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내전, 세르비아 종족말살 입증 못해" ICJ, 크로아티아 16년 전 학살 책임 묻는 소송 기각
여러 민족이 함께 살던 나라가 내분에 휩싸였다. 공격, 학살, 추방이 반복된 끝에 민족들은 뿔뿔이 갈라져 제각각 나라를 세웠다. 이런 학살과 추방의 책임을 새로 태어난 독립국들에 물을 수 있을까.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유엔 산하 재판소가 16년 만에 "책임 없다"는 판결을 내놨다. 국가 간 분쟁을 재판하는 유엔 산하 법정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3일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 지역에서 1990년대 벌어진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라며 크로아티아가 세르비아를 상대로 낸 소송을 기각했다.
슬로바키아 출신 법관인 ICJ의 페테르 톰카 판사는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가 제노사이드(종족말살)를 자행했음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근거로 든 것은 1948년 채택된 제네바 협약이다. 이 협약은 제노사이드에 대해 "특정 국민, 민족, 인종, 혹은 종교집단을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해당 집단의 구성원들을 살해하거나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야기하는 행위, 해당 집단의 출산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거나 해당 집단의 아이들을 다른 집단으로 이주시키는 행위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톰카 판사는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 민족집단을 "힘으로 몰아내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집단 전체나 일부를 "파괴하려는 의도로" 공격한 것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1990년대 옛 유고연방 내전 때 독립을 원하는 크로아티아계와, 연방의 존속을 원했던 세르비아계 간에는 격렬한 전쟁이 벌어졌다.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계가 조직적 학살을 저질렀다며 1999년 ICJ에 제소했다. 그러자 세르비아는 "크로아티아가 세르비아계 주민 20만명을 강제 추방했다"면서 2010년 맞제소했다. 톰카 판사는 세르비아의 제소도 역시 기각했다. 17명으로 구성된 재판부 중 크로아티아의 주장에는 15명이, 세르비아의 주장에는 11명이 반대표를 던졌다고 인세르비아뉴스는 전했다.
내전 시기의 대량학살 등 반인도 범죄에 대해서는 유엔 산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국가 간 제소에 대한 유엔 법정의 판결은 처음이어서 관심이 집중됐다. ICJ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두 나라는 공방을 벌이면서도 서로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내왔다. 오르사트 밀리에니치 크로아티아 법무장관은 "전쟁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리고자 한 우리의 목적은 이미 달성됐다"고 했고, 이비차 다치치 세르비아 외교장관도 판결에 대해 "양국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AFP통신 등은 이번 판결이 양측에 과거를 씻고 화해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면서, 내전 당사자들이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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