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못 간 아버지 묘소".. 버스 못 타는 장애인 눈물
[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장장 5일에 걸친 이번 추석을 맞아 어김없이 민족의 대이동이 펼쳐지지만, 수많은 중증 지체장애인들은 이번 연휴에도 홀로 집에 남아야 한다.
◈ 버스 한 번 타면 갈 길을 20년 넘게 아버지 묘소 한 번 못 가는 '불효'
서울 강동구에 사는 박현(40)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지난 20여 년 동안 한 번도 묘소를 찾지 못했다.
"사람들은 불효자라고 욕하겠지만, 중증 지체장애인은 아버지를 모신 경남 양산까지 갈 방법이 없다"는 게 박 씨의 하소연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시내버스에는 저상버스가 도입됐지만, 저상 시외버스는 국내에는 단 한 대도 없어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를 아예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장애인 좌석을 제공하는 열차를 타려 기차역으로 향해봐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KTX가 한 차례 운행할 때 열차 전체에 전동휠체어 좌석은 겨우 3칸뿐. 온 국민이 귀성길 기차표 전쟁을 벌이는 마당에 장애인 전용좌석을 구하는 일은 로또 1등 당첨을 방불케 할 일이다.
기차표를 구해도 기차역이 있는 부산까지만 갈 수 있을 뿐, 다시 양산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탈 수 없다. 장애인 콜택시도 소속 권역 밖으로는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승차예약조차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동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특수장비차는 1대에 최소 8,000만 원이 넘는다. 관련 단체에서 특수장비차를 대여할 수도 있지만, 수십만 원이 드는 차량 운행비에 운전기사까지 구하는 건 일반적인 직업을 갖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박 씨는 "'마음만 있으면 아버지 묘소 한 번 못 가겠느냐'고 쉽게 말하지만, 전동휠체어만으로 국토횡단도 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며 "시외버스를 타면 쉽게 해결되는 일인데, 비장애인은 싸고 편리하게 이용하는 시외버스를 장애인은 아예 이용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 "수동휠체어를 타라고요? 그럼 버스 내리면 누가 밀어주나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아버지의 고향을 가본 적이 없는 서기현(39) 씨는 "수동휠체어를 타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쓴웃음만 지었다.
서 씨는 "버스정류장이나 기차역까지 수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기는 쉽지 않다"며 "결국 활동보조인이나 가족 중 1명이 나를 전담해서 도와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활동보조인이라고 추석 연휴에 쉬지 않을 리 없는데다, 지방까지 함께 내려가서 몇 날 밤을 함께 보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 씨는 "결국 가족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형편"이라며 "각종 집안일에 바쁜 추석에 일손을 돕기는커녕 나를 돌보느라 친척들에게 인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기도 괴로워 고향 가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을 떠날 수 없어 괴로운 날은 추석만이 아니다. 서 씨는 "지난 5월 여동생이 낳은 조카 돌잔치가 열렸는데 부산에 모여 사는 매제(妹弟)의 일가친척까지 모두 서울로 올라왔다"며 "일흔이 넘은 여동생의 사돈어른이 나 때문에 서울까지 올라오시니 몸 둘 바를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이동하기 어려울 뿐인데 가족의 구실조차 할 수 없는 처지"라며 "귀여운 조카들도 보고 싶고 사촌 형제와 반갑게 인사도 하고 싶지만, 이런 사소한 일도 장애인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 지방은 더 심각… 아예 기차역 근처도 가기 쉽지 않아
지방에 사는 장애인의 형편은 더 심각하다. 김포에 사는 이형숙(48) 씨의 고향은 충남 논산 연무대. 역시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나 기차는 물론 장애인 콜택시를 구하기 쉽지 않다.
이 씨는 "더 큰 문제는 김포에서 고향은커녕 애초에 서울에 가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라며 "일단 서울에 가야 기차라도 타는데, 서울까지 가려면 몇 차례나 장애인 콜택시를 갈아타고 지하철이나 기차역이 있는 곳까지 찾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절마다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채 외톨이로 지내다 보니 어느새 친척과의 사이까지 멀어졌다. 아이들이 "왜 우리 집은 명절에도 시골에 안 가?"라고 물을 때마다 이 씨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이 씨는 "친척이 먼저 초대하지 않으면 아예 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며 "친척도 나와 자주 만나지 못하다 보니 장애를 이해하고 어울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처럼 명절에도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를 놓고 장애인들은 '명절증후군'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이 씨는 "비장애인처럼 집안일을 하느라 바쁜 게 아니라 텅 빈 집에 홀로 지내는 게 괴롭다는 뜻"이라며 "식당도 대부분 문을 닫고 만날 사람도 뿔뿔이 흩어지니 이번처럼 명절 연휴가 길수록 장애인은 쓸쓸하고 불편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 10년 넘게 요구해도 저상 시외버스는 '0대'… "의지라도 보여달라"
이 때문에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차별 철폐 공동투쟁단'이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애인도 시외버스를 이용하게 해달라"며 시위를 벌이는 등 10여 년째 저상 시외버스를 요구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에야 저상 시외버스에 대한 용역 연구를 시작하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또 지난 7월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 등 11명의 국회의원이 시외·고속버스도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장애인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박 씨는 "48시간 전 편의제공을 요청해야 휠체어 탑승장치가 제공된다는 법안"이라며 "당장 지방에서 친척이 숨지기라도 하면 발인한 뒤에야 찾아갈 수 있다는 얘기"라며 현실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전동휠체어 지원도,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도, 시내 저상버스 도입도 모두 현실성이 없다고 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며 "정부는 당장 저상 시외버스를 도입하기 어려우면 적어도 도입하려는 의지와 현실적인 계획이라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te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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