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이것은 '의거'다? '일베'가 열광한 사제폭탄 테러

김덕훈 2014. 12.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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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지상낙원이라 하지 않았느냐?"

얼굴이 벌개져 질문하던 19살 오모 군이 느닷없이 강단에 사제폭탄을 투척합니다. 삽시간에 불길이 치솟고, 강연장은 연기로 가득찹니다. 참석자 2명이 다치고, 200명이 대피했습니다. 스스로 '인생의 목표'라던 테러를 완수한 뒤, 오 군은 곧바로 경찰에 연행됩니다. 지난 10일 전북 익산의 한 성당에서 열린 '신은미·황선의 토크콘서트'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 의거냐, 테러냐?

사건 직후 일간베스트저장소, 흔히 '일베'라고 부르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들썩였습니다. "이것은 '의거'다."

토크콘서트 강연자인 재미교포 신은미 씨와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에게는 '종북주의' 꼬리표가 붙어있습니다. "북한의 젊은 지도자가 기대된다"거나 "북한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나라"라고 말했던 과거 행적이 문제가 됐습니다. '종북주의자'들에 대한 공격은 '테러'가 아니라 '의거'라는 게 '일베'의 생각입니다.

당장 안중근 의사와 오 군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등장했습니다. '오 열사'로 추앙받으며, 모금 운동도 활발히 벌어졌습니다. 오 군에 대한 열광은, 일베가 특정 정치세력을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를 거꾸로 보여줍니다.

▶ 약자를 향한 폭력성 '증오 범죄'

'일베'에서는 이념·성·지역과 관련한 차별적 발언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을 '삼일에 한 번 매로 다스려야 하는 존재'로 표현하는가 하면, '리틀싸이'로 유명세를 탄 다문화 자녀 황모 군의 국적을 문제삼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성향이 최근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광화문에서 단식 투쟁을 하던 세월호 유가족을 조롱한 '폭식투쟁'이 대표적입니다. 오 군의 '사제폭탄 테러'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약자에 대한 증오에 바탕한 '증오범죄', 전문가들은 이같은 '증오범죄'를 가혹한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행위라고 지적합니다. 내 처지를 약자 탓으로 돌려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사회병리적 현상이라는 겁니다.

병적인 수준이라도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합니다. 하지만 폭력이 현실이 된다면 책임은 개인이 오롯이 질 수밖에 없습니다.

▶ '사제폭탄 테러' 오 군, 어떻게 되나?

경찰은 오 군에게 모두 4가지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폭발성 물건 파열치상 혐의와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인데요. 특히 폭발성 물건 파열치상 혐의는 3년에서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는 중범죄입니다.

오 군은 범행 전 폭약을 직접 만들어 수차례 성능 실험을 하고, 범행을 예고하는 글까지 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임을 경찰에 인정한 겁니다. 경찰은 오 군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고작 '오 열사'로 칭송받는 대가로는 가혹한 결과입니다.

▶ '증오 범죄' 대책 없나?

미국 백인우월주의 테러단체 KKK(Ku Klux Klan)단은 유색인종에 대한 테러로 악명이 높습니다. 단지 백인을 불렀다는 이유로 흑인을 폭행하고, 흑인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시민을 숨지게 했습니다. 미국은 이 같은 차별적 범죄를 막으려 1968년 시민적 권리에 관한 법률(Civil Right Act of 1968)을 만들었습니다. 인종·종교·민족을 이유로 다른 사람을 해치면 종신형에서 사형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스위스 등 다른 선진국도 차별로 인한 증오범죄를 법률로 가중 처벌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 국회에서도 '증오범죄법'이 발의됐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차별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방증입니다. 가중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지역·인종 등을 빌미로 벌이는 증오범죄에 대해 경각심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또, 증오범죄가 일종의 병적 현상인만큼, 평등교육과 심리치료 등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김덕훈기자 (standb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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