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정권이다"
"고구려는 조기 중국 북방의 소수민족정권입니다."
중국 지안(集安)의 '고구려 제28대왕 박람관'에 설치된 한글 안내판의 내용이다. 안내판은 "기원 668년 당나라에서 일어난 국내전쟁으로 고구려 정권은 철저히 소멸됐고, 그 소망(消亡)도 필연적"이라고도 했다. 이 14줄짜리 안내판에서 동북공정을 통해 정리한 중국의 고구려사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의 지방정권에 '불과한' 고구려가 중앙정부(당나라)와의 '내전(內戰)'에서 패해 '철저히' '필연적으로' 멸망했다는 것이니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은 고구려의 조상을 기원전 10세기에 출현한 고이족(高夷族)에서 찾았다. 기원후 4세기 진나라 학자 공조(孔晁)가 <일주서(逸周書)> '왕회해(王會解)'에 보이는 '고이족'을 두고 "고이는 동북이인 고구려다(高夷東北夷高句麗)"라고 달았던 주석에 착안한 것이다. 나아가 고이족의 조상이 고양(高陽)씨라고 견강부회했다. 고양씨는 중국 역사에서 중국인의 조상이라는 황제(黃帝)의 손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고양씨→고이족→고구려로 연결되고, 따라서 고구려는 중국 민족의 한 갈래인 소수민족정권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고구려-당나라의 싸움은 '국제전'이 아니라 '내전'이 되는 셈이고…. 하지만 중국학자들조차 신뢰하지 않은 <일주서>라는 문헌에, 그것도 후대 인물의 주석으로 한 줄 인용된 기사로 '고구려=중국인의 갈래'라 확정지을 수 있을까. 또 <삼국지>나 <주서>, <후한서> 등 중국의 정사들은 고구려의 역사를 예외없이 '동이전' 혹은 '이역열전(異域列傳)'에 실었다.
고구려사가 중국사가 아님을 그들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새삼 1963년 6월28일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북한 과학원대표단 앞에서 피력했다는 통찰력있는 역사인식이 떠오른다.
"중국은 봉건대국의 태도로 조선을 무시 모욕하면서 침략할 때가 많았다.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진·한나라 이후 빈번하게 랴오허 유역을 정복했는데, 분명한 침략이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중국인과 공산당원 중 무엇이 더 중요한 신분이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중국인'이라 답했다. 그 정도로 중국을 사랑한 지도자였다. 그랬지만 "역사는 결코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서술하면 안된다"는 신념을 피력했다. 그것이 저우언라이가 중국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이기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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