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호국인물'은 서일 독립군 총재

박성진 기자 2015. 2. 2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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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은 일제강점기 만주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가 순국한 서일(1881.2∼1921.8) 독립군 총재를 '3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27일 밝혔다.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태어난 선생은 1910년 동만주로 망명해 청일학교와 명동중학교를 설립, 한인 자녀를 교육했다. 대종교에 입교해 만주로 들어오는 망명 의병을 규합해 독립군인 중광단을 조직하고 단장을 맡았다.

서일 독립군총재

1918년 만주와 러시아령에 있는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독립전쟁으로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취지의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듬해 중광단을 정의단으로 개편하고 체코군의 도움으로 무기를 구입해 독립군으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이후 정의단을 무장독립군단을 보유한 항일단체이자 북간도 전 지역을 행정구역으로 삼는 행정부를 겸비한 군정부로 재편성했다.

군사훈련과 무기구입 등의 활동을 벌이던 중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계해 군정부를 대한군정서로 개칭하면서 총재에 취임했다.

1920년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후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 서로군정서군, 안무군, 광복단 등의 여러 부대를 통합해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고 총재가 됐다.

1921년 8월 수백 명의 도적에게 야습을 받고 다음날 독립군 지휘자로서 책임을 통감해 자결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박성진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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