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형설지공' 결실..고졸 생산직, 박사되다

임동욱 기자 2015. 3. 2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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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이광호 SK하이닉스 기장, 생산직 첫 박사 탄생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피플] 이광호 SK하이닉스 기장, 생산직 첫 박사 탄생]

"솔직히 포기하고 싶은 적이 많았어요. 여행도 가고 취미 생활도 즐기는 회사 동료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학교에서는 매주 발표 준비를 해야 했고 회사에서는 교대 근무를 해야 했어요. 잠이 많이 부족했지요."

이광호 기장(41·사진)은 SK하이닉스의 첫 생산직 박사다. 그는 지난달 24일 충북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생산관리 전공)를 받았다.

이 기장은 약 20년 전인 1996년 고졸 사원으로 SK하이닉스에 입사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국가에서 전액 학비를 지원해 주는 고등학교를 찾았던 그는 당시 중학교 성적 상위 20% 이내에 들어야 지원할 수 있었던 구미전자공고 전자과에 들어갔다.

입사 후 그는 청주 PKG(패키지) 장비기술과에서 반도체 장비 유지보수 업무를 맡았다. 현장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일본어로 된 장비 매뉴얼은 넘기 힘든 '장벽'이었다. 일본어를 몰라 읽을 수 없으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그때마다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 기장은 입사 7년 차에 접어들던 2002년 대학에 편입했다. 그는 "반도체 설비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일본어 공부가 필요했고, 어학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배움이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며 일주일에 12과목을 수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말 그대로 형설지공(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함)의 현실화였다.

이 기장은 "야간 업무가 끝난 후 수업에 들어가면 어찌나 잠이 쏟아졌는지 모른다"며 "나이 든 학생이 졸기만 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이를 악물고 졸음을 참았다"고 웃음을 지었다.

차에서의 쪽잠으로 수면 시간을 채우고 틈이 날 때마다 책을 들여다봤던 그는 어린 학생들을 제치고 장학금을 받는 우등생이 됐다. 장비 매뉴얼 하나 읽지 못했던 그는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 자격증까지 획득했다.

공부는 그에게 짜릿한 희열을 맛보게 했고, 이는 2009년 박사과정 도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새로운 현상을 발견해 논문을 완성해야 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이 기장은 "힘들 때마다 미래에 대한 꿈을 안고 2002년 처음 대학에 입학했던 순간을 떠올렸다"며 "개인수첩에 적어놨던 '비전, 미션, 골'이란 문구를 매번 찾아보며 스스로를 격려했다"고 말했다. 박사학위를 받아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다는 생각도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

이 기장은 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질문에 "현장의 후배들에게 '롤 모델'이 될 만한 최고의 문제해결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품질관리기술사 자격을 취득, 좀 더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현장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다.

개인적인 도전 과제에 대해 그는 "학업과 회사 업무에 집중하느라 신경 쓰지 못했던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하는 것이 목표"라며 환히 웃었다.

임동욱 기자 dwl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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