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윤지수 아버지' 윤학길 "펜싱 제대로 본 것은 처음" 감격

고양 | 이정호기자 2014. 9. 2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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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선전은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도 웃음짓게 만들었다. 윤학길(53) 전 롯데 2군 감독은 전화통화에서 평소처럼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가볍게 떨리면서 톤이 높아진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서 조금 전 끝난 감격적인 순간의 여운을 느끼게 했다.

23일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펜싱 5번째 금메달을 딴 여자 사브르 단체전 '여자 검객' 4인방 가운데 한명인 윤지수(21·동의대)가 그의 딸이다.

윤 감독은 프로야구에서 현역 시절 통산 100완투라는 전설적인 대기록을 세운 스타 플레이어였다. 펜싱 선수 윤지수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아버지 윤학길이 부각됐다. 윤 감독은 "지수가 아빠 이름이랑 같이 나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딸이 이룬 성과에 내 이름이 함께 이야기되는 것도 미안한 마음"이라며 조심스러워 했다.

하지만 윤지수는 경기 뒤 믹스트존에서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없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저를 낳아줘 감사하다"며 가장 먼저 고마움을 표시했다.

윤 감독은 이날 딸의 결승전 출전에도 경기장에 찾아오지는 않았다. 일년내내 시즌이 이어지는 프로야구에 몸담는 윤 감독은 아내를 통해 딸의 컨디션과 경기 결과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날도 딸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평소처럼 먼발치에서 응원했다.

TV를 통해 윤지수의 활약상을 지켜본 윤 감독은 "사실 펜싱을 제대로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펜싱이 굉장히 박진감이 넘치고 전략이 많이 필요한 종목이더라"라며 손에 땀을 쥐게 만든 극적인 승부를 떠올렸다. 윤지수가 이날 주인공이었다. 윤지수는 14-20로 뒤진 5라운드에서 랭킹 8위의 중국의 에이스 선천을 상대로 8득점을 올리면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윤 감독은 "지수가 첫번째에서 부진하는 바람에 '금메달이 어렵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두번째에는 너무 잘해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경기 뒤 전화를 걸어온 윤지수에게도 "경기 잘 봤다"는게 축하인사의 전부였다. 전형적인 경상도 아버지라 칭찬과 축하를 표현하는 것을 어색해했지만 선배이자 아버지로서 큰 무대에서의 금메달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솔직히 뒷바라지를 하나도 못했는데 자기가 열심히 했다"면서 뿌듯해 했다.

사실 윤 감독은 딸이 운동을 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그는 "딸이라 힘든 운동보다 예쁘게 키우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식은 부모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윤지수는 어릴 때는 축구에, 초등학교 때는 태권도에 빠지더니 해운대 양운중학교에 입학해서는 펜싱에 시선을 빼았겼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선지 운동신경도 좋았다. 윤 감독이 '그래도 펜싱은 여자가 하기에는 괜찮은 운동이네'라고 생각하며 허락한 것이 윤지수의 운명을 바꿨다.

빠른 시간에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보인 윤지수는 2012년 오사카 아시아펜싱선수권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휩쓸며 2관왕에 오르는 등 '펜싱 코리아'의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키 169㎝의 신체적 강점과 경기를 끝까지 책임졌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근성도 부전여전이다.

윤지수는 "이제 아시안게임에서 1등을 해봤다. 펜싱은 국내 선수간 경쟁이 더 힘들고 어렵지만 다음에는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더 큰 영광을 이루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종합대회에서 첫 금메달을 따낸 윤지수를 향한 아버지의 첫번째 당부는 한결같았다. "앞으로는 더 관심갖는 사람 많아지니까 행동을 더 겸손하게, 더 열심히 해라"였다.

<고양 | 이정호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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