정부는 우토로 주민들이 땅을 매입하도록 예산 지원을 최종 결정했습니다. 2010년에 한-일 시민사회 모금액 1억3000만엔과 정부 지원금 1억7000만엔으로 2011년까지 우토로 땅 약 3분의 1을 샀습니다. 주민들은 강제퇴거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고, 공영주택 건설공사가 이달 안에 시작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주민들이 최신 공영주택에 들어가 사는 건 좋지만, 재일조선인의 역사가 서린 역사적 공간이 사라진다는 점이에요. <무한도전>이 주민들과 마을 사진을 차곡차곡 기록해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우토로 주민회는 '우토로 역사관'을 짓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2012년 추가로 전달된 시민사회 잔여모금분 3000만엔으로는 빠듯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지금 우토로에는 텔레비전을 보고 한국인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반갑게 맞아주고 있지만, 앞으로 계속 견학생들을 데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우토로 마을 쪽에서는 한국 시민단체인 '지구촌동포연대'( http://www.kin.or.kr/)를 통해 방문계획을 미리 알려주면 더욱 고맙겠다고 하네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우토로 역사관이 잘 만들어져 한-일 역사교육장으로 활용됐으면 좋겠습니다. 한번 더 한국 정부의 관심과 시민 모금이 이뤄지면 더욱 좋겠지요. 유재석이 먼저 했으니까요. 일본 가서 맥주도 마시고 역사 공부도 하고 좋잖아요?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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