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앵무새 죽이기' 대반전의 주인공
▷‘앵무새 죽이기’의 소설가 하퍼 리(89)의 두 번째 소설 ‘파수꾼’을 놓고 미국 사회가 들썩인다. 첫 작품 ‘앵무새 죽이기’의 20년 후 이야기가 반세기 만에 출간된다는 소식에 고령의 작가가 제대로 판단한 것인지 논란을 빚었던 그 소설이다. 문제는, 1950년대 억울한 흑인 피의자를 돕는 정의로운 변호사로 그려졌던 애티커스 핀치가 속편에선 인종차별주의자가 됐다는 점이다. 미국인 마음속 영웅이 하루아침에 환멸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대반전이다.
▷작가는 ‘파수꾼’을 ‘앵무새 죽이기’보다 먼저 썼으나 출판사에서 퇴짜 맞았다. “핀치의 딸이 보는 눈으로 써보라”는 편집자 조언을 받아들여 핀치의 젊은 날을 쓴 작품이 ‘앵무새 죽이기’였다. 핀치의 반전 못지않게 ‘파수꾼’ 같은 습작에서 걸작을 이끌어낸 편집자의 역할이 놀랍다. 빼어난 편집자는 사소한 오류부터 내용과 문체에 이르기까지 작가와 끝없는 소통을 거쳐 위대한 작품의 탄생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작가와 편집자는 때론 친구처럼 때론 원수처럼 가깝고도 먼 사이다.
▷배우 콜린 퍼스의 새 영화 ‘지니어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의 재능을 발굴한 전설적 문학편집자 맥스 퍼킨스의 전기 영화다. 문학사에는 저명한 작가-편집자 커플이 등장한다. 에즈라 파운드는 T S 엘리엇의 ‘황무지’의 편집자로, 원문의 절반 이상을 잘라내면서 명작의 탄생에 기여했다. 찰스 디킨스는 ‘폼페이 최후의 날’을 쓴 작가 겸 편집자 에드워드 불워리턴의 의견에 따라 ‘위대한 유산’의 결말을 고쳐 썼다. 만약 ‘앵무새 죽이기’ 때처럼 고령의 작가 곁에 눈 밝은 편집자가 있었다면 ‘파수꾼’의 운명도 달라졌을 것 같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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