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 국방부의 흔한 금서?
“아몰랑! 막스와 자본주의만 들어가면 빨갱이야 무조건!” 한 사진을 본 누리꾼 반응이다. 5월 하순, ‘어느 나라 국방부의 흔한 금서’라는 제목으로 게시된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았다. 어느 나라? 사진 속 한글을 보면 대한민국이다. 비닐에 포장된 한 책 위에는 ‘압 제5호’라는 빨간 테두리를 두른 딱지가 붙어 있다. 피의자는 상병 ○○○. 사건명이 무시무시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그러니까 모종의 사건 당사자(군인)에게 압수한 물품이다.
사진이 논란이 된 것은 이 압수된 책 때문.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화제를 모은 건, 이 책이 과연 압수 수색 대상으로 오를 만큼 ‘불온서적’이냐는 것이다. 사회학, 아니 사회과학 전공자가 주변에 있다면 한 번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저 책이 반체제적 성격이 있는지를. 아마 대부분 돌아오는 반응은 실소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1980년대에 그런 ‘도시전설’이 있었다. 막스 베버의 저 책을 가방 같은 데 소지하고 있다가 불심검문을 당했는데, 막스를 칼 마르크스로 ‘오해’한 경찰의 실수로 닭장차에 연행당했다는 따위의 이야기. 개인적으로 경험은 없지만, 역시 불심검문으로 연행된 경찰버스 안에서 “‘빨간 색 책 표지의 영어원서’를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연행됐던 서강대 종교학과 대학원생의 사연을 직접 목격한 적은 있다. “글쎄요… 우리도 답답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엊그제 국회의원실 쪽에서 이 사진과 관련해 문의가 왔는데 도대체 어떤 경우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어느 나라 국방부의 흔한 금서?’라는 제목으로 유포된 사진. 압수된 책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 듀나게시판 |
국방부 정신전력과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국방부에서는 애초에 ‘금서’, ‘불온서적’ 리스트를 작성한 적이 없다고 한다. 과거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불온서적’ 리스트는 2008년 한총련이 펼친 ‘현역장병 도서 보내기 운동’ 목록 중 23권을 ‘자료심의규정’에 맞지 않다고 분류한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그런데 그게 그거 아닌가). 사진이 등장한 것은 올해의 일은 아니다. 검색해 보면 지난해 8월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처음 퍼진 것이 확인된다. “아니 그 책은 출간 다음 해(2011년)에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양서인데….” 책을 펴낸 도서출판 길의 이승우 기획실장의 말이다. 그도 해당 사진을 지난해 하반기쯤 페이스북을 통해 접하긴 했다고 했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한 병사가 있던 사단에서 점호를 하다가 발견해 소대장인가 중대장이 제목만 보고 문제를 삼았다는 사연이 같이 게재되어 있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번역자인 김덕영 독일 카셀대학교 조교수는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칼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어도 문제가 안 되는 시대인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사태냐”는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그 책을 읽지 않아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제목은 들어봤지만요.” 앞서 언급한 국방부 관계자의 말이다. “막스, 막스… 누구라고요?” 처음 연락한 대변인실의 첫 반응도 대동소이했다. 무식이 죄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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