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K칼럼] 로저 슈미트: 6부에서 챔스 감독으로

2014. 9. 1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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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 6부 리그 파트타임 지도자가 있다. 그의 꿈은 UEFA챔피언스리그에서 팀을 이끄는 것이다. 너무 거창한가? 아닐 수도 있다. 바이에르 레버쿠젠의 로저 슈미트 감독에게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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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휴일을 보낸다. 하이킹을 가거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앨범을 듣는다. 47세 중년남(男) 로저 슈미트의 휴일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예전 그는 휴일에 축구 클럽을 지도하는 파트타임 지도자였다. 2014-15시즌 지금 그는 분데스리가 강팀 바이에르 레버쿠젠을 이끌고 있다.

한때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그는 축구와 관련된 모든 활동을 접으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도자 활동을 이어갔다. 5부 리그 클럽에서 처음 전임 지도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7년 뒤인 2014년 UEFA챔피언스리그 무대 위에 섰다.

지난주 레버쿠젠은 분데스리가 라이벌인 베르더 브레멘과 3-3으로 비겼다. 개막 3라운드를 치른 지금 그의 팀은 분데스리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거둔 승리 덕분이기도 하다.

2000년이 되기 전까지 슈미트는 대기업 <벤텔러>에서 자동차부품 납품업무를 담당했다. 여가시간에는 지역 축구팀에서 선수로 뛰었다. 선수 생활을 마감한 슈미트는 2004년 6부 리그 소속인 델브뤼커SC에서 파트타임 감독이 되었다. 경기장 안팎에서 성공이 이어졌다. 회사에서는 품질관리팀으로 승진했고 델브뤼커는 5부 리그로 승격했다.

2007년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5부 리그에 있던 프뤼센 뮌스터로부터 감독직을 제안받은 것이다. 결국 슈미트는 <벤텔러>에서 퇴사했다. 축구 감독을 자신의 직업으로 삼기로 한 첫 순간이었다. 슈미트는 "그 결정에 대해서 후회한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당연하다. 이 말을 했을 당시, 그가 이끄는 레드불 잘츠부르크는 오스트리아 1부 리그에서 33경기 연속 무패를 달리고 있었다.

# 기대 이상의 성과

슈미트는 프뤼센 뮌스터와 파데르보른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오스트리아 선도 클럽들의 눈길을 끌었다. 부임 첫 해 프뤼센은 상위 리그로 승격한 것은 물론 지역 컵 2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큰돈이 보장되는 DFB포칼 1라운드에 진출했다. 2010년 3부 리그 승격에 실패하자 슈미트는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자동차업계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UEFA 프로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해서였다.

프로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한 슈미트는 파데르보른 감독으로 취임했다. 20년 전, 그는 이곳에 있는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동시에 TuS파데르보른-뉘하우스에서 세미프로 축구선수 생활을 했다. 2011년 7월 그곳으로 슈미트는 감독이 되어 돌아왔다.

SC파데르보른07은 빅클럽이 아니다. 홈경기장 수용 규모도 15,300명밖에 되지 않는다. 슈미트는 2011-12시즌 이 작은 클럽을 2부 리그 5위에 올려놓았다. 시즌 평균관중수가 거의 1만 명에 육박했다. 당시 성공을 발판으로 파데르보른은 발전을 거듭했다. 2014-15시즌 그들은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다. 하지만 슈미트는 이미 다른 곳에서 성공을 구가하고 있었다.

# 레드불의 든든한 지원

2012년 6월, 오스트리아 빅클럽 레드불 잘츠부르크는 슈미트를 정식 감독으로 선임했다. 스포팅 디렉터 랄프 랑닉이 슈미트를 눈여겨본 덕분이었다. 현지 축구 팬들은 당연히 선임 결과가 뜻밖이어서 매우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두 시즌이 지나면서 슈미트의 위상은 전혀 달라졌다.

슈미트가 오기 전부터 잘츠부르크는 이미 빅클럽이었다. 부임 전 6시즌에서 네 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모기업 레드불의 파격적인 자금 지원 덕분이었다. 2005년 잘츠부르크를 인수한 레드불은 클럽명, 경기장 명칭, 클럽 로고 등을 몽땅 바꿔버렸다.

기계공학도답게 슈미트는 레드불에서 압박 전술을 펼쳐 '프레스 머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끊임없이 압박을 가하면서 극단적인 공격 축구를 레드불에 입혔다. 훈련 중, 슈미트는 타이머를 사용했다. 볼을 빼앗긴 지 5초 안에 다시 볼을 되찾지 못하면 타이머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잘츠부르크 스타 케빈 캄플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게겐프레싱'과 비교하며 "우리 전술이 더 극단적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부임 첫 시즌 슈미트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패전수가 더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라피드 비엔나에 리그 타이틀을 내줘야 했다. 하지만 잘츠부르크 팬들은 슈미트를 지지했다. 경기장에 "슈미트는 꼭 남아야 한다"라는 플랜카드를 내걸렸다.

결국 팬들이 옳았다. 2013-14시즌 바이에른 뮌헨이 얼마나 빨리 리그 우승을 확정했는지 잘 알 것이다. 레드불 잘츠부르크는 그보다 이틀 전에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레드불은 압도적이었다. 홈 18경기에서 레드불은 69골을 터트렸다. 리그에서 득점수가 두 번째로 많았던 그뢰딕의 홈-원정 득점 합계보다 한 골 더 많았다.

UEFA유로파리그 조별리그에서 레드불은 전승을 거뒀다. 대회 지명도가 낮아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토너먼트 첫 단계에서 레드불은 네덜란드 명문 아약스를 홈-원정 합산 6-1로 대파했다. 당시 슈미트는 한 인터뷰에서 "상대를 편하게 내버려둘 수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 레버쿠젠 궁합

독일 축구계가 슈미트의 성공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바이에르 레버쿠젠의 스포팅 디렉터 루디 펠러는 분데스리가의 주요 경쟁자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겨루기 위해서 슈미트의 축구 철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펠러의 판단은 옳았던 것 같다. 시즌 개막전에서 레버쿠젠은 원정에서 도르트문트를 2-0으로 격파했다. 코펜하겐을 제치고 UEFA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권도 획득해냈다. 베르더 브레멘전 3-3 무승부 전까지 레버쿠젠은 공식전 5연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슈미트의 공격 축구는 레버쿠젠과 잘 어울렸다. 그가 지휘봉을 잡은 이래 레버쿠젠은 두 경기에서 킥오프 20초 내에 득점을 기록했다. 프리시즌 평가전에서 레버쿠젠은 칼자이즈제나를 상대로 줄리안 브란트가 19초만에 선제골을 터트렸다. 도르트문트 원정에서는 카림 벨라라비가 킥오프 9초만에 골을 넣었다. 분데스리가 최단 시간 득점 신기록이었다.

킥오프 직후 기습공격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 슈미트는 "경기 시작 전에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눈 작전"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그의 미소에 속아선 안 된다. 레버쿠젠은 경기 내내 도르트문트가 꼼짝 못하도록 압박했다. 독일 현지에서는 슈미트와 레버쿠젠에 대한 평가가 매우 높다. 일부 매체는 시즌 프리뷰에서 레버쿠젠이 도르트문트보다 상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UEFA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레버쿠젠은 AS모나코 원정에서 1-0으로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국내 무대에서 나타나는 그의 축구는 정말 매력이 넘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6부 리그 파트타임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글=Archie Rhind-Tutt, 사진=FAphotos, 포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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