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천고사설] 망년우(忘年友)와 송년회
고려사 '이인로(李仁老) 열전'은 이인로(李仁老ㆍ1152~1220)의 자(字)를 미수(眉?), 즉 '눈썹 흰 늙은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字)는 스무 살에 관례(冠禮)를 치른 후에 따로 짓는 이름인데, '눈썹 흰 늙은이'는 좀 의아스럽다. 그가 어렸을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났으니 장수를 축수(祝壽)한 자(字)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만 예순여덟로 장수했으니 자(字) 덕을 봤는지도 모른다. 그는 만 열여덟 살 때 무신란(武臣亂)이 일어나자 불문에 귀의했다가 태학에 들어가 육경을 공부했다. 명종 10년(1180) 진사시에 장원급제한 후 서른 살 때인 명종 12년(1182)에는 서장관(書狀官)으로 금(金)나라 수도 남경개봉부(南京開封府)를 다녀왔는데,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였다. 고려사 '이인로 열전'은 그가 "당대에 시로써 이름이 있었으나 성격이 좁고 급하며 그 시대와 거슬려서 크게 쓰이지 못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무신정권과 맞지 않았다는 의미인데 대신 오세재(吳世才)ㆍ임춘(林椿)ㆍ조통(趙通)ㆍ황보항(皇甫抗)ㆍ함순(咸淳)ㆍ이담지(李湛之)같은 선비들과 시와 술로 서로 즐기니 세상에서 강좌칠현(江左七賢)과 비교했다고 전한다. 강좌칠현은 중국 위(魏)ㆍ진(晋) 시대 지금의 하남성 휘현(輝縣) 서북 일대였던 산양(山陽)현에 은거했던 완적(阮籍)ㆍ혜강(?康)ㆍ산도(山濤)ㆍ유영(劉伶)ㆍ완함(阮咸)ㆍ향수(向秀)ㆍ왕융(王戎) 등의 죽림칠현(竹林七賢)과 비교한 말이다. 그런데 고려사 '이인로 열전'은 이들에 대해서 "망년우(忘年友)를 맺었다"고 전하고 있다. 망년우란 나이를 잊고 사귀는 친구라는 뜻이다. 충북 제천군 한수면에 있던 월광사(月光寺)의 '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圓朗禪師大寶禪光塔碑)'에도 "나이를 잊고 교류하자고 청했다(忘年請交)"는 말이 나온다. 이 비는 당(唐) 소종(昭宗) (龍紀) 2년(890ㆍ신라 진성여왕 4년)에 세운 것이니 통일 신라 때도 사용하던 용어였다. 망년우를 '망년지교(忘年之交)'라고도 하는데 망년지교를 맺을만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타내는 표현이 '청안(靑眼)과 백안(白眼)'이다. 진서(晋書) '완적(阮籍) 열전'에 따르면 완적은 시속에 영합하는 예속지사(禮俗之士)를 만나면 백안(白眼ㆍ흰자위)를 드러내서 경멸하고 술과 거문고를 낀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서 청안(靑眼ㆍ검은 눈동자)으로 대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뜻이 맞는 사람이라고 모두 망년우를 맺을 수는 없으니 몇 살이 한계냐가 궁금할 것이다. 안동 출신 재일교포 윤학준(尹學準) 교수의 양반에는, '상팔하팔(上八下八)'이라는 말이 있다. 위로 여덟 살, 아래로 여덟 살까지는 망년우로 사귈 수 있다는 뜻이다. 조혼하는 풍습에 따르면 상팔하팔을 넘으면 자칫 부친과도 친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한계를 정한 것이다. 그래서 여덟 살이 넘으면 '부사지(父事之)', 즉 아버지를 대하는 예로 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살다 보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반말하는 것을 자신이 높아진 것으로 착각하는 세칭 '싸가지 없는 인간들'도 있다 보니 함부로 망년우 운운할 것은 아니다. 망년우는 서로 속을 터놓고 지낸다는 뜻이지 함부로 대한다는 뜻은 아니다.
일본의 대사천(大辭泉)에 "한 해가 끝날 무렵, 그 해의 고로(苦勞)를 잊는 것을 망년회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망년회가 일본식 용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송년회(送年會)란 용어로 대체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여러 문적을 조사해봤지만 우리 선조들이 송년회란 용어를 사용한 용례는 찾지 못했다. 반면 조선 초기에는 궁중에서 매년 한 해가 끝날 때 내시별감(內侍別監)을 사찰과 산천에 보내 왕실과 나라의 복을 빌었는데, 이를 연종환원(年終還願)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사람들의 기록인 연행록(燕行錄)에는 중국에서는 매년 마지막 날 궁중에서 연종연(年終宴)을 열었다는 기록이 많다. 그런데 승정원일기 등을 찾아보면 조선에서는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따로 연종연을 열지는 않고 왕실과 대신들이 과세문안(過歲問安)을 하면 알았다고 답하는 정도였다. 고려 후기의 문인 이규보(李奎報)는 이인로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듣고 자신이 죽림회(竹林會)에 참석했던 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시를 썼다. "여섯 군자는 모두 귀록(鬼錄ㆍ귀신 명부의 기록)에 올라서/서로 잇따라 황천 땅으로 돌아갔지만/공은 홀로 칠십이 넘었기에/이제 막 정승의 중망이 있었는데/오늘 또 관을 닫으니/뜬 영화는 참으로 한 순간일세(六君皆鬼錄/相繼歸黃壤/公獨頗耆壽/方有三台望/今日又盖棺/浮榮眞一餉)"
연종회든 송년회든 소주 한 잔에 잘못된 세상과 한 발 떨어져 함께 인생을 보낼 망년우가 몇이나 있는지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으리라. 지난 정권의 실세였던 대통령의 형과 측근들이 줄줄이 감옥 가는 것을 보고도 그 못지않은 권력다툼이 재연되는 것을 보고 느끼는 연종(年終)의 소회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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