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치] 수억달러에서 '무일푼'으로..몰락한 美 부호가문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이혜원 인턴기자]세계 최고부호 빌 게이츠의 자산으로 몇 대가 누릴 수 있을까. 2015년 2월 현재 포브스가 추정한 그의 자산은 793억달러(약 87조9000만원). 매일 100만 달러를 쓴다고 가정하면 그의 자산을 다 쓰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17년이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가정해 단순하게 계산하면 7대가 빌 게이츠의 재산으로만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억만장자의 부가 항상 영원한 것은 아니다. 수억달러의 재산을 가진 가문이 한세기 후 몰락하는 경우도 있다. 한때 최고부자였지만 후대에 재산을 탕진해버린 미국 부호가문을 알아봤다.

▶밴더빌트(Vanderbilt)가(家)=밴더빌트는 미국 철도산업을 주도했던 가문이다. 네덜란드 이민자인 코넬리우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 뉴욕센트럴철도회사 창립자는 1810년 어머니에게서 빌린 100달러로 사업을 시작했다. 증기선 운송을 시작으로 철도까지 확장했다. 미국과 캐나다에 1만8000km 길이의 철도 노선을 운영할 정도로 번영했던 뉴욕센트럴은 20세기 초반까지 철도업계 1위였다. 코넬리우스가 사망한 1877년 그의 자산은 포브스 추정치로 1억달러. 당시 미국 정부의 예산보다 많은 액수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2억6200만달러, 우리돈 1조4000억원에 이른다.
명성은 2대까지 이어졌다. "누구나 돈을 벌 수 있지만, 똑똑한 사람만이 번 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듣고 자란 아들 윌리엄은 명민하게 경영했다. 아버지 코넬리우스에게서 뉴욕센트럴 지분 87%를 물려받아, 자산 1억달러를 두배로 늘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밴더빌트가의 부는 대(代)가 내려갈 수록 줄어들었다. 윌리엄의 지분을 분할상속받은 3대 윌리엄 키삼(William Kissam)은 회사 운영에 관심이 없었다.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것은 행복의 장애물이었다"고 말한 그는 요트와 종마 등 호화로운 취미생활에만 몰두했다. 4대 레져널드 밴더빌트(Reginald Venderbilt)도 사교모임 운영에 재산을 탕진했다.
2차세계대전 이후 교통수단이 다양화되자 뉴욕센트럴은 퇴로를 걷기 시작했고, 1970년 결국 파산 신청을 했다. 밴더빌트 가문이 소유했던 맨해튼 내 호화 저택과 아파트는 모두 철거되거나 매각됐다. 저택 대문은 현재 뉴욕 센트럴 파크 온실정원의 출입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밴더빌트 6대손인 앤더슨 쿠퍼(Anderson Cooper) CNN 앵커는 "가족에게 남겨진 재산은 더이상 없다. 물려받은 것이라곤 자선활동의 유산뿐"이라 밝혔다. 밴더빌트는 미국 명문 사립대학인 밴더빌트 대학교를 포함해 뉴욕 컬럼비아대학, YMCA 등에 기부를 한 바 있다.

▶하트포드(Hartford)가=조지 하트포드(George Hartford)는 미국 식료품업계 거물이었다. 1859년 그는 미국 슈퍼마켓 A&P의 전신인 그레이트 아틀랜틱 앤 퍼시픽 티 컴퍼니(Great Atlantic & Tea Co.)를 설립했다. 미국 유통산업을 이끈 A&P는 1975년까지 미국 최대 슈퍼마켓 체인이었다. 당시 영향력이 현재의 맥도날드나 구글만큼일거라는 추측이다. 하트포드가문은 1940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중 하나였다.
업계 거물이던 할아버지와 달리 손자 헌팅턴 하트포드(Huntington Hartford)의 말년은 쓸쓸했다. 경영권이 없던 그는 평생 특별한 직업없이 물려받은 재산으로만 살았다. 그의 직장생활은 단 두차례. 1934년 하버드 졸업 후 A&P에서 계산원으로 일한 것과 신생 신문사에서 6개월간 기자 생활을 한 것이 전부다.
조부가 남긴 연 150만달러(약 16억6000만원)의 고정수입과 어머니에게 상속받은 400만달러(약 44억3000만원)로 부족하지 않게 시작했지만 한때뿐이었다. 그는 자산으로 예술품ㆍ리조트 등에 투자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방탕한 생활도 재산 탕진에 한몫 했다. 네번의 결혼과 이혼 과정에서 낸 위자료만 수백만달러에 이른다. 90년대 초 파산한 그는 중미 바하마로 이주한 뒤 2000년대 말 생을 마쳤다.

▶스트로(Stroh)가=밀러(Miller)ㆍ쿠어스(Coors)처럼 가문의 이름을 딴 맥주 상표가 있다. 스트로(Stroh)도 그 중 하나였다. 창립자 베른하트 스트로(Bernhard)는 독일계 미국인이었다. 1850년 미국 디트로이트로 건너가 맥주사업을 시작했다. 150달러에 구입한 양조기계로 제작한 맥주를 손수레로 팔던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사업을 확장해 스트로는 미 중서부 대표맥주회사로 자리잡았다.
2ㆍ3대까지 사업은 순조로웠다. 20세기 초반 미국 전역에 금주령이 내려져 맥주 양조가 불법이 됐을 때도 맥아 아이스크림과 시럽 등을 만들어 위기를 극복했다. 1980년 스트로 맥주는 미국에서 3번째로 큰 맥주 회사였으며, 스트로가문의 재산은 당시 7억달러였다. S&P지수에 견줘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90억달러(약 9조9700억원)는 될 것이라는 추측이다.
하지만 스트로가는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1980년 경영권을 승계한 4대 피터 스트로(Peter Stroh)가 무리하게 기업을 인수한 탓이었다. 81년 에프엔엠 섀퍼(F&M Schaefer)에 이어 이듬해 슐리츠(Schlitz) 맥주를 인수했다. 스트로보다 규모가 6배나 큰 회사였다. 하지만 새로운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부채만 쌓여갔다. 대중은 순한 맥주를 원했지만 스트로는 이를 외면한 것도 또다른 실패의 이유였다.
막대한 부채에 스트로는 결국 1999년 회사를 매각했다. 5세대인 현재 후손들은 과거의 영광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자산은 디트로이트 내 상가건물 몇개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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