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예의 MLB현장] 엇갈린 박찬호와 류현진, '하지만 그들은..'

# 01. 다저스 61번 박찬호,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등번호 61이 새겨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한국인의 밤' 행사에 초청돼 시구를 한 이후 1년만입니다. 이번엔 다저스 레전드 자격으로 '올드 타이머스 게임(Old Timers' Game)'에 초청받아 마운드에 오르게 됐습니다.

박찬호는 "지난해 시구를 위해 다저스타디움을 찾았는데, 이번에는 모든 복장을 갖추고, 글러브까지 끼고 마운드에 오르게 되니 예전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며 다저스 시절 박찬호를 회상했습니다.

허샤이저를 만난 박찬호는 뒷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 셀카를 찍는가 하면,

발렌수엘라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기자에게 정중히 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지금 찍은 이 사진을 받을 수 있는지를. 그만큼 박찬호에게 이날의 순간순간이 모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박찬호는 "다저스 올드 타이머스 게임에 처음 참가했는데, 너무 일찍 참가한 것 같다."고 말문을 열며, "연세 많은 선배들,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뻘 되시는 분들과 함께 이런 행사에 참석한다는 게 영광이다. 내가 루키였을 때 베테랑이었던 선수들과 함께하니 감회가 새롭고,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박찬호에게 쿠팩스는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이고,

라소다,

돈 뉴컴 역시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다저스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이들과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박찬호를 반겼고, 박찬호 역시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허니컷 코치와도 인사를 나누며 이런저런 추억 얘기를 꺼냈습니다. 류현진의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기억의 시간, 추억의 시간이었습니다.

박찬호가 현역 시절 함께 했던, 혹은 그 시절조차 전설이라 불리던 사람들과 만나 안부를 주고받는 순간이 다저스 전광판에 실시간으로 보였습니다. 어색하지 않은 다저스 유니폼. 자연스러운 대화. 이 현장을 취재하는 동안 머릿속에는 '아, 박찬호가 IMF 시절 국민에게 기쁨을 선사했던 그라운드가 바로 여기였지'라는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박찬호는 숀 그린과의 만난 후, "도우미 역할을 많이 해줬던 선수다. 동양 문화와 불교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던 선수라 대화를 많이 했고, 서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고 전하며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관중석에서 '찬호 박'의 이름을 부르자 손을 들어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박찬호는 "은퇴와 동시에 팬들의 응원이 끊겼다. 이제 마운드에 오른 박찬호를 응원하는 팬이 아닌, 야구 선수였던 박찬호를 기억하는 팬이 생긴 것이다."고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기억하고, 어려웠던 그 시절 단비 같은 박찬호의 투구를 기억합니다. 그래서 박찬호에게 올드 타이머스 게임이 소중한 의미를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성기 시절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함께 생활했던 클레이튼 커쇼도 만났습니다. 커쇼가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박찬호는 단숨에 달려가 인사를 건넸습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눈 둘은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박찬호는 커쇼와 함께했던 2008년을 떠올리며 취재진에게 이 같은 말을 전했습니다."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그때 당시에는 유망주 커쇼를 키우기 위해 내가 불펜에 있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나의 자리가 커쇼를 만들어 낸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같은 자리를 두고, 경쟁하기도 하고, 밀리기도 했지만 그런 상황이 있었기에 지금의 커쇼라는 선수가 탄생했음을 의미합니다.

한때는 자리 경쟁하던 동료 둘이 더그아웃 벤치에 앉아 진행되는 행사를 함께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내 자리가 커쇼라는 위대한 선수를 만들어 내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이곳에서 선수 생활했던 시간이 미국 진출하는 후배들에게 조금 더 나은 환경과 생활을 제공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후배들이 빅리그에서 꿈을 펼칠 수 있게 기회가 제공됐다는 것은 굉장히 보람 있고, 의미 있다."

그리고 정말 반가웠던 한 사람. 바로 '이디어'입니다. 박찬호와 가깝게 지낸 동료로 알려졌습니다. 이디어는 지난해 기자에게 "박찬호에게 젓가락질을 배웠고, 함께 한국식 갈비를 먹으러도 자주 갔었다. 매콤한 순두부찌개도 좋아한다."며 박찬호와 친하게 지냈음은 물론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이랬던 이디어가 오랜만에 박찬호를 만나 나눈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역시나 '갈비' 이야기 였습니다. 한국 과자를 좋아하는 이디어는 한국 음식을 유난히 좋아하기도 합니다. 이디어는 박찬호에게 갈빗집을 물었고, 박찬호는 상호까지 정확히 알려주며 위치를 설명했습니다. 이로써 확실해졌습니다. 이디어는 정말 한국식 갈비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디어는 2013년 다저스 젓가락 대결에서 류현진을 제치고 1위를 한 이력도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올드 타이머스 경기가 진행될 시간.

박찬호는 전광판에 보이는 박찬호의 이력과 영상에서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61. 찬호 박' 장내 아나운서로부터 호명되자, 손을 들어 인사하며 그라운드로 뛰어나갔습니다.

이름이 호명되고, 그라운드에 나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하는 이 순간의 짜릿함. 그때 그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이날 올드 타이머스 경기는 오렐 허샤이저와 노마 가르시아파라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됐습니다. 박찬호는 2회 무사 1루에서 허샤이저의 공을 이어받았습니다.

이날의 감독 토미 라소다가 마운드에 올라가자 허샤이저는 더 던질 수 있다는 제스처를 취했습니다.허샤이저를 내리고, 박찬호가 올라갈 시간. 라소다 감독은 허샤이저가 불만을 품자 불호령을 내릴 것 같은 제스쳐를 취하더니,

허샤이저의 볼을 만지며, 내려가라고 다독입니다.

박찬호는 감독 라소다로부터 공을 받았습니다. 평소 라소다 고문이 선수를 대하는 스타일로 미뤄 짐작하면, "찬호! 퍼펙트 해야 해"라는 말을 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날 박찬호는 4개의 안타를 허용했고, 3점(자책 2점)이나 내줬습니다.

마운드에 오른 박찬호. 그의 말처럼 복장을 모두 갖추고 마운드에 오른 모습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이게 바로 코리안 특급의 투구였습니다.

3실점을 하고 마운드를 내려온 박찬호. 이날의 경기는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 02. 엇갈린 박찬호와 류현진,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마운드를 내려온 박찬호는 다저스 더그아웃에서 반가운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지미 롤린스와 대화를 하고,

쿠팩스와는 모바일 속 사진을 보며 다정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만나고 싶었던 동료들을 모두 만났지만, 단 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우리 취재진도 그를 기다렸던 건 마찬가지. 바로 류현진 선수입니다.

결국, 류현진은 올드 타이머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박찬호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원정팀 클럽하우스로 들어갔습니다. 원정팀 클럽하우스로 들어가는 박찬호의 뒷모습을 보고 곧바로 뒤돌아 다저스 더그아웃을 보니,

류현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두리번두리번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모습이었습니다. 홍보팀 직원(흰색 셔츠)에게 박찬호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봤고, 이때 박찬호를 찍고 뒤돌아선 기자와도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러고는 류현진은 황급히 더그아웃을 떠났습니다. 이미 올드 타이머스 경기가 끝나 박찬호가 원정팀 클럽하우스로 간 것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이 둘의 엇갈린 시간이 3분도 채 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박찬호는 올드 타이머스 경기가 진행되기 전, 아직 (류)현진이를 만나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둘의 만남이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는데, 퇴근길에 만난 류현진은 "(박)찬호 형을 만났다."며 웃으며 말했습니다.

기자는 퇴근하는 류현진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고, "더그아웃에서 박찬호를 애타게 찾는 모습이었는데, 그렇게 찾을 거면 왜 이렇게 늦게 나왔느냐? 실내에서 계속 훈련하고, 물리 치료받느라 늦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류현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니, 근데 정확히 말하면 (실내 훈련) 끝나고 나니까 올드 타이머스 경기 중이었다. 그래서 그냥 끝나면 나가야지 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나는 (박)찬호 형이 보고 싶었을 뿐이다. 경기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클럽하우스로 직접 찾아가서 만났다."라며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 사진=지난해 다저스 한국인의 밤에 초청된 박찬호가 류현진과 인터뷰를 마친 후,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류현진은 원정 클럽하우스로 직접 찾아가 박찬호와 만났습니다. 얼굴 보고 싶어 찾아갔다는 류현진은 "현재의 안부를 서로 주고받았고, 얼굴 봐서 좋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류현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습니다. 사실 이런 류현진의 모습을 보면 '정말 괜찮은 걸까? 심각한 정도면 표정이 저럴 수는 없는데…'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해답을 박찬호가 알려줬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처럼 기준을 두고, (류)현진이를 대하다 보면 현진이로부터 진심을 들을 수가 없을 거라는 것.'

# 03. 박찬호가 류현진에게 전하는 메시지

퇴근길에 만난 류현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이메일 알람이 울렸습니다. 발신자는 '박찬호' .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를 공개하고자 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무거운 시련은 있습니다. 그 무거움을 들어봐야 강해집니다. (중략) 상황이 안 좋은 것처럼 기준을 두고 현진이를 대한다면 현진이로부터 진심을 들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저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극복하는지를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지켜본다면 현진이는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류현진이 시련 극복을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마운드에서 멋진 투구를 지켜보는 것 이상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힘내고, 흔들림 없이 마음을 지키라고 전해주세요.'

현재 류현진 부상 관련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지만, 류현진을 믿고, 현재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지켜봐 주길 요청했습니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잘 극복해 더 강한 선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의 내용이었습니다.

올드 타이머스 경기에 앞서 박찬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라는 빅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들을 겪고, 그 선수가 시련(슬럼프)이 왔을 때 어떻게 극복하고, 성장하는지를 봐줬으면 좋겠다."

내년이면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오르는 박찬호는 팬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일보다, 더 값진 우리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영광이었고, 태어나서 받게 된 가장 큰 의미이자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