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시대와 通했다

전형화 기자 2015. 9. 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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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도

[스타뉴스 전형화 기자]

탁월하다. 조선왕조실록에 적혀있는 글들이 배우들로 생명을 얻었다. 연기 잘하는 배우 보는 맛을 준다. 이준익 감독은 최고작을 내놨다. '사도'는 이준익 영화 인생에 분명 정점으로 기억될 것 같다.

'사도'는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들어봤을 듯한 사도세자의 이야기다.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아들 이야기. 사도세자 이야기는 영조와 정조, 혜경궁의 이야기로 수없이 변주돼 왔다. 그런 이야기를 이준익 감독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으로 풀었다.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바로 지금,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으로 푼 '사도'가 당도한 건 의미심장하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했다. 귀하게 여겼다. 천출에게서 나서, 형(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리를 재위 내내 듣고 살았던 영조. 그는 큰 아들이 일찍 죽고 나이 마흔둘에 아들을 얻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핏덩이 같은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고 훌륭한 왕으로 키워내려 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자신의 한을, 아들을 통해 씻으려 했다.

하지만 아들이 자랄수록 아버지의 실망은 커졌다. 아들은 공부를 멀리하고 놀기를 좋아한다. 아버지는 갑작스레 왕이 돼 힘들었던 자기처럼 아들을 살게 하지 않으려, 일찌감치 대리청정을 시켰다. 아들이 왕의 일을 보게 하고, 자기가 돌봐주면 훌륭한 왕이 되리라 믿었다.

아들은 거침없었다. 거침없는 아들에 아버지는 불안했다. 불안은 의심을 낳았고, 의심은 미움을 낳았다. 아버지는 아들에 실망했다. 차라리 아들이 하나 더 있으면, 바라게 됐다. 아버지는 조강지처를 제쳐놓고 다른 아들을 얻으려 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차에 너무도 귀한 손자(정조)를 봤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신의 아버지(숙종) 무덤에 정작 아들은 데리고 가지 않으면서 손자는 데리고 갔다. 300년 종사가 오로지 손자에게 있다고 신하들 앞에서 공표할 지경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아들은 미웠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다. 사랑을 받고 싶었다. 잘하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엄한 아버지는, 칭찬 대신 질책을, 사랑 대신 미움을 줬다. 아들은 자기 때문에 버림 받은 어미들(생모와 중전)이 불쌍했다. 조강지처를 버린 아버지가 미웠다. 왕비에게만 하는 4배(절을 네 번 하는 것)를 굳이 후궁인 생모(영빈)의 회갑연에 했던 건, 2배만 하고 멈추는 아내와 아들, 동생에게 4배를 하라고 시킨 건, 어미가 불쌍하고 아버지가 미웠기 때문이다.

아들은 그렇게 만든 아버지와 그렇게 만든 자기가 미웠다. 아들은 그래서 미쳤다. 자신의 무덤을 만들고, 무당과 기생들을 불러 굿판을 벌인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들을 버리고, 손자에게 가업을 물려주기 위해 마침내 뒤주를 가져오라 명령한다.

'사도'는 셰익스피어 비극 같다. 사도세자 뒤주에 갇혀 죽은 8일을 연극의 막처럼, 하루하루를 나눠서 만들었다. 각 하루 동안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비극을 키워나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 방식은 전형적이지만 효과적이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점을 때로는 동일하게, 때로는 앞서게 배치한 건 탁월하다. 과거와 현재가 대화를 하면서 바로 앞으로 나간다. 이 때문에 큰 사건이 없는 '사도'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감정이 쌓이고, 쌓인 다음, 또 다른 감정으로 밀고 나간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를 아버지에 의해 죽은 아들 이야기 뿐 아니라 아들을 위해 죽은 아버지 이야기로도 풀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으로 아들이 죽는 이야기로만 끝난다면 굳이 지금 이 시대에 '사도'가 당도할 이유는 없다. 이준익 감독은 옷이 안맞다며 내시를 죽이고, 자신의 아들을 낳은 후궁까지 죽였던 사도세자를 미치광이로 그리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그래서 어머니를 사랑했던,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아들을 위해 죽었던, 불쌍한 사내로 그렸다.

그리하여 정조가 즉위한 다음, 어머니 혜경궁 환갑연에 4배를 올리고 춤을 추는 건, 이준익 감독이 바란 해원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원한을 씻는 춤사위. 이준익 감독은 '사도'로 세대 간의 갈등이 큰 이 시대에 화해를 권했다. 자칫 사족일 수 있는 정조 등극 에필로그는 그래서 뱀 다리가 아닌 화룡정점이다.

'사도'는 배우들에게 큰 빚을 졌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를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로만 집중하지 않고, 주위 인물들에게 고르게 이야기를 담아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이라고 남편에게 권한 영빈(전혜진), 아들을 위해 남편을 버린 혜경궁(문근영), 자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는다는 걸 알고 있는 어린 정조(이효제), 등장인물 하나하나 고르게 각자의 이야기를 심었다.

이 이야기들은 배우들을 만나 오롯이 살아 숨 쉰다. 영조 역의 송강호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위대한 배우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송강호는 그의 짝눈조차 '사도'에서 무기로 활용한다. 좌우 크기가 다른 두 눈을, 하나는 올리고, 하나는 내리며, 때로는 노하고, 때로는 기뻐한다. 그가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와 대화하며, 죽은 아들을 애도하는 장면은, 별 사건 없이 9분이란 시간을 끌고 가는 하이라이트는 송강호였기에 가능했다.

사도세자 역의 유아인은 솔리스트다. 탁월한 솔리스트다. 그는 무리에 섞여있어도 홀로 발산할 때 가장 탁월하다. 이준익 감독은 이 뛰어난 솔리스트를, '사도'라는 오케스트라 속에서 제대로 하모니로 만들어냈다.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라했던 영빈 역할의 전혜진은, '사도'의 발견이다. 어린 정조 역할을 맡은 아역 이효제는 등장할 때마다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준익 감독은 전작 '소원'을 하면서 울리지 않고 울리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성인 정조 역할의 소지섭과 닮았다는 것도, 그래서 감정이, 회한이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것도 감독의 노림수다.

음악은 때론 과하다. 큰 사건이 없는, 하나의 사건으로만 밀고 가는 영화이기에, 음악으로 감정을 고양하려 한 것 같다. 음악에 대사가 간혹 뭉개지기도 하지만 그래서 집중하게도 만든다. 때로는 정확한 대사보다 감정을 느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사도'에선 아버지에게 죽음을 명받은 아들의 대사나, 죽은 아들을 놓고 오열하는 아버지의 대사가 그렇다.

'사도'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속 대사 상당수가 조선왕조실록을 그대로 옮겨왔다. 새로운 것들을 갈망하는 요즘, 좌고우면하지 않고, 본질에 집중했다. 이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묵직하게 끌고 나간 게 '사도'의 빛나는 점이다.

아버지와 갈등을 빚고 있는 아들이라면, 아들과 대화조차 없는 아버지라면, 같이 '사도'를 본다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9월1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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