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입력 2014. 12. 5. 12:59 수정 2014. 12. 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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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있으면 도려내야지, 어쩌겠나. 야당 요구에 만약 여론까지 뒷받침된다면 이걸 피하는 것 자체가 죽는 길 아니냐. 그러니 상황을 좀 봐야지." 한 '친박(親朴)계' 핵심 의원에게 이른바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사업) 비리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가 실시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문제가 있다면 해야겠지만 상황에 따라 어찌 될지 모르겠다는, '알 듯 모를 듯'한 태도다.

사자방 국정조사를 대하는 친박계의 속내는 사뭇 복잡하다. 야당과의 관계나 여권 내부의 역학 구도를 관리할 수 있는 호재로 볼 수 있지만, 자칫 '친이(親李)계'에 대한 압박이 부메랑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다. "친박계가 사자방 국정조사를 두고 '썸타는' 듯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실제 사자방 국정조사에 대한 친박계 인사들의 언급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묘한 뉘앙스가 풍긴다. 이완구 원내대표나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매번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 이 원내대표가 검토 시점에 대해 처음으로 정기국회 이후를 언급했는데, 이조차도 여전히 모호하다. 그러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김무성 대표 체제 등장 이후 숨죽여온 친박계가 반격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10월1일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에서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군현 새누리당 사무총장. ⓒ 연합뉴스

사자방 국조, 친박에 좋은 카드 될 수도

김무성 대표 중심의 비주류가 당권을 장악한 이후 친박계는 원내 지도부를 중심으로 움직였을 뿐 당무에선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단적인 게 조직강화특위의 면면이다. 당장은 당무감사와 사고 당협위원장 인선에 집중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20대 총선을 겨냥한 지역 조직 정비의 중책을 맡고 있는 기구다. 이번에 당협위원장으로 인선될 경우 2016년 총선 공천 경쟁에서 기득권을 확보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강특위 내 친박계 인사로는 초선인 함진규 의원(경기 시흥갑)이 유일하다. 조강특위 구성 직후 한 영남권 친박계 중진 의원이 기자들과 만나 "우리 목을 치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다. 실제 친박 의원들 사이에선 김 대표가 말로는 상향식 공천을 주장하며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보장할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상은 친박계를 솎아내려 한다는 의구심이 상당하다.

사자방 국정조사가 경우에 따라 친박계에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방산 비리와 관련한 의혹은 사실상 이명박 정부 비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떤 식으로든 친이계 인사들 상당수가 직간접으로 연루돼 있다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친이계를 등에 업은 김 대표 체제가 이대로 공고화할 경우 친박이 뿌리째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야당이 먼저 사자방 국정조사를 들고나왔으니 오히려 여권 내부를 다잡을 수 있는 무기가 생겼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곧바로 사자방 국정조사를 수용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도 분명하다. 한 친박계 의원은 "내부를 향한 총질의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과거 친이-친박 사이의 쟁투를 경험했던 만큼 여권 내부에서 파열음이 발생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이 큰 것이다. 그렇다고 사자방 국정조사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하기도 쉽지 않다. 이미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상득 전 의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산더미처럼 불거져 있는 데다, 야권이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등에 쏟아부은 '헛돈'이 100조원에 달한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휘발성이 큰 요소들이 널려 있는 것이다.

친이계는 현 정부 권력 핵심부가 사자방 국정조사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 자체에 발끈하고 있다. 자칫 이 전 대통령이 직접 화살을 맞을 경우 연쇄적으로 자신들에게도 불똥이 튈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40대 총리 후보자로 지명받은 바 있는 김태호 최고위원이 공식 회의석상에서 "야당의 요구는 결국 정쟁으로 가자는 것"이라며 "당 지도부가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건 이 때문이다. 최근 들어 친이계의 회동이 잦아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이 전 대통령 측근 그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1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출신 측근 10여 명과 만찬 회동을 가졌고, 11월21일 아랍에미리트(UAE) 출국 전에도 일부 친이계 의원들과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 전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사자방 비리 의혹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이 "문제 없다"고 공언한 얘기를 공공연히 흘리고 있다.

↑11월13일 서울남부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마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기다리던 지인과 악수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새누리당 내 친이계 의원들도 모임을 재개했다. 18대 국회 당시 여권 내 최대 계파 모임이었다가 지금은 명맥만 유지되는 듯했던 '함께 내일로'가 최근 공식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친이계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과 이군현 사무총장, 주호영 정책위의장, 김기현 울산시장 등 무게감 있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들은 12월 송년회를 겸해 한 차례 더 회동할 예정이다. 여권 안팎에선 사자방 국정조사를 비롯한 친박계의 움직임에 맞서 대응책을 모색하는 차원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친이계 중진 의원은 "솔직히 4대강 사업이야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기고 있고, 자원외교야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고, 방산 비리도 업체와 군 간부들 간 유착 문제 아니냐. 이를 두고 청와대와 친박계 몇몇 인사들이 우리를 압박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짓거리"라고 발끈했다.

내년 초 발간될 MB 회고록에 관심

최근 이 전 대통령이 내년 상반기 발간을 목표로 회고록을 탈고하는 단계에 와 있다는 얘기가 친이계 인사들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논란이 되고 있는 현안들에 대한 해명과 반박이 주를 이루겠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를 겨냥해 정권 재창출 과정의 비화가 담길 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저간의 상황을 감안할 때 결국 청와대와 친박은 검찰 수사나 감사원 감사 등 행정력을 동원해 1차 스크린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국정조사를 수용하더라도 최소한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로 사전에 상황 관리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친박계 핵심 의원의 한마디가 의미심장하게 들려왔다.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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