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전설의 명기를 찾아서]오메가, 드 빌-첨단 기술력을 고전적 모습에 담다

2014. 9. 1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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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업계의 공룡 스와치 그룹 내에서도 오메가(Omega)는 가장 중요한 브랜드 중 하나이다. 19세기 스위스 시계산업은 분업화에 길들여져 있었는데 오메가는 일찍이 자사에서 모든 부품을 생산하는 통합 매뉴팩처 시스템을 정착시켜 지난 160여년간 그야말로 왕성한 생산력을 과시했다. 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시계들을 만들어온 오메가의 현행 주력 컬렉션인 스피드마스터와 씨마스터에 이어 이번에는 드 빌(De Ville)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절제된 디자인, 중장년층 유혹

프랑스어로 도시 내지 마을을 뜻하는 드 빌이란 이름이 오메가 시계에 처음 등장한 건 1960년. 당시 출시된 셀프와인딩(오토매틱) 방수시계인 씨마스터 모노코크라는 모델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드 빌이란 표현이 사용됐으며, 1963년 다이얼 하단에 씨마스터 드 빌이라고 표기된 모델이 등장했다. 케이스백에 씨마스터를 상징하는 해마 문양을 새기고 튼튼한 자사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탑재한 씨마스터 드 빌 라인은 당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방수시계, 나아가 다이버 시계로 발전할 운명이었던 씨마스터였기에 드 빌이라는 단어는 같이 사용하기에는 뭔가 좀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오메가는 1960년대 후반부터 생산된 씨마스터 시계에서 드 빌이란 단어를 빼버리고 1967년부터는 드 빌을 따로 독립시켜 별도의 컬렉션으로 만들었다.

2014년 신제품 드 빌 트레저

하지만 드 빌을 한 컬렉션으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혼선도 없지 않았다. 기존의 씨마스터 드 빌을 비롯해 컨스텔레이션·제네브 같은 컬렉션과의 경계도 모호했고, 실제로도 같은 케이스에 다이얼의 프린트된 컬렉션 명만 다른 시계들이 적지 않게 생산되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메가로서는 숙제와도 같았던 이러한 혼란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1970년대 쿼츠 위기와 함께 스위스 시계업계 전반이 위축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컬렉션의 재정비가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스피드마스터와 씨마스터가 오메가를 대표하는 양대 축으로 눈부시게 성장하는 동안 드 빌은 상대적으로 단일 컬렉션으로서의 존재감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유니크한 디자인의 컨스텔레이션이 1970~1990년대에도 꾸준히 유럽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히트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해도 드 빌은 꽤 오랜 기간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온 셈이다.

스피드마스터와 씨마스터가 풍성한 라인업을 앞세워 젊은 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면, 드 빌은 특유의 절제된 디자인으로 정장용 시계를 선호하는 중장년층 고객들을 유혹해 왔다. 오메가가 드 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은 다분히 전략적이었다. 오메가의 손목시계 제조 역사에서 20세기 초·중반은 이들이 가장 뜨겁고 치열하게 타오르던 시기였다. 견고하면서도 정확한 크로노미터급 무브먼트들이 줄을 이어 개발됐고, 시계 외적으로도 오메가만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메가는 이러한 자사의 유산을 드 빌 컬렉션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현하고 발전시켜 나아갈 비전을 드 빌 컬렉션을 론칭할 당시부터 이미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국의 시계제작자 조지 다니엘스가 고안한 혁신적인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를 1999년 가장 먼저 적용한 컬렉션도 스피드마스터나 씨마스터가 아닌 드 빌이었다. 전통적인 이스케이프먼트(탈진기)보다 구조가 복잡하고 정교한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는 매우 안정적으로 동력을 전달할 수 있는 장치였다. 시계 브랜드로서는 오메가가 처음으로 상용화에 성공했고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2000년대 중반부터는 오메가의 거의 모든 무브먼트에 적용되는 전매특허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렇듯 가장 진보적인 이스케이프먼트를 전 컬렉션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드 빌에 최초로 적용했다는 것은 다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의 탑재와 함께 드 빌의 운명 또한 새 국면을 맞이할 시점이 된 것이다.

비영리 인도주의 단체 오르비스 후원을 기념한 드 빌 아워 비전 블루

브랜드 오메가의 정수 컬렉션

한편 오메가는 2007년 30여년 만에 새 자사 오토매틱인 8500/8501 칼리버를 발표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역사적인 무브먼트를 처음 적용한 컬렉션도 드 빌이었다. 더불어 오메가는 드 빌 라인에 아워 비전이라는 새로운 라인업을 추가한다. 오메가를 대표하는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를 적용하고 완전히 새로 개발된 강력한 자사 무브먼트를 탑재한 드 빌 아워 비전은 등장과 동시에 큰 화제를 모았다. 또한 클래식한 드 빌 특유의 디자인 정체성은 이어가되 케이스 뒷면은 물론 양 측면까지 사파이어 크리스탈로 제작해 사방에서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아워 비전만의 모던한 케이스 설계는 그간 스피드마스터와 씨마스터의 그늘에 가려 있던 드 빌의 회심의 한 방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때부터 드 빌 컬렉션은 전례 없이 화려하게 만개하기 시작한다. 같은 해 무브먼트 및 다이얼까지 스켈레톤 처리한 두 종류의 아워 비전 코-액시얼 스켈레톤 한정판을 발표한 데 이어, 오메가만의 독점적인 센트럴 투르비옹 무브먼트를 장착한 드 빌 투르비용 코-액시얼 같은 최고급 모델을 추가한 것도 드 빌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여성용 드 빌 컬렉션 또한 빼놓을 수 없다. 1955년 첫선을 보인 최초의 여성용 오토매틱 라인인 레이디매틱을 계승한 드 빌 레이디매틱은 지름 34㎜의 스틸 혹은 골드 케이스에 상감 세공으로 마감한 자개 다이얼을 사용하고 베젤 및 브레이슬릿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여성스러움을 극대화시켰다. 또한 외부 충격과 자성에 강한 오메가만의 독점적인 Si14 실리콘 헤어스프링을 장착한 코-액시얼 칼리버 8520/8521를 탑재해 남성용 기계식 시계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었다.

오메가는 올해 바젤월드에서 전설적인 30㎜ 칼리버를 탑재한 1949년도 모델을 재현한 드 빌 트레저를 발표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빈티지 시계 수집가들로부터 예외 없이 명작으로 불렸던 오리지널 모델과 마찬가지로 적당한 사이즈(40㎜)의 케이스에 박스 형태의 사파이어 크리스털 아래에는 클루 드 파리 패턴으로 장식한 은색 돔 형태의 다이얼을 얹고, 그 위로는 골드 소재의 길쭉한 바인덱스를 부착해 정갈함을 더했다.

신제품 드 빌 트레저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변화는 무브먼트에 있었다. 수십년 만에 새로 선보인 신형 수동 칼리버라는 점도 특기할 만했지만, 마스터 코-액시얼로 명명된 8511 칼리버에는 18K 레드 골드 소재의 밸런스 브리지와 Si14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을 사용하고, 기존 스틸 소재의 주요 부품들을 특허 신소재인 니바가우스로 교체함으로써 1만5000 가우스라는 놀라운 항자 성능까지 갖추게 되었다. 자기장 차단 성능을 갖춘 대다수의 시계가 케이스백을 막고 내부에 연철 소재의 판을 추가하는 데 비해, 오메가는 자성에 예민한 부품들을 비자성 소재로 대폭 교체함으로써 무브먼트를 훤히 노출한 시스루백 형태임에도 자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시계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드 빌은 이렇듯 과거의 헤리티지에서 발굴한 고전적인 외관 안에 현 오메가의 기술력이 총집결된 첨단 기계식 무브먼트를 탑재한 가장 이색적인 컬렉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흥미진진한 역사적 배경을 갖춘 스피드마스터와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씨마스터 컬렉션에 비해 비록 늦게 재조명되고 있는 컬렉션이지만, 드 빌은 오메가의 정수를 담은 컬렉션이라 하겠다.

<장세훈 타임포럼 시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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