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조선왕조실록] 쇠말뚝과 소금산때문에 인재가 없다?
조선왕조실록, 오늘은 정조가 인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의 원인을 주술에서 찾았다가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1797년(정조 21)에 정조는 우의정 이병모를 불러들여 “요즈음 인재가 점점 옛날만 못해지고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런데 정조는 좋은 인재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쇠말뚝’과 ‘소금산’을 언급합니다.
명나라 초기, 즉 고려말에 서사호라는 명나라의 도사가 조선에 와서 팔도를 유람하다가 단천(함경도)의 현덕산에 천자(天子)의 기운이 있다고 여겨 차단하기 위해 다섯 개의 쇠말뚝을 박았었는데, 그 이후 북쪽 지방에서는 인재가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정조는 또 서울에 내려온 맥은 삼각산으로 이어지는데, 수십년전에 북한산성에 아래에 소금을 쌓고 그 위를 덮어 태우는 바람에 소금산이 되어 맥의 흐름을 방해했고, 지금 서울에 인재가 없는 것이 반드시 여기에서 연유하지 않았다고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조는 이 말이 상식에는 어긋난 듯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소금산을 헐어버리면 되지 않겠냐며 실제로 소금산을 찾아 나설 태세였습니다.
다소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우의정은 “천지의 도를 도와주는 하나의 단서”라고 맞장구를 쳤고, 이에 정조는 자신의 측근을 불러 “소금산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소금산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어 이 일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사실상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정조는 이같은 미확인 소문을 누구한테서 들었던 것일까요?
⇒ 장흥부에 큰 바람이 불었는데 성문이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나는 새도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 세종 16년 (1434) : 새로 만든 정확한 누각의 시간을 따르기로 하다
⇒ 시간이 정확한 물시계가 새로 만들어지자 이것을 기준으로 하라고 지시 했다
■ 숙종 37년 (1711) : 효녀와 열녀로 부역이 면제된 자 중 자식이 없으면 3년으로 한정
■ 정조 21년 (1797) : 우리나라에 인재가 없는 것이 명나라 사람이 쇠말뚝을 박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
[CBS노컷뉴스 도성해 기자] holysea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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