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팬 키워라, 여성팬 모아라
[동아일보]
야구장에선 원래 아저씨 냄새가 났다. 프로야구 초창기 안전 그물망을 타고 올라가던 소위 ‘타잔’은 예외 없이 술에 취한 중년 남성이었다. 그러던 야구장에 오빠의 무스 향기가 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LG의 신바람 야구가 불어닥칠 즈음이었다. 이제는 한 식구의 저녁밥 냄새가 난다. 프로야구가 올 시즌까지 8년 연속으로 500만 관중을 돌파하게 한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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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년 남성들로 가득 찼던 야구장은 이제 가족들의 놀이터가 됐다. SK의 안방인 행복드림구장(문학야구장) 외야 잔디에 가족 단위의 팬들이 피서라도 온 듯 텐트 주위에서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프로야구 LG는 4일 여름방학을 맞아 어린이 회원 가족 300명을 잠실구장에 초청했다. 아이들은 “사랑한다 LG, 사랑한다 LG, 승리를 위해, 노래 부르자”는 가사의 응원가를 따라 불렀다. 초청된 어린이들은 인기 애니메이션을 관람할 수 있는 티켓도 받았다.
프로야구 팬에게 어린이 회원제는 친근한 개념.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이 제도를 없앤 팀이 적지 않았다. 회원 가입비보다 사은품 비용을 더 많이 쓰는데 마케팅 효과는 떨어진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어린이 회원을 부활시킨 건 1990년대 중반 프로야구 중흥기 때 야구장을 채우던 ‘오빠 부대’ 출신의 엄마 팬들이었다. 1994년 신인이던 서용빈(45) 때문에 LG 팬이 됐다는 이고은 씨(36·여)는 “남편도 LG 팬 모임에서 만났다. 우리 부부에게 아들 서윤이(3)를 ‘엘린이(LG+어린이)’로 키우는 건 지극히 운명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아빠 팬도 지지 않았다. 프로 원년(1982년) OB 어린이 회원이던 이득재 씨(40)는 2004년 아들 동준이(11)의 주민등록번호가 나오자마자 OB에서 이름이 바뀐 두산의 어린이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동준이가 세상에 나온 지 만 18일 5시간 반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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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의 ‘주부야구특공대’ 회원이 T볼 경기를 하고 있다 ①. 대를 이어 두산(옛 OB) 열혈 팬이 된 이득재 씨(오른쪽)와 아들 동준 군 ②. 구단 초청 이벤트에 참가한 LG 어린이 회원들 ③.김미옥 기자 salt@donga.com·넥센 LG 제공 |
가족의 중심은 여성이다. 마케팅 관점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각 구단에서 안방경기 일정 중 ‘퀸스 데이’, ‘레이디스 데이’ 같은 날을 정해 오빠 부대 양성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원피스형 유니폼’ 같은 여성 전용 상품도 속속 나오고 있다.
홍은아 이화여대 교수(체육과학)는 “가정에서 여성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여성 마케팅의 장기적 파급효과가 상당히 크다”며 “특히 25∼34세 여성은 주도적으로 소비하는 동시에, 서비스에 만족하면 주변에 이를 적극적으로 알린다”고 설명했다. 실제 프로야구 7개 구단 티켓 예매를 대행하고 있는 티켓링크(wwww.ticketlink.co.kr)에 따르면 전체 구매자 중 20대 여성 비율은 23.6%로 같은 20대 남성(23.5%)을 근소하게 앞선다.
넥센이 여대생 공략에 나서는 것도 같은 이유다. 넥센은 서울 소재 여대를 돌면서 ‘야구인걸(야구 in girl)’ 특강을 하고 있다. 넥센은 이 자리에서 야구 규칙을 쉽게 설명하는 것뿐 아니라 시구자도 뽑아 관심을 유도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역시 시즌 개막 ‘미디어데이’를 2년 연속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열었다.
그렇다고 주부 팬들이 ‘너무 늦게 태어났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넥센의 ‘주부야구특공대’나 NC의 ‘야구9단 주부반상회’처럼 중년 여성 팬들을 위한 이벤트도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의 공격적인 여성 마케팅은 TV 시청률로도 이어지고 있다. 시청률 조사업체 TNms에 따르면 지난해 4대 구기 종목(농구 배구 야구 축구) 여성 개인 시청률에서 야구는 0.171%로 국가대표 경기를 포함한 축구(0.103%)의 1.7배에 가까웠다. 전용배 단국대 교수(스포츠 경영학)는 “남성만 타깃으로 하는 스포츠 마케팅은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는 어린이와 가족에 마케팅 초점을 맞춰야 지갑을 열 수 있다”며 “다른 종목도 비즈니스화(化)하기 위해서는 프로야구를 잘 따라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신재희 인턴기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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