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록단이 담아낸 '세월호' 피해자 가족](2) 다윤아, 깜비가 기다려 어서 돌아와: 단원고 실종자 허다윤양 언니 허서윤씨

김순천 | 안산시민기록위원회 2014. 7. 29.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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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무서워 꽁꽁 숨었니.. 남은 9명과 빨리 나오렴"

"다윤이가 물을 무서워해서 엄청 꽁꽁 숨었나봐요."

100일이 넘어도 나오지 않고 있는 동생 다윤이를 두고 언니 서윤(20)이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렸을 때 교회 수련회에서 다윤이가 물에 빠지는 사고가 난 뒤로 물을 많이 싫어했다. 목욕탕에 가서 장난으로 물을 끼얹으면 화들짝 놀라곤 했다.

그런 아이가 물속에서 사고가 났으니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20대 단발머리의 예쁜 서윤이는 끝내 목소리가 떨리면서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일러스트 | 김용민 화백

■ 민트향 호올스 사탕

다윤이는 호올스 네모난 사탕을 좋아했다. 특히 민트향을 좋아했다. 아이스크림도 민트향, 선물상자도 민트색을 선호했다. 아빠는 호올스 사탕을 좋아하는 다윤이를 위해 퇴근할 때마다 사다주셨다. 밤늦게 퇴근하는 날은 혹시 중간에 그 사탕을 살 가게가 문을 닫았을까봐 회사 앞에 있는 가게에서 사오곤 하셨다. 사고가 난 날 진도로 가는 버스에서 서윤이는 아빠가 흐느끼는 걸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아빠의 눈물에 서윤이는 두려워서 몸을 떨었다. 막내인 다윤이는 아빠 앞에서 귀염을 잘 떨었다. 언니도 자기 따라서 해보라고 했지만 경찰관을 지망하는 외향적인 서윤이는 '오글거려서' 동생처럼 되지는 않았다. 아빠는 서윤이도 예뻐했지만 그렇게 귀염 떠는 막내 다윤이를 엄청 예뻐하셨다. 동생은 밖에 잘 나가지 않아 엄마,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빠에게 다윤이가 없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엄마가 몸이 많이 아프셔서 함께 진도를 내려오지 못했는데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3시간 후에 내려오셨다. 걷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만 있었다. 물도 못 마시고 음식도 잘 먹지 못했다. 다윤이 일로 엄마는 그나마 안 좋았던 몸이 더 나빠져 수술까지 해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뇌에 혹이 생겨 신경을 눌러 청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수술을 미뤄두자고 하셨다. 다윤이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병원에 누워 있을 수는 없다고. 4월16일, 사고난 날 내려간 아빠는 지금까지 팽목항에 계신다.

■ 비스트

다윤이는 아이돌 그룹인 비스트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양요섭을 좋아했다. 양요섭의 귀여운 얼굴이 다윤이의 마음에 들었다. 비스트에 관련된 거라면 포스터, 배지 등 무엇이든 다 모았다. 설이나 추석 때 받은 용돈으로 어김없이 비스트가 나오는 '브로마이드'라는 잡지를 구독하기도 했다. 다윤이 책상 위에는 그 잡지 여러 권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지금까지 산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던 것이다. 다윤이는 자신에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건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에버랜드에서 산 물고기 모양의 물총도 자신이 직접 만든 필통에 보관해두었고 곰이 새겨진 이름표도 그대로 벽에 걸려 있었다. 중3 때 다윤이를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준 목도리와 장갑도 그대로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그 친구가 소중히 쓴 사랑의 편지도 목도리 사이에 정답게 놓여 있었다. 다윤이는 그 친구를 이성으로 느끼지 않고 친한 친구로 지냈다. 고등학교 가면서 저절로 헤어졌지만 그 친구가 준 물건들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 네 사진 보고 강아지 깜비가 눈물 흘려

다윤이에게는 소중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깜비였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정말 좋아하는 다윤이를 위해 부산에 있는 이모가 자신의 친구에게서 사주었던 팔다리가 가늘고 눈이 큰 강아지였다. 다윤이는 그 강아지를 안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항상 강아지와 함께했다. 잘 때도 함께하고 언니랑 화랑유원지로 산책 갈 때도 함께 갔다. 가족 외식이 있으면 깜비가 혼자 있는 게 걱정돼 자신은 안 간다고 한 적이 많았다. 수학여행 가기 전 주 토요일에도 막내이모 집에서 가족들이 전부 모이기로 한 날이었는데 막내이모가 개를 싫어하기 때문에 자신은 깜비와 집에 남겠다고 했다. "다윤아, 이모 집으로 깜비 데리고 와도 괜찮아." 막내이모가 허락하니까 그때서야 왔다. 다윤이는 원래 수학여행을 가기 싫어했다. 곧 있으면 고3인데 놀 시간이 없다고 해서 엄마와 담임선생님이 설득하여 보냈다. 깜비를 사준 이후 급격히 친해진 부산이모가 다윤이의 집안 형편을 생각해 수학여행비를 대주었다. 그 일로 부산이모도, 엄마도, 담임선생님도 모두 힘들어했다. 부산이모는 엄마가 아프니까 앞에서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했다. 너무 힘드셔서 심장이 조여드는 아픔과 팔뚝의 핏줄이 다 터지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다윤이는 수학여행 가면서도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깜비를 잘 보살펴달라고, 간식도 잘 주고 밥도 잘 주라며 깜비 이야기만 엄청 하고 갔다. 서윤이는 진도에 깜비를 데려갈까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다윤이가 정말 보고 싶어하는 친구니까 진도에 있으면 보고 싶어서라도 빨리 나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거기에 사람들도 많은데 개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대신 집에서 가까운 화랑유원지에 있는 분향소로 데려갔다. 분향소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까 들여보내주었다. 다윤이 사진을 깜비에게 보여주자 믿기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깜비가 엄청 큰 눈물방울을 눈에서 뚝뚝 떨어뜨렸다. 함께 살았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지니까 깜비도 뭔가 느끼는 게 있었던 것이다. 깜비는 다윤이 방에 들어가서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다윤이가 앉았던 의자에 올라가 잠을 자기도 했다. 항상 다윤이 방에서 맴돌았다.

■ 친구 홍종영

다윤이는 친구가 많이 없는 대신 한번 사귀면 깊게 사귀었다. 다윤이가 수줍음이 많아서 친구들에게 말을 잘 걸지 못했다. 집에서는 밝고 애교도 많이 부리는데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자신을 표현해야 될지 잘 몰랐다. 친구들이 웃긴 이야기를 해줘도 다윤이는 잘 웃질 않았다고 한다. 자신들을 싫어하는 줄 알고 친구들은 "알 수 없는 아이구나" 하고 오해를 했다. 하지만 다윤이는 한 친구 앞에서만은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선일중학교에 함께 다녔고 단원고도 함께 다녔던 친구였다. 그 친구 이름은 2학년 6반 홍종영이었다. 종영이랑 아침마다 함께 등교하고 올 때도 같이 왔다. 종영이는 학교 앞에서 살았지만 다윤이랑 같이 학교 가고 싶어 집 쪽으로 와서 아침마다 엄마가 학교까지 태워다주곤 했다. 수학여행 가는 날도 같이 태워다주었다. 좀 늦어서 종영이가 화랑유원지 쪽으로 와서 함께 갔다. 굉장히 생각이 깊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였다.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웃기도 잘 웃었다. 어떻게 보면 다윤이랑 정반대 스타일이었다. 엄마도 종영이가 정말 똑똑하다고 말하곤 했다. 종영이가 다윤이 공부도 많이 가르쳐주었다. 종영이에게는 쌍둥이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종영이 시신이 안치되었을 때 종영이 옆자리는 다윤이 자리니까 비워달라고 했다. 하지만 올라오는 순서대로 안치되기 때문에 그 자리에는 다른 친구가 눕게 되었다. 다윤이에게는 친했던 친구가 또 한 명 있었다. 맨 마지막으로 나온 김민지. 민지는 다윤이랑 비스트를 같이 좋아했던 친구였다. 동아리도 같이했다. 플래시몹이라는 춤 동아리였다. 다윤이는 춤추는 걸 좋아했다. 내성적이면서 춤을 췄다니까 얼핏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다윤이에게 잘 어울리는 일이었다. 다윤이가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면이 많았다. 하지만 춤추는 걸 엄마가 반대했다. 춤은 다윤이에게 취미로만 남았다. 다윤이는 동물과 함께 아이들을 좋아해서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엄마는 다윤이가 공부하기를 원했다.

■ 파란색 푸마 운동화와 검은 모자

다윤이는 가끔씩 허락을 받지 않고 서윤이 옷을 입었다. 집에 없으면 메시지라도 보내서 '언니, 나 이 옷 입어도 돼?' 그러고 물어보기라도 해야 되는데 몰래 입고 나가서는 꼭 뭘 묻혀가지고 왔다. 그럴 때 서윤이는 동생에게 야단을 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윤이에게 정말 미안했다. 요즘 아이들은 메이커 있는 옷들을 많이 입는데 다윤이는 그런 옷이 거의 없었다. 곰돌이가 그려진 평범한 옷들밖에 없었다. 다윤이 시신 수습할 때 다른 친구들은 인상착의에 아디다스 상의, 아디다스 바지 이렇게 쓰여 있는데 동생은 그런 걸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나 서윤이나 혹시 못 찾으면 어떡하지,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다윤이보다 가방이 먼저 나왔다. 진도 유실물센터에서는 못 찾았던 짐들이 안산 집으로 배달돼왔다. 짐 가방을 열어보니 아빠가 사주신 파란색 푸마 운동화가 그대로 있었다. 서윤이는 그 운동화를 보고 마음이 울컥했다. 거의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던 다윤이가 유일하게 아빠에게 사달라고 해서 사준 파란색 푸마 운동화였다. 서윤이에게 빌려간 로고가 붙은 검은색 모자도 그대로 나왔다. 다윤이는 원래 모자를 안 쓰던 아이였다. 수학여행 가기 전에 그 모자를 갖고 싶다고 해서 줬는데 그것이 그대로 올라왔던 것이다. 학생증도 다 나왔는데 다윤이만 없었다.

■ 흉가

동생이 보고 싶을 때면 서윤이는 가끔 단원고를 지나가곤 했다. 동생이 다닌 학교라 유난히 애착이 갔다. 가끔 다윤이는 깜비가 너무 보고 싶으면 마음이 급해져서 그 아이를 데리고 학교 앞까지 와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서윤이는 다윤이 부탁대로 깜비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근데 어느 '일간 베스트' 회원이 밤에 단원고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흉가'라고 올렸다. 귀신 나오는 학교라며. 서윤이는 엄청 속상했다. 특혜입학 가지고도 '너희들 로또 맞았구나'라면서 공격했다. 서윤이는 모든 게 달갑지 않았다. 지금도 이렇게 조롱하고 공격해 대는데 대학 가서 단원고 출신이라는 게 밝혀지면 얼마나 왕따를 시킬 것인가. 더 이상 세상에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살고 싶다.

■ 어서 돌아와, 다윤아

서윤이는 다윤이가 어서 빨리 나오기를 기도한다. 동생이 바닷속에서 오래 있으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울 것인가. 아직 나오지 않은 실종자 아홉분도 동시에 나왔으면 좋겠다. 다윤이가 나오면 서윤이는 꼭 동생 얼굴을 보고 싶다. 오래 시간이 흘러서 부모님이 안 보여주실 것 같지만 다윤이 손이라도 꼭 보고 싶다. 서윤이는 아직도 이 모든 상황이 꿈인 것 같다. 다윤이가 무인도에 가서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해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는 것만 같다. 누군가 이 모든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 김순천 | 안산시민기록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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