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도 신토불이.. 거무튀튀 수입산 한판 붙자"
뉴질랜드 농장 관광 후 재배 결심, 일본서 병충해 예방법도 배워와
검고 단단한 수입 체리에 비해 국산은 붉은색에 달고 부드러워
가격 더 비싸지만 물량 달릴 정도, 홍향 품종 올해 첫 수확에 부푼 꿈
김기태씨의 부인 김정옥씨가 지난 19일 경기 화성시 송산면 소재 농장에서 체리를 따 바구니에 담고 있다. 수확한 체리는 지역 농협의 선별 작업을 거쳐 '잎맞춤 체리'라는 브랜드를 달고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농협 제공
19일 경기 화성시 송산면 소재 김기태(55)씨의 체리 농장. 우거진 덤불 숲으로 둘러싸인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들어선 비닐하우스 문을 열자 벚나무와 닮은 체리나무 수십 그루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성인 남성 키 높이를 약간 웃도는 체리나무 가지에는 잘 익은 선홍색 체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부인과 함께 체리 수확에 한창이던 김씨는 "체리는 6월 말에서 7월초 사이에 전부 수확하지 않으면 과일이 물러 터져버린다"고 했다.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함께 저렴한 가격의 수입체리가 무서운 기세로 수입되면서 대표적 국내산 과일인 수박, 참외마저 수입체리에 맥을 못 추는 상황. 이런 와중에 국산 체리로 맞서겠다는 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김씨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한다.
김씨가 재배하는 체리는 일본에서 개발한 '좌등금' 품종으로 시중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수입체리('빙'품종)와는 겉모습부터 다르다. 수입체리는 빛깔이 검고 과육이 단단하지만 국산은 훨씬 빨갛고 과육이 부드럽다. 새콤달콤한 맛이 꼭 앵두와 수입체리를 섞어 놓은 듯하다. 농협에 따르면 국산체리는 평균 당도(17~21브릭스)가 수입체리(14~17브릭스)보다 높다. 국산체리의 가격은 100g당 2,400원 정도로 수입체리(100g당 2,000원)를 약간 웃돌지만 현재까지 나름 선방 중이다. 김씨는 생산한 체리를 송산농협을 통해 '잎맞춤 체리'라는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는데, 생산 물량이 달릴 정도다. 김씨는 약 9,000㎡ 면적에서 체리를 재배하고 있는데 인건비 등 각종 경비를 빼도 연 5,000만원 가량의 수입을 올린다고 했다. "수확 전 일일이 봉투를 씌워줘야 하는 등 손이 많이 가는 포도나 배보다 인건비가 훨씬 덜 들어 단위 면적당 1.5배 정도 수익이 더 난다"는 설명이다.
지금처럼 체리 농사로 안정적 소득을 올리기까지는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이전까지 배와 포도를 주로 재배해 온 김씨는 2003년 뉴질랜드에서 체리 농장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보고 이듬해 체리 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변변한 재배 기술조차 찾기 어려워 병충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동료들과 2005년에만 2번 일본 훗카이도(北海道)의 농업 연구소를 직접 방문해 병충해 예방법을 배워오는 등 자구책을 찾았다. 수입체리와 닮은 검은빛 체리 품종을 심었다가 열매를 맺지 않아 묘목 값만 날린 일도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김씨지만 매년 판매 신기록을 올리고 있는 수입체리를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결국 해답은 품질 경쟁밖에 없다는 것이 김씨의 결론. 그는 "아직 보편화하지 않은 '홍향' 품종 체리를 시범 재배해 올해 첫 수확을 앞두고 있다"며 "소비자가 원하는 좋은 품질의 체리로 수입 체리와 한번 맞붙어 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화성=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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