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건축

2015. 3. 1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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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하지 않고, 그저 걸으며 담담히 볼 수 있는, 그러나 한순간 시처럼 낯설어지는 건물들. 프리츠커 상을 받은 건축가가 한국에 설계했다.

도서출판 동녘 사옥, 파주출판단지SANNA(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파주에 '도서출판 동녘' 사옥이 있다. 기본 설계를 SANNA(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했다. 실시 설계는 조성룡도시건축에서 했다. 설계와 시공이 2001년에서 2003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SANNA가 프리츠커 상을 받은 건 2010년이니까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동녘에 SANNA를 추천한 이는 건축가 조성룡이었다. "당시에도 SANNA는 잘하는 건축가였어요.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할 때였죠." 동녘 사옥은 미스터리한 건물이다.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를 자로 반듯하게 잘라놓은 것 같다. "일반적인 콘크리트 건물처럼 보이지만 달라요. 세지마는 이은 자국이 없는 콘크리트 건물이 되기를 원했어요. 그리고 창을 뚫은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 이 건물로 실험했던 것 같아요. 콘크리트로 어디까지,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조성룡은 짐작하듯 말했지만 실제 이 시기를 기점으로 SANNA는 콘크리트를 더 과감하게 사용하기 시작한다.

SANNA가 설계한 독일 졸버레인 경영&디자인 학교를 보면 동녘 사옥이 SANNA의 건축 세계에서 분기점이 되었을 거라는 추측은 설득력이 있다. 이 건물은 동녘 사옥의 체계화된 확장판 같다. 재밌는 사실이 있다. "그때 세지마는 콘크리트 건물 전체를 1센티미터 철판으로 두르자고 했어요. 1센티미터면 엄청 두꺼운 거예요. 그리고 철판 표면을 갈아서 하얗게 페인트칠을 하겠다는 거예요. 그건 제가 반대했어요. 일단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고, 콘크리트 벽을 다시 철판으로 감싼다는 게 의미가 있나, 생각이 들었어요." 작고한 건축 전문 기자 구본준은 동녘 사옥을 '당황하게 하는 건물'이라고 말했다. 완공되기 전부터 당연히 논쟁거리였다. 하지만 논쟁과는 별개로 이 건물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건축가가 훗날 프리츠커 상을 받았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안양파빌리온, 안양예술공원알바루 시자알바루 시자는 1992년에 프리츠커 상을 받았다. 포르투갈 출신이다. 소위 말하는 모더니즘 건축가다. 파주에 있는 열린책들의 미메시스 뮤지엄, 용인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연구&디자인 센터가 그의 작품이다. 두 건물은 해외 건축 잡지에 자주 소개될 만큼 잘 지어졌다. 알바루 시자 본인도 마음에 들어하는 건물이라고 한다. 알바루 시자는 아시아에선 알려진 게 없는 건축가였다. 그의 아시아 첫 건물은 '알바루 시자' 홀이다. 그의 이름을 땄다. 2007년에 완공됐고, 놀랍게도 안양예술공원 안에 지어졌다. 보고 있으면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했던 괴테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부드러운 선율, 선명한 개입, 숨겨진 은유, 적합한 피상성이 모두 어우러진다. 모더니즘 건물이 흔히 지니고 있는 차가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 건물을 오래 보고 있으면 포르투갈 팔메이라에 있는 야외 수영장이 떠오른다. 1966년에 지어진 이 수영장은 모더니즘 이전의 알바루 시자가 어떤 건물을 지었으며, 어떤 세계에 관심을 두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바닷가의 바위 지형을 그대로 살려 수영장을 '집어넣었다.' 만들지 않아서 만들어진 수영장. 보고 있으면 왜 모더니즘 따위에 영향을 받게 됐는지 답답해진다. 젊은 시절의 알바루 시자는 훨씬 변별력 있는 건축가였다. 알바루 시자 홀은 2013년 공공예술 전문 센터 안양파빌리온으로 재개관했다. 아무렇게나 걸어둔 현수막 때문에 건물의 '음악'이 꺼졌다.

글라스하우스, 제주 섭지코지 휘닉스 아일랜드안도 다다오글라스하우스는 제주 섭지코지 끝에 있다. 정동 쪽에 위치해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다. 제주의 한 극단이며, 가장 넓은 제주다. 이곳에서 보는 바다는 우주로 향하는 바다다. 글라스하우스가 생겼을 때 냉소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천혜의 풍경을 낯선 건물로 막아버린다는 것이다. 그 말은 옳다. 어떤 건물이 들어서더라도 같은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글라스하우스는 자연에 바치는 경의처럼 서 있다. 안도 다다오는 1995년에 프리츠커 상을 받았다. 한국에선 제주의 지니어스 로사이, 글라스하우스가 나란히 첫 건물이다. 2012년 마찬가지로 제주에 본태박물관이 지어졌고, 2013년 강원도 원주에 한솔뮤지엄이 지어졌다.

흔히 말하는 '노출 콘크리트'는 그에게서 발원되었다. 그는 수평선과 지평선을 연상시키는 콘크리트 면을 사뿐히 내려놓는 방식으로 건물을 설계한다. 그는 이 콘크리트 면으로 낯선 시를 적어나가기 시작한다. 언어로 성을 쌓는 것이다. 그의 건물 중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다. 무엇인가 숨어 있다. 그런데 글라스하우스는 어떤 정직함, 온건함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글라스하우스는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건물이 아니라, 건물 뒤의 풍광이 드러난다. 커다란 망원경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것처럼. 1층은 뮤지엄이고 2층은 레스토랑이다. 원형 기둥이 곳곳에서 건물을 지지한다. 자연을 받들되 스스로도 바로 선다. 바다를 보고 있는 것이다.

PHOTOGRAPHY: 김재경(도서출판 동녘 사옥) | EDITOR: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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