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몰카 피해자를 가해자와.. '공포의 2시간'

양민철 기자 입력 2015. 4. 6. 02:28 수정 2015. 4. 6.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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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수사 과정 피해자 배려를

악몽이 시작된 건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지난달 22일 오후 2시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박진희(가명·25·여)씨는 무릎에 뭔가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키 180㎝ 정도의 남성이 스마트폰으로 박씨의 치마 속을 찍고 있었다.

덜컥 겁부터 났다. 머릿속엔 '사진을 지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죄송하다"던 남성은 스마트폰을 내주지 않았다. 평일에는 수천명이 이용하는 역이지만 한가한 일요일 오후라 주변엔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박씨는 스마트폰 속 사진을 없애기 위해 남성을 붙들고 한달음에 역무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역무원은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며 "이 역에는 지하철경찰대가 없으니 112로 신고하라"고 했다. 박씨는 112 신고 후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10여분간 역무실에서 이 남성과 함께 앉아 있어야 했다. 이어 한 역무원이 다가와 이름과 신분, 연락처 등을 물었다. "이 사람(피의자 남성)이 들으면 어떡하죠?"라고 박씨가 묻자 역무원은 "아, 그럴 수도 있겠다"며 "적어서 달라"고 종이를 내밀었다. 박씨는 한숨이 푹 나왔다고 했다.

잠시 후 지하철경찰대에서 온 경찰관이 남성을 인계해 갔다. 박씨도 피해자 조사를 받기 위해 역에서 100여m 떨어진 경찰 지구대로 이동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박씨의 판단은 오산이었다. 지구대에선 "이건 지하철에서 벌어진 사건이니 피해 조서도 지하철경찰대에서 쓰는 게 맞겠다"고 하더니 박씨를 다시 지하철경찰대 사무실로 데려갔다. 박씨는 그 남성과 또 마주해야 한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지하철경찰대 사무실은 약 7평 정도였다. 한쪽에 냉장고 등 집기가 비치된 좁은 방이 있었다. 박씨가 도착하자 경찰관은 남성에게 벽을 보고 서있게 한 뒤 박씨를 그 방에 들어가도록 했다. 방문은 닫지 않은 상태였다. 박씨는 약 6∼7m 거리를 두고 자신의 치마 속을 촬영하던 남성과 다시 한 공간에 있게 됐다. 피의자를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수사파트 경찰관들이 남성을 다른 곳으로 데려간 뒤 박씨는 비로소 피해자 진술을 했다.

박씨가 집에 돌아온 건 두 시간이 지나서였다. 이후 지구대에서 '사건이 접수됐다'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남성이 박씨의 사진은 지웠는지, 범행은 시인했는지, 어떻게 진술했고 처벌 가능성은 있는지 등은 연락받지 못했다.

박씨는 5일 "이런 일을 처음 당해 너무 무섭고 당황했다. 그 남성이 나를 기억하고 보복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여대생의 평온했던 휴일은 이렇게 트라우마를 남긴 채 끝났다.

지난해 1∼6월 지하철 성범죄는 모두 627건 발생했다. 2013년 같은 기간보다 14% 증가했다. 그중 '몰카' 적발 건수는 275건인데, 4∼6월(237건)이 1∼3월(38건)보다 5배 가까이 많았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면 지하철 성범죄도 함께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단속 및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를 더 배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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