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은 '야구의 귀신'?

이병효 편집인 2014. 12. 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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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N=이병효 편집인] 프로야구 선수들이 모처럼 달콤한 휴식을 즐기는 12월, 김성근 감독은 바쁘다. 2014 시즌 KBO 꼴찌를 기록한 한화 이글스를 맡아 내년 시즌의 필승전략을 짜야 하고, 팬서비스 차원의 언론 플레이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화의 목표는 우승"이라고 호언한 바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명장 김성근의 말이기에 야구팬들은 '설마'하면서도 '혹시'라면서 기대에 찬 눈으로 한화의 발걸음을 지켜보고 있다.

김성근 감독이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이라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그는 1984년 OB 베어스의 지휘봉을 잡은 이래 22시즌 동안 7개 프로구단의 감독을 맡아왔다. 김응룡 감독 이후 1200승 고지를 밟은 두 번째 감독이 됐고, 통산 승률로도 역대 열손가락 안에 꼽힌다. 더욱이 그는 윗사람과 구단 프론트에게는 껄끄럽지만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존경을 받는 야구인으로 알려졌다. 야구계에서 끝없는 논란의 대상이고 안티도 많은 편이지만 약팀의 리빌딩 전문가인데다 전술전략과 선수조련의 달인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을 않는다.김 감독을 둘러싼 논란 가운데 부분적으로 공감이 가는 대목은 그가 한국에 온지 55년이 됐음에도 일본식의 어눌한 발음을 한다는 점이다. 말을 잘 못하기로는 북한 태생 김응룡 감독도 마찬가지지만 그는 북한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서울에 올라온 지 몇 십 년이 지나도록 고향 사투리를 고집하는 사람은 대개 특정 사투리 사용이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감안하면 그의 일본식 말투가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또 한화 이글스에 부임해서 코치진의 3분의 1 가까이 일본인 코치들을 기용한 것도 꼭 필요했나 싶다. 가는 구단마다 외아들을 끼고 다닌 것을 보면, 한국에는 가족끼리 한 직장에서 일하는 것을 가급적 피한다는 '상피(相避)'의 전통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탓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은 대단한 능력자다. 오죽했으면 '야신' 즉 '야구의 신'이라 불리겠는가. 야신이라는 별호는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김응룡 당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우승소감을 말하면서 "마치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김성근 감독 본인은 이 발언에 대해 '내가 신이면 나를 이긴 자기는 뭐가 되는 것이냐'라며 웃어넘겼다고 전해졌다. 이 야신이라는 이름이 팬들과 언론에는 참신하면서도 뭔가 끌어당기는 표현이 되는 바람에 이후 김성근 감독하면 곧 야신이 됐다.

김응룡 감독의 한 치 가슴 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김성근 감독을 가리켜 "야구의 신"이라 한 것은 나름 전략적 발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김응룡 감독은 원래 겉모습과 다르게 상당히 노회한 데가 있고 치밀하게 계산된 언동을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응룡 감독과 김성근 감독은 비슷한 연배인 프로야구의 터줏대감으로 서로 경쟁관계에 있어왔다. 따라서 김응룡 감독이 악전고투 끝에 김성근 감독을 누른 순간에 맞수를 추어올림으로써 자신의 인품과 도량을 보이고 스스로 더 높은 곳에 자리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하나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 순간 떠오른 최상의 칭찬을 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문제는 야신이라는 표현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우리 문화와는 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개인을 높이 평가할 때 우리는 전통적으로 '신'이라는 표현을 피해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삼국시대 이래 불교가 전래되고 유교가 내면화되면서 무속신앙의 신령이나 초자연적 존재를 잡신 정도로 낮춰 보게 된 영향이 있는 것 같다. 또 조공시대에 중국을 높이고 우리를 그 다음쯤의 '소중화'로 여기는 겸양지덕을 발휘해 극존칭을 피했다. 반면 일본은 유교의 영향이 제한적이어서 토착신앙인 샤머니즘이 온존했고 메이지시대에는 국가종교인 신도로 승격되기도 했다. 일본 전역에 800만이 넘는 신(가미)이 있다할 정도여서 어떤 분야에서 최고봉에 이른 사람을 '신'이라 부르는 데 주저할 것이 없었다. 비슷한 예로 특정 분야의 권위자를 덴노(천황)라고 부르는 것도 흔한 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야신을 비롯해 인터넷 상에서 유재학 감독을 '농신'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김연아 선수를 하느님과 동격인 '연느님,' 이상화 선수를 '상느님'이란 별칭으로 일컫는 현상이 나타났다. 과거 개인을 신이나 하느님에 비기는 데 대한 금기나 거부감이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좋을 지경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왕족'들은 현실적으로는 재벌 일족일지 모르지만 대중의 마음속에서는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야신과 농신 다음에는 '연기의 신' '노래의 신' '개그의 신'이 나올 차례다. 개인적으로, 대중의 우상을 신적 존재로까지 받들어 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건국 지도자인 이승만 대통령을 두고 1950년대 말 '외교에 귀신, 내치엔 등신'이란 말이 항간에 떠돌았다. 이 대통령을 비아냥거리기 위해 만든 말이었지만 국민의 공감을 얻은 표현이었다. 여기에서 귀신이란 호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하다는 찬사였다. 우리 문화에서 귀신은 더 높이기 어려운 극찬의 호칭이다. 일본에서 신은 수백만이지만 한국에서의 신은 오직 하나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귀신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여럿이 있을 수 있다. 영어에서도 최상급을 '원 오브 더 베스트'라고 하지 '디 베스트'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차원에서, 야신은 '야구의 신'보다 '야구의 귀신'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당사자나 팬, 그리고 일반 대중 모두를 위해 적당하지 않나 싶다. "김성근 감독은 야구의 귀신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bbhhlee@onst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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