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입석금지 때문에 '시험 0점'..학점 계급화냐"

이슈팀 김종훈 기자 입력 2014. 7. 23. 10:22 수정 2014. 7. 2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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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대충교통!]①시민 대신 시민 '속' 태우는 광역버스

[머니투데이 이슈팀 김종훈기자][[대중교통? 대충교통!]①시민 대신 시민 '속' 태우는 광역버스]

지난 18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시민이 역 구조물에 몸을 기댄 채 버스가 오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사진=김종훈 기자

#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는 대학생 하모씨(24·남)는 이번 여름 고려대학교 계절학기 시험에서 '0점'을 받았다. 지각 때문에 시험을 보지 못했기 때문. 엄격한 교수님도 "재시험은 없다"고 못 박았다.

시험일은 지난 16일. 공교롭게도 광역버스 입석금지 시행일과 겹쳤다. 그는 시험시간인 오전 9시까지 학교에 가기위해 평소보다 1시간 이른 오전 6시50분에 집을 나섰다. 하지만 서울행 버스를 두 대나 보내며 발만 동동 굴렀다. 이날 그가 학교까지 가는 데 허비한 시간은 2시간반에 달했다.

하씨의 걱정은 이제 개강 이후까지 미친다. 그는 "2학기가 시작되면 자취를 할 여력이 없는 대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것 같다"며 "거주 지역에 따른 '학점 계급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버스 입석 이용자 1만명 출근길 '멘붕'=

23일 경기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기준 출근시간(오전 6시30분~8시30분) 동안 서울-경기 간 광역버스는 2대 중 1대꼴로 정원초과 운행을 했다. 이 시간대 입석이용자는 일평균 1만6명에 달했다.

출근시간(오전 6시반~8시반) 경기-서울 광역버스 입석이용자 비율. 불과 2시간 사이에 전체 입석이용자의 42%가 발생하고 있다./ 자료=경기개발연구원

그러나 입석이용자 1만여명은 이제 버스에 오를 수조차 없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교통안전이 화두로 떠오르자 국토교통부가 지난 16일부터 입석 금지 법규를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한 것. 광역버스 입석 금지는 1981년부터 도로교통법에 포함된 내용이지만, 그동안 관행적으로 '입석'은 묵인돼왔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실제로 경기 수원, 화성, 용인 등 주요도시행 광역버스 노선이 교차하는 강남역 정류장 일대는 최근 출퇴근 전쟁이 심화됐다. 이제는 자정이 가까워져도 줄이 줄어들지 않을 정도다. 7월의 무더위 속에서 시민들은 버스가 오는 방향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용인에서 서울 암사동으로 통근하는 이모씨(27·여)는 지난 17일 출근을 위해 오전 5시반부터 정류장으로 나와 버스를 기다렸지만, 50분 동안 버스 6대를 보냈다. 결국 지각을 면하기 위해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출근비에 쓴 돈만 1만7000원. 매일 이런 식이라면 자가용 구매도 고민해야 할 판이다.

이씨는 "이전에도 출퇴근 시간에 광역버스를 잡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이른 시간에 나온다면 그래도 10분 안에 버스를 탈 수 있었다"며 "하지만 정부의 이번 조치 이후 1시간 일찍 나와도 50분을 기다려야 간신히 버스를 탄다"고 불평했다.

지난 18일 오후 6시40분(왼쪽)과 오후 11시40분 강남역 7번 출구 광역버스 정류장 일대.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기 위한 줄이 길다./ 사진=김종훈 기자

◇"벼룩 잡다 초가삼간 태운다"=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지자 정부도 팔을 걷고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1일부터 출퇴근 시간에 맞춰 광역철도 14편을 늘렸다. 출근 시간대 수요가 적은 하행선(서울→경기) 차량을 이용해 배차 간격을 줄이는 등의 대책도 마련했다.

그러나 미봉책였다는 지적이다. 하씨는 "증편이나 증차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겠다"며 "정부가 보완책을 내놓았다는 사실도 인터넷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씨는 부모님의 자가용을 빌려 당분간 출근하기로 했다. 하지만 고유가에 연료비가 만만찮아 골머리다.

여론이 악화되자 대통령도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금지로 인한 혼란에 대해 "국민이 완전히 실험대상이 됐다"며 서승환 국토부 장관을 강하게 질책했다. 이에 서 장관은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답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광역버스에 대한 일부 입석허용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도 공무원이나 버스업체 직원 등이 정류장 현장에 나가, 승객들이 줄을 길게 서 20~30분 이상 기다리고 있다면 좌석이 없더라도 버스를 정차시켜 10명 정도 입석을 시켜준다는 것.

지난 18일 강남역 일대에서 광역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설 곳이 없어 사선으로 차체를 길가에 대고 있다./ 사진=김종훈 기자

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입석금지 정책에 부정적이다. 한 버스 이용자는 "벼룩 잡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라며 "증차를 한다고 해도 버스 기사들의 노동 강도도 높아질 것은 뻔한 일인데 승객도 기사도 득 볼 것이 없는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 외곽에 환승센터를 구축하는 것과 같은 장기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응래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 외곽에 신분당선 등과 연계한 환승센터를 건설하면 혼잡을 줄일 수 있다"며 "버스가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원활한 운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고속도로 전 정류장까지 배차를 늘리는 등 노선을 구간별로 유연하게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지속적으로 교통 상황을 관찰해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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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슈팀 김종훈기자 slskcn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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