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 1만 시대의 그늘"..출산·육아·성차별로 고통

최선 입력 2014. 9. 15. 07:01 수정 2014. 9. 1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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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학교 여생도 경쟁률 사상최고
육아휴직·생리휴가 등 그림의 떡
여군고충상담관이 상관 성추행에 자살도
"군내 남여 불평등 요소 제거해야 선진 군대"

내년이면 여군 1만 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군 조직 내 불평등 문제 등 여군이 가야할 길은 험난하다.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최선 기자] 여군 1만명 시대가 눈앞이다. 1950년 9월 여자 의용군 교육대 창설 당시 491명으로 시작해 64년만이다. 육·해·공 사관학교의 여생도 경쟁률은 매년 기록을 경신, 수십대 일에 달한다. 장벽 또한 무너져 여군들은 해군(특전·잠수 등 4개 직별)과 공군(항공구조) 일부 병과를 제외한 모든 병과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군내에 불고 있는 여풍(女風)의 뒷편에 남성 중심의 군문화가 낳은 어두운 그늘이 숨어 있다. 여군 10명 중 2명은 군내 성희롱 피해자다. 피해를 입어도 하소연할 창구도 변변찮다. 육아·출산에 대한 배려 또한 열악하기 짝이 없다. 군내 소수자가 아닌 군을 지탱하는 핵심 축으로 성장한 여군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발상의 전환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약 없는 여군의 역할… 여군 지원 경쟁률도 여군 수도 급증

여군 지원자와 여군 수는 급증 추세다. 취업난과 여성에 대한 군내 역할 제한이 완화된 때문으로 풀이된다.

14일 육·해·공군 등에 따르면 2014년도 각 군 사관학교 여생도 경쟁률은 육군 43.3대1, 해군 65.3대1, 공군 72.1대1에 달했다. 특히 육사의 경우 여생도 경쟁률이 개교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해사는 올해 수석과 차석을 모두 여성이 차지했다. 여군 부사관의 경우 지난해 경쟁률이 육군 11.8대1, 해군 11.8대1, 공군 30.8대1을 기록했다. 여군 부사관 경쟁률은 2배 안팎으로 치솟았다.

여군 수 또한 급증세다. 지난 2010년 6598명이던 여군은 2012년 8354여명으로 늘어난데 이어 올해 6월 현재 9228명이 복무 중이다. 3년 6개월만에 39.8%(2630명)나 증가했다.

군 당국은 내년도 여군 수가 1만 120여명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20년이면 전체 인력대비 여군 비율이 장교의 7%, 부사관의 5%를 넘어서는 1만 2100여명이 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여군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근무여건을 보장하기 위해 어린이집과 공동육아 나눔터의 설치를 확대하고, 군인사법을 개정해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제약을 해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한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 유관기관과 협업해 임신 여군에 대한 보호관리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남녀 불평등, 성폭력, 임신·육아 등 해결 과제 산적

지난 4월 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오혜란 대위 안장식에서 동료 여군이 흘린 눈물을 손으로 훔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남성 위주의 조직 내에서 여군이 겪는 성추행·성폭력, 주거, 임신·육아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가 공개한 '군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급 남성 군인으로부터 가슴·엉덩이를 희롱당하거나 강제적으로 입맞춤을 당하는 등 성적 괴롭힘을 받은 여군은 전체 설문조사 참여자의 19%에 달했다. 하지만 부대 내에서 보호를 받았다고 응답한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헌병이나 징계위원회를 신뢰할 수 없다'고 응답한 이들은 92%나 됐다.

여군들이 의지할 곳은 여성고충상담관이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여군 또는 여성 군무원들 구성된 여성고충상담관은 현업에 종사하면서 고충상담까지 떠맡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보수는 월 3만~5만원의 활동비 뿐이다.

여군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4000~5000건의 상담이 이뤄지고 있으나 성 군기 위반사건을 상담한 경우는 5.2%에 그쳤다. 군내 성희롱이 대부분 상관인 남성 장교에 의해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상관의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여군 대위가 여군고충상담관이었다"며 "군내 성희롱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임신·육아에 대한 배려도 찾아보기 힘들다. 육아휴직, 탄력근무제, 생리휴가 등 모성보호제도는 현장에선 무용지물이다. 육아휴직은 10명 중 3명, 생리휴가는 10명 중 8명이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사상의 불이익이나 상급 지휘관의 눈치가 보이는 탓이다. 난해 2월에는 만삭의 몸으로 한 달 간 50시간 넘게 초과근무를 하던 여군 중위가 뇌출혈과 임신성 고혈압으로 순직하기도 했다.

안상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방부가 모성보호 정책, 병과 확대 등 외형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의 여군 정책을 발빠르게 도입하고 있지만 여군을 애물단지나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경향은 여전하다"며 "여군의 수만 늘릴 것이 아니라 남성중심문화, 인사평가조치 등 군내 불평등 요소를 적극적으로 제거해야 선진 군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선 (bestgiz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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