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동물용 의약품'

헬스경향 최신혜 기자 2015. 2.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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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처방제 '있으나마나' 약국서 임의판매, 범죄 악용·오남용 불러..철저한 정부 관리·감독 시급

#2013년 성폭행 직후 신고를 막기 위해 20대 여성에게 동물마취제를 주사한 정모(31) 씨가 검거됐다. 정 씨는 원룸에 가스검침을 나왔다고 속여 성폭행, 신분증을 빼앗고 강간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은 후 동물용마취제 '럼푼'을 주사했다. 또 지난해 6월 30대 남성이 소개팅에 나갔다가 납치·감금당한 뒤 극적으로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소개를 주선한 가해남성은 술잔에 동물용마취제 '졸레틸'을 타 정신을 잃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동물용의약품이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드러나 철저한 관리감독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아무런 제재 없이 누구나 쉽게 동물용의약품 구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동물용의약품들. 졸레틸은 이번달부터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 관리된다.

현재 동물용의약품은 동물병원, 동물약국, 동물약품도매상(가축약품점) 등에서 구입가능하다. 이중 동물약국은 일반약국 중 허가를 받아 동물용의약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전국에 3000여 곳 정도 분포돼있다.

수의사들은 동물용의약품을 판매하는 약국에서 '인체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제품이 손쉽게 거래된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2013년 수의사처방제가 실시돼 '마취제, 호르몬제, 항균항생제 등 오남용으로 사람의 건강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동물의약품과 전문지식이 필요한 의약품' 등은 반드시 수의사의 처방전을 발급받아야 하지만 실제 대다수 동물약국들은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임의처방한다는 것.

사람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동물용의약품들. 졸레틸은 이번달부터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 관리된다.

이는 약사법 제85조 제7항 '동물용의약품 등에 대한 특례조항' 때문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동물약국개설자는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수의사 또는 수산질병관리사의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다. 97개 성분 1162개 제품 중 80%가 약사예외조항에 해당돼 처방전 없이 판매된다. 이로 인해 소비자가 언제든 쉽게 동물용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어 범죄에 악용되거나 의약품오남용을 부르고 있다.

실제 기자가 서울 마포구 L동물약국을 찾아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인 '옥시토신' 호르몬제를 요구하자 약사는 구매의도와 효능 등을 전혀 설명하지 않은 채 제품을 바로 판매했다. 옥시토신은 처방대상 호르몬제 유효성분 32종 중 하나로 자궁근육 수축, 모유분비 촉진 등에 효과적이다. 옥시토신은 '사랑의 묘약'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으며 암암리에 거래된다. 하지만 잘못 투여했을 경우 강박·불안증세를 일으킬 수 있다.

사람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동물용의약품들. 졸레틸은 이번달부터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 관리된다.

동물용마취제 졸레틸을 포함, 자일라진성분의 자그라300, 자이질플러스, 자이진300, 자일라진20, 니르코실2, 럼푼, 셀락탈 등이 쉽게 거래될 수 있다는 점은 더욱 문제다. 이들은 인체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약품으로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범죄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졸레틸의 경우 28일부터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관리된다. 하지만 인체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동물용의약품은 여전히 많다.

방배한강동물병원 유경근 원장은 "동물용의약품이 언제든 사람에게 악용될 가능성이 커 심각한 문제"라며 "정부는 물론 약사들이 범죄에 이용되는 동물용의약품에 대한 관리감독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동물약국협회 임진형 회장은 "가장 큰 문제는 관리시스템의 부재"라며 "정부는 동물용의약품 문제를 농림축산식품부 방역과에 전담시킨 후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물용의약품 기재사항 등에 대한 전산시스템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관리사항에 대한 내용이 지자체에 하달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것.

이어 "자체 연수교육만으로 동물약국약사들에게 도덕적 책임을 부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사람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동물용의약품은 당연히 엄격히 규제돼야하는 것이 맞고 협회는 동물용의약품 부작용사례를 수집하는 등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유야 어쨌든 동물을 대상으로 한 의약품이 사람에게 사용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거나 범죄에 악용되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동물용의약품에 대한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할 시점이다.

<헬스경향 최신혜 기자 mystar0528@k-healt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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