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노동시는 왜 읽냐고요?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문학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식상할 정도로 많이 회자된 말이자 부정할 수 없이 뚜렷해진 현상이다. 그중에서도 시의 몰락은 '시의 시대'로 불린 1980년대의 영광이 무색할 정도다. 서정시인들의 시는 물론 노동자들의 시들 역시 화제를 모으곤 했던 시대에서 이제는 시를 쓰는 사람만 시를 읽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무관심 속에서도 꾸준히 시를 쓰고 있는 노동현장의 시인들이 있다. 백무산, 김해화, 송경동, 황규관, 김해자 시인 등이 그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시를 '쓰는' 게 아니다. 시속의 삶을 살고 있다. 현실에 기초해 있기에 이들 노동시인들의 시는 무른 살과 달리 X레이를 되쏘아 하얗게 필름에 찍히는 단단한 뼈처럼 격하고, 다부지다.
이념의 몰락을 목도해야 했던 1990년대를 지나 열린 21세기는 뭔가 대단한 세기가 될 듯이 시작됐다. 이념 대신 풍요로운 문화와 교양의 세기가 열릴 것처럼. 하지만 십여년 살아본 21세기는 풍요롭기는 커녕 보통사람들 특히 노동자들에게 가장 잔인하고 혹독한 시기다.
그러나 이미 정신은 양처럼 순해지고 애완견처럼 비루해져서 보통사람들을 대변해서 누구도 분노를 함부로 내지르지 않는다. 하지만 물러설 곳이 없기에 노동시인들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길들여지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는 힘있다.

백무산 시인이 최근 펴낸 아홉번째 시집인 '폐허를 인양하다'(창비)는 2012년에 낸 '그 모든 가장자리'(창비) 이후 3년간 모은 시들을 엮었다. 그 3년 동안 충격적인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들을 겪거나 바라본 충격과 분노는 이 시집에서 다음과 같이 '살벌하고' 그만큼 '시원하게' 표현되고 있다.
"나는 그 신화를 읽으면서 인류가 왜 그 전통을 넓게 이어가지 못했는지 오년마다 새 대통령을 뽑기 전에 대통령의 목을 따는 의식을 치르는 훌륭한 제도가 왜 정착을 못했는지 궁금했다"('피의 대칭성' 일부)
"이 나라는 명령이 있어야 움직인다는 걸 기억하라/열정도 진정성도 없는 비열한 정부, 입신출세와/대박 챙길 일밖에 아무 관심도 없는 국가,/ 선장은 단순잡부 계약직, 장관은 단순노무 비정규직/ 그들이 내릴줄 아는 명령은 단 한가지뿐/가만있으라, 명령에 따르라"('세월호 최후의 선장' 일부)
혁명이라는 해답이 틀렸다고해서 문제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와 문학이 답이 틀렸다고 문제까지 지워버리고, 아니 아무 문제가 없는 척했던 동안에도 노동시인들은 묵묵히 시를 쓰며 명맥을 이어왔다. 박노해시인과 더불어 1980년대 노동시를 대표했던 백무산 시인의 이번 시집을 비롯해 노동시를 읽게 되는 이유다. 162쪽. 8000원.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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