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짜>는 당대 최고의 걸작이다. 물론 신세경 버전도 훌륭하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2006년도에 나온 최동훈 감독의 전작이 갑이다. 그 중 너무나 유명한 클라이막스 씬이다.
고니 :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아귀한테선 밑에서 한 장, 정마담도 밑에서 한 장, 나 한 장. 아귀한테 다시 밑에서 한 장, 이제 정마담에게 마지막..아귀 :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고니 : 뭐야?아귀 : 내 패하고 정마담 패를 밑에서 뺐지?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이 XX야?(중략)아귀 : 패 건들지 마! 손모가지 날라가붕게. 해머 갖고 와정마담 :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돼?고니 : 잠깐, 그렇게 피를 봐야겠어?아귀 : 구라치다 걸리면 피 보는 거 안 배웠냐?

영화 <타짜>의 한 장면
<야구는 구라다> 작명의 유래
3년 쯤 됐다. 어느 매체와 글 하나를 쓰기로 했다. 물론 야구 관련으로. '코너 이름을 뭐로 하지?' 한 5~10분쯤 고민했다. 그까짓 게 뭐 중요해 대강 정하지. <야구는 구라다>로 하자. 무슨 그 따위 작명을…. 왜 그런 이름인지 읽는 분들에게 설명이 필요했다. 첫 회, 글 머리에 붙인 프롤로그가 이랬다.
"투수가 던진 공이 똑바로 온다. 스트라이크다. 치려는 데 공이 '휙' 아래로 떨어진다. '된장, 속았다.' 그렇다. 야구의 아주 중요한 본질 중 하나가 '구라'다. 그런 것 같으면서 아니고, 아닌 것 같으면서 그렇다."
이 스포츠가 본래 그렇다. 합리적이지 못한 구석 투성이다. 아예 헛치거나, 많이 빗맞으면 파울이다. 스트라이크 하나만 먹으면 된다. 그런데 조금 빗맞으면 땅볼이나, 뜬공으로 아웃이다. 제대로 걸렸는데 정면으로 가면 아웃이다. 반면에 대충 맞아도 사람 없는 데 떨어지면 안타다.
어디 그뿐인가. 배고프면 경기 중간에 짬뽕도 시켜 먹는다(아주 간혹 그런다). 화장실도 가고, 심지어 담배도 피운다. 플레이 하는 시간보다, 멈출 때가 훨씬 많다. 숨에 턱에 닿도록 뭘 하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승부도 그렇다. 우리가 잘하면 이긴다. 하지만 상대가 잘못해도 같은 성과를 얻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속이고, 함정을 판다. 때문에 비판론자들은 그렇게 말한다. 야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게임에 가깝다고.

본의 아니게 미국진출까지?
어젯밤(9일) 김광현의 태그 플레이가 논란이다. 밤새 모든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를 점령했다. 단언컨대 이 동영상은 올 시즌 가장 큰 화제의 장면으로 꼽힐 것이다. 어쩌면 그의 미국 진출은 조기에 이뤄질 지 모른다. mlb.com을 통해서 말이다. 심지어 할리우드 데뷔를 권하는 팬들도 늘고 있다.
그는 경기후 한 매체를 통해 이렇게 얘기했다. "태그를 위한 연속적인 동작을 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일부러 속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옹호하는 측의 논리를 보자. '워낙 순간적으로 일어난 연결 동작이다. 심판이 판정까지 내렸는데 거기서 자백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랬다면 우리 팀에 결정적인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럴 선수가 어디 있겠나. 거기다가 공수교대 되는 바람에 (자백할) 타이밍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영 틀린 말은 아니다. 공감 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 보자. 지하철 빈 자리가 나서 냉큼 앉았다. 순간 좌석 위에 만원짜리가 얼핏 시야에 들어왔다. 자연스러운 연결 동작이었다. 주인은 이미 내렸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내 엉덩이 아래 부스럭거리는 만원짜리. 어쩔 것인가. 분실물 센터? 지갑 속으로?
'구라'가 '땀'을 이겨서는 스포츠가 아니다
앞에 비판론자들 얘기를 했다. 야구가 무슨 스포츠냐고. 속고/속이는 게임이라고. 그러나 그 얘기에 가장 크게 화낼 사람은 선수들일 것이다. 안타 하나를 치기 위해 몇 만번의 스윙을 하고, 스트라이크 하나를 던지기 위해 몇 천번의 연습 투구를 하는 지 아냐고. 땅볼 하나를 잡기 위해 매일 수 백개의 펑고를 받고, 베이스 하나를 얻기 위해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도록 슬라이딩 한다고.
그들의 플레이에는 수 없는 땀이 배어 있다. 고통이 스며 있다. 손에 물집이 잡히다못해 피가 터지도록 배트를 휘두른다. 다시 공을 던지기 위해 칼로 팔꿈치를 째고, 어깨를 연다. 어떤 투수는 세번이나 자기 인대를 끊어바쳤다.
그렇다. 그들이 옳다. 야구는 분명히 스포츠다. 때로는 운과 속임수로 좌우될 지 모른다. 그래서 게임처럼 치부될 지 모른다. 묘한 경계선에 있는 것처럼 보일 지 모른다. 하지만 그 본질은 땀으로 이뤄졌다. 더 열심히 준비한 사람이 이기게 돼 있다. 그래야 한다.
누구보다 그걸 입증할 사람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그들이다. '구라'가 '땀'을, '스포츠맨다움'을 앞서서는 안된다. 그런 리그는 저렴하기 짝이 없다. 새 날이 되면 그가 말할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입으로 어젯밤과는 다르게 얘기할 것이다. 그러길 기대한다. 야구란 게 스포츠고, 그라운드에서 뛰는 그들은 스포츠맨이기 때문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