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의 '폭식투쟁', 나꼼수와 닮았다?

입력 2014. 9. 8. 16:25 수정 2014. 9. 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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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구현모 기자]

일베 회원등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단식농성장 앞에서 '도시락 나들이' 등 먹거리 집회를 예고한 지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한 남성이 피자를 먹고 있다.

ⓒ 이희훈

고속터미널이 붐비던 지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도 붐볐다. 귀성객이 광화문광장에 올 일은 없고, '일베(일간베스트)' 회원들이 그 붐빔의 주역이었다. 그들은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정면으로 조롱하며 그 앞에서 보란듯이 '폭식투쟁'을 벌였다.

SNS는 들끓었다. SBS 8 뉴스의 김성준 앵커는 "포털 검색어 1위에 광화문이 올랐길래 '왜 그러나' 하고 봤더니 기분이 상했다. 생각을 표현할 자유는 보장받아야 하지만 자기가 표현하는 생각이 얼마나 천박하고 비인륜적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비판했다. 가수 레이디 제인 역시 "'퍼포먼스'라니…. 자신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의식조차 없을 텐데, 기본 의식도 없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걸 보니 섬뜩하네"라며 비판했다.

일베와 나꼼수, '조롱'이라는 공통분모?

그 중에 내 이목을 끈 건 이준석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 위원장의 페이스북이었다. 아래는 9월 6일자 이준석씨가 남긴 글이다.

조롱만으로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띄운 게 나꼼수였고, 나꼼수는 실제로 조용한 다수와 과격한 소수의 체감 비율을 혼동하게 만들어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보수집권에 크게 일조했다고 본다....

누구에게도 조롱할 권리는 있지만 그게 사실 항상 득이되는 행동은 아니다....

원래 "시원하다"라고 느끼는 감각은 피부가 아픔을 느끼는 통각이 아닌가.

- 9월 6일자 이준석씨 페이스북

이준석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9월 6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

ⓒ 페이스북

이같은 글이 논란을 낳자 이준석씨는 다시 글을 남긴다. 추가글에서는 '폭식투쟁'과 '나꼼수' 둘 다 조롱일 뿐이라며 '폭식투쟁'에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다.

... 애초에 과거의 일인 나꼼수에 빗대 따끈따끈한 폭식투쟁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드러낸 글이니.

나꼼수 때문에 조롱당했던 불쾌한 기분이 들었던 것 만큼 폭식투쟁 하는 사람들이 불쾌한 기분을 누군가에게 주고있는 것일 테고, 반대로 폭식투쟁이 불편한 만큼 나꼼수를 통해 누군가에게 불쾌함을 줬던 것이니까. (중략)"A 조롱은 옳은 조롱이었고 B조롱은 그와 다른 틀린 조롱이다" 라고 누군가가 증명하려고 하겠지만, 나는 사실 일체의 조롱은 옳고 그름 이전에 조롱의 주체가 가진 의도와 반대되는 "역효과"를 준다고 보는 것...

과연 이준석씨의 말대로 나꼼수와 일베는 같은 선상에 있는 걸까? 일베의 저 집회의 의의를 그의 말대로 "나꼼수 때문에 조롱 당했던 불쾌한 기분이 들었던 것만큼 폭식투쟁 하는 사람들이 불쾌한 기분을 누군가에게 주고 있는 것일 테고, 반대로 폭식투쟁이 불편한 만큼 나꼼수를 통해 누군가에게 불쾌함을 줬던 것이니까"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물론 일베와 나꼼수 사이에 접점이 없는 건 아니다. 막말과 조롱으로 그들의 의견을 표출하고, 반대편을 희화화 혹은 악마화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접점이 있다고 그들을 동일선상에 놓는 건 커다란 오류다.

'이명박 대통령 헌정방송'이라는 오프닝 멘트에서 알 수 있듯이, 나꼼수의 초점은 정권 비판이었다. 그 비판에 있어서 '조롱'은 방법론적으로 쓰였다. 또 나꼼수는 주진우 기자의 취재를 통한 사실 기반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정권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 하에 암담한 언론지형에서 희화를 통해 정권의 부도덕성을 폭로한 그들은 고장난 주류 언론의 대체재가 되었다.

물론 나꼼수의 반대측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 조롱이 모욕적으로 들렸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의 조롱은 약자들을 겨냥한 '일베'와 다르게 사회의 권력자들에 집중됐다. 시대를 차치하고 집권세력에 대한 풍자와 조롱은 최대한으로 보장받아야 하기에 나꼼수의 조롱은 인정받을 수 있다.

나꼼수와 비교? 일베에겐 너무 후하다

'조롱'을 도구적으로 쓴 나꼼수와 달리 일베의 9월 6일 광화문 집회는 '조롱'의 탈을 쓴 '역겨운 무언가'였다. 일베 회원들은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을 '단식충', '시체팔이'라 부른다. 그런 이들이 단식 농성을 비하하며 연 폭식 시위는 조롱의 탈을 쓴 약자에 대한 집단 구타다.

일베의 그것을 단순한 '조롱'으로만 치부하기에는 폭식투쟁이 가진 의의가 너무나 '더럽다'. 자식을 자신보다 먼저 보낸 부모의 슬픔, 사랑하는 누군가를 보내는 슬픔은 뭐라 형용할 수 없다. 그들을 희생시킨 사고의 원인을 낱낱이 밝히고자, 그 희생자들을 지켜줘야만 했던 책임자들은 무엇을 했는지 밝히고자 하는 게 세월호 특별법이다. 그 특별법을 위해 세월호 유가족들이 벌이는 게 단식농성이었다.

이미 세월호 유가족들은 기성 언론의 흑색 공격과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사회적 약자가 된 지 오래다. 가진 건 몸밖에 없는 비루한 약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단식농성이었다. 그런 의지의 투쟁 앞에서 벌이는 일베들의 폭식투쟁은 그들의 몰이해와 무감수성에서 나온 폭력일뿐이다. 그렇기에 나꼼수와 일베의 폭식투쟁을 몇 개의 접점으로 '조롱'이라는 동일선상에 놓은 이준석의 발언은 분명 틀렸다.

칼 마르크스는 말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하기만 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해석되기만 했던 일베가 이제 광장으로 나왔다. 온라인에서 펼쳐지던 그들의 모욕과 폭력은 광장에서도 구현됐다. 광화문에서의 실력행사를 통해 약자들을 구타하고 그들의 길로 변화시키려 했다. 저런 그들의 행태를 '조롱'으로만 평하는 것은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요, 진영논리에 갇히는 걸 자처하는 길이다.

지역차별과 여성비하를 구토하듯이 내뱉는 극우 단체가 오프라인에서 약자들을 능멸하는 그 광경은 '조롱'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추한 지옥도였다. 이준석씨가 페북에 쓴 대로 "'A 조롱은 옳은 조롱이었고 B조롱은 그와 다른 틀린 조롱이다'라고 누군가가 증명하려고 하겠지만"의 일환이 아니다. 무감수성과 몰이해를 자랑하며 자신네들의 인간 실격을 증명한 광기 어린 집회를 '진보진영', '보수진영'으로 결부 시켜 나꼼수의 방법론적 '조롱'과 비교하는 것은 일베에 너무나 후한 평가다.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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