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뺨치는 일부 의학전문대학원의 '복장 군기'

이옥진 기자 2015. 3. 1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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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튀지 않게 해주시고, 절대로 지각하시면 안 됩니다. 경우에 따라 재오티(오리엔테이션)를 할 수도 있다고 하니, 학우 여러분의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A대 의학전문대학원)

'정장 바지: 무광택 검정 기본정장 바지. 품이 넉넉하며 헐렁한 것을 추천드립니다. 대면식은 4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주도를 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B대 의학전문대학원)

지난달 있었던 일부 지방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들의 신입생 대면식·오리엔테이션(OT) 복장 지침이다. A대 의전원의 경우 '대면식 복장공지'를 통해 신입생들의 복장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상세하게 규정했다. 남학생의 경우 정장·셔츠·넥타이·구두·양말·머리 규칙이 있는데, 이런 식이다.

'셔츠: 노포켓/흰색/셔츠, 칼라나 손목 깃, 단추 등에 디자인이나 색깔이 들어가 있는 것 안 됩니다.', '구두: 디자인이 최대한 배제된(특히 코·발 등 부분에 재봉선, 디자인 등 X, 구멍 뚫린 구두 X / 검은색입니다. 무광·유광은 감안해주신다고 합니다.' 구매가능한 쇼핑몰의 링크까지 첨부해 '이대로 사셔서 입고 오면 된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여학생은 더 엄격했다. 용모·헤어스타일·바지·재킷·남방·신발·스타킹 등 7가지 규정 분량이 A4용지 3장에 달했다. 헤어스타일의 경우 '스튜어디스 머리'를 강조했다. '앞머리가 있는 사람은 검은 실핀으로 모두 넘김. 머리는 장식이 없는 검은색 고무줄 끈으로 가장 낮은 위치에서 묶음. 염색 및 파마 금지: 흑갈색이거나 천연 갈색이더라도 되도록 검정 스프레이를 이용해 떡질 때까지 검정색으로 뿌려주는 게 좋음.'

이밖에 색깔 있는 단추, 하늘거리거나 가슴팍에 주머니가 있는 셔츠, 2cm가 넘거나 장식이 달린 구두, 재봉선 있는 바지 등은 금지됐다. 공지 말미에는 '절대 이러한 규정을 인터넷상에 유포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과 1학년 선배들은 당일 복장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 대면식 전에 옷을 새로 샀다더라' 등 당부의 말도 적었다.

B대 의전원 사정도 비슷했다. B대 의전원 신입생을 대상으로 공지된 문건은 '장례식장 가는 스타일이라 생각하면 감이 금방 올 것'이라고 복장 규정을 설명했다. 정장 재킷·바지·상의·구두 등의 규정은 A대 의전원과 거의 같았다. 색깔은 검은색만, 장식은 일체 금지됐다. 이런 식이다. '허리에 있는 재킷 주머니 빼고는 그 어떤 디테일(장식)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금장·은장 단추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4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술을 마셔야 하기 때문에 헐렁한 바지를 입으라는 규칙도 있었다. 가장 강조한 건 화장이었다. '메이크업' 항목에는 선배들이 가장 강조한 부분이라며 가능한 화장이 나열돼 있었는데, 눈썹은 회색만 가능했고 입술은 색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립밤만 가능하다고 규정했다.

과거 A대 의전원을 다녔다는 한 학생은 "복장뿐만이 아니라 인사와 호칭 문제, 언어폭력 등 군기잡고 기합주는 문화가 심각했다"며 "모든 의전원의 문제는 아니고 일부 학교의 문제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A대 관계자는 "학생들 사이에 그런 공지가 있었는지 몰랐다"고 했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에서 군대문화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문제 의식이 부족한 일부 대학이나 대학원에선 기존의 군대문화가 재생산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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