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일레븐)
'Injury Time'은 2014 FIFA(국제축구연맹) 브라질 월드컵을 맞아 '하루 늦은 리뷰, 쉼표'라는 제하의 글을 연재 중이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꼭 다시 살펴야 할 경기들을 선택해 하루 뒤 경기를 복기하는 것이다. 경기가 끝난 그 다음날 살피는 이유는 해당 경기에 대한 환호나 분노가 가라앉은 뒤 보다 맑은 정신에서 복기하자는 이유에서다. 더불어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경기에서 있었던 여러 사건 중 꼭 복기해야 할 '한 가지 이슈'만 간추려 전하고 있다.
하루가 지난 시점에서 하루 전 열린 경기들을 차분하고 꼼꼼하게 돌아보는 브라질 월드컵 리뷰 쉼표. 쉼표가 마련한 세 번째 순서는 16강 여섯 번째 경기로 열렸던 독일과 알제리전이다. 독일과 알제리전에서 살펴볼 것은 수비 라인 최후의 보루이자 축구에서 가장 고독한 포지션 '골키퍼'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골키퍼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 한국 축구 골키퍼의 현실과 연계해 살폈다.
▲ 하루 늦은 리뷰 '쉼표' ③,대한민국 골키퍼 안녕하십니까?

▲ 진화하고 있는 세계의 골키퍼들
지난 7월 1일 새벽(이하 한국 시각)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리에 위치한 이스타지우 베이라-히우에서 2014 FIFA(국제축구연맹) 브라질 월드컵 16강 여섯 번째 경기가 열렸다. '전차 군단' 독일과 '아프리카 복병' 알제리가 격돌한 그 경기의 승자는 독일이었다. 독일은 0-0으로 팽팽하던 긴장감 속에 돌입한 연장 전반과 연장 후반 각각 한 골 씩을 성공시키며, 연장 후반 종료 직전 한 골을 만회한 알제리에 2-1로 승리했다. 이로써 독일은 우승에 도전을 계속 이어나가게 됐고, 알제리는 바히드 할리호지치 감독 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경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경기 후 많은 언론을 통해 나왔듯 양 팀 골키퍼가 보인 선방 퍼레이드였다. 두 팀 골키퍼는 경기 내내 엄청난 판단력과 반사 신경을 바탕으로 수많은 슈퍼 세이브를 펼쳤다. 이 경기 후 집계된 공식 기록을 살피면 더 놀랍다. 독일은 29개의 슈팅 중 22개를 골문 안으로 집중시켰고, 알제리는 11개 중 7개를 유효 슈팅으로 만들었다. 양 팀 통틀어 무려 40개의 슈팅이 나왔으며 그중 유효 슈팅만 29개에 달했던 경기였다. 유효 슈팅 29개 중 골로 연결된 것은 겨우 세 개였으니, 양 팀 골키퍼가 상대 슈팅을 막아낸 확률은 무려 90%에 육박한다.
독일의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와 알제리의 아디 음볼히 골키퍼는 화려한 선방 퍼레이드를 보이면서도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노이어 골키퍼는 현대 축구에서 골키퍼에게 요구되는 '최종 수비수' 역을, 음볼히 골키퍼는 골키퍼에서 요구되는 가장 고전적이자 원초적 능력 '선방'을 주로 보였다는 점이다. 먼저 노이어 골키퍼는 알제리전에서 스리백 중 스위퍼를 연상케 할 만큼 '왕성한 활동량'을 보였다. 골키퍼에게 왕성한 활동량을 보였다고 표현하는 게 이상하지만, 노이어는 골키퍼보단 스위퍼에 가까운 기량을 발휘하며 골문을 지켜냈다.
노이어 골키퍼가 이처럼 골문을 벗어나 적극적 수비수로 변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알제리의 공격 패턴에서 찾을 수 있다. 알제리는 독일전에서 총 504회의 패스를 시도했다. 그 중 근거리에 있는 선수에게 연결한 짧은 패스가 144회, 다소 거리가 있는 중거리 패스가 261회였다. 그런데 먼 지점에 있는 선수에게 연결하는 롱 패스도 99회에 달했다. 독일이 알제리에 2배에 달하는 940회의 패스를 중 롱 패스는 88개밖에 없었음을 감안하면 알제리가 시도한 롱 패스 숫자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알제리는 이렇게 빡빡한 독일 미드필드 지역을 생략한 채 최전방 공격수가 상대 수비수와 경합할 수 있는 지역에 자주 볼을 떨어트렸다. 알제리가 준비한 공격 전략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전략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은 노이어 골키퍼의 넓은 활동 반경 탓이었다. 노이어 골키퍼는 독일 수비진 배후로 알제리의 패스가 떨어질 때마다 골문을 비우고 나와 적극적으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위험하다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노이어 골키퍼의 선택은 대부분 적중했다. 노이어 골키퍼의 빠르고 과감한 판단은 알제리 공격수가 주인 없는 볼을 쟁취하는 것을 막았고, 이는 알제리 공격 전략 중 하나를 무력화한 것이었다.
반면 음볼히 골키퍼는 동물적 반사 신경에 의한, 골키퍼에게 요구되는 가장 원초적 활약을 선보였다. 음볼히 골키퍼가 얼마나 뛰어난 반사 신견을 보였는지는 독일이 기록한 슈팅 테이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독일은 알제리전에서 22개의 유효 슈팅을 때렸다고 했다. 그런데 그중 골문 중앙으로 향한, 그러니까 음볼히 골키퍼가 비교적 방어하기 쉬운 지역으로 온 슈팅은 7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몸을 날려야만 막을 수 있는 좌우 측면이나 상단에 꽂혔다. 특히 골키퍼가 알고 몸을 날려도 막기 어렵다는 골문 상단 모서리로 향하는 슈팅도 세 개나 막았다. 판단력도 판단력이지만 순발력 없이는 도저히 어려운 방어였다. 이런 활약은 음볼히 골키퍼가 패한 알제리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전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이유기도 하다.
두 골키퍼의 활약을 예로 들었으나 사실 이번 대회에서는 노이어 골키퍼와 음볼히 골키퍼 외에도 눈부신 활약을 펼친 골키퍼들이 많다. 이번 대회 공인구 브라주카가 골키퍼들에게 대단히 큰 어려움을 줄 것이란 예측이 많았음을 떠올리면 그들의 활약은 더 눈부시다. 16강 마지막 경기에서는 미국의 팀 하워드 골키퍼가 벨기에의 소나기 슈팅을 막아내는 놀라운 활약을 선보였고, 16강전에서 아르헨티나의 무시무시한 공격진을 상대한 스위스의 디에고 베날리오 골키퍼의 활약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리고 멕시코의 골문을 사수했던 기예르모 오초아, 브라질을 16강 탈락 직전에서 구해낸 줄리우 세자르 등도 이번 대회를 골키퍼들의 잔치로 만들고 있는 명 수문장들이다.

▲ 제자리걸음 중인 한국의 골키퍼들
이렇게 각국 골키퍼들이 대단한 활약을 펼치자 시선은 자연스럽게 우리 축구로 향했다. 한국 축구에는 왜 그런 세계적 골키퍼가 없냐는 것이다. 물론 세계 정상급 축구국과의 격차를 생각하면 언감생심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한 세기를 넘긴 우리 축구 역사상 세계에 내놓을 만한 골키퍼가 한 명도 없었다는 건 납득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차범근이란 공격수를, 박지성이란 미드필더를, 홍명보란 수비수를 배출했던 한국 축구다. 하지만 유독 골키퍼만은 세계에 내놓을 만한 실력자를 갖지 못했다. 비단 이번 대회에 참가했던 골키퍼들뿐만 아니라 역대 한국 골키퍼들을 봐도 그렇다. 골키퍼는 한국 축구의 또 다른 취약 포지션이었으며, 가장 발전이 더딘 포지션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전무하다'라고 해도 좋을 유소년 축구 골키퍼 코치의 부재에 있다. 몇 년 전 K리그 클래식에 속해 있는 한 구단의 '골키퍼 클리닉'을 취재한 적이 있다. 필드 플레이어들이 나서 패스와 드리블 등 축구의 기본을 가르치는 클리닉은 많이 봤어도 골키퍼만을 대상으로 하는 클리닉은 처음이었기에 현장을 방문했었다. 당시 클리닉은 브라질에서 온 골키퍼 코치가 맡았는데, 그는 유소년 골키퍼들에게 기본기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 훈련을 보면서 프로팀이나 대표팀에서 골키퍼들이 훈련하는 것과는 사뭇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연령 차이가 크게 나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전까지 본 골키퍼 훈련과는 전혀 달랐기에 적잖은 충격이었다.
당시 그 골키퍼 코치가 한 교육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위치 선정이다. 골키퍼의 위치는 볼이 그라운드 중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상식 수준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니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다. 볼이 위험 지역으로 왔을 때, 측면에 있을 때, 중앙에 있을 때, 페널티 박스에 진입했을 때 등 수많은 상황에 따른 골키퍼의 포지션이 정해져 있었다. 볼이 있는 지점에 따라 가장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지역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볼의 이동 경로에 따라 골키퍼가 움직이는 것으로 알았기에 그 속에 더 깊고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이어 그 골키퍼 코치는 하찮아 보여 간과하기 쉽지만 위치 선정이야 말고 좋은 골키퍼가 되기 위한, 그리고 슈퍼 세이브를 하기 위한 기초 단계라고 했다. 선방할 수 있는 위치를 잡지 못하는 데 어떻게 좋은 방어가 나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위치 선정은 성인이 되어서도 꾸준히 반복해 훈련 해야만 습관처럼 몸에 베인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시로 변하는 경기 상황에서 올바른 위치 선정을 하기 위해서는 뇌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그 골키퍼 코치가 그렇게 중요한 위치 선정 훈련을 성인 골키퍼 훈련에서는 본 기억이 없다.
이렇게 좋은 골키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닦아야 할 기초가 분명히 있다. 그것도 우리가 알던 상식을 훨씬 뛰어 넘는 고급 정보들이다. 그런데 그 고급 정보를 전달해야 할 골키퍼 코치가 이 땅에는 많지 않다. 당시 제자의 골키퍼 클리닉 참가를 돕기 위해 왔던 한 지도자는 국내에 없는 골키퍼 코치의 현실에 대해서 개탄했다. 유소년들을 가리키는 골키퍼 코치는 전무한 실정이고, 이런 환경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프로나 대학에 가야 골키퍼 코치라는 존재를 처음 만날 수 있는데, 대학도 소위 명문이 아니면 골키퍼 코치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부터 골키퍼를 시작한 선수들은 누구에게 배울까? 유소년을 거쳐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골키퍼 코치를 만나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 연습하거나 필드 플레이어 출신 감독이나 코치가 지시한 대로 훈련한다고 했다. 필드 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들 역시 전문 골키퍼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선수 시절 눈동냥한 골키퍼 훈련을 그대로 시키는 수준에 머문다. 그것도 필드 플레이어들을 가르치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 해 골키퍼들 훈련은 사실상 방치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골키퍼들은 무럭무럭 성장해야 할 때 제멋대로 키워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한국 축구에 대형 골키퍼가 탄생할 수 없는 원초적 제약 같은 것이었다. 기초가 튼튼하게 다져지지 않았으니 좋은 골키퍼를 만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욕심인 것이다.
좋은 골키퍼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작이 중요하다. 변할 수 없는 진리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골키퍼가 탄생할 수 있는 여건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배우고자 해도 가르침을 받을 만한 사람이 있으니 어떻게 좋은 골키퍼의 기초를 닦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흔들림 없는 한국 축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격수, 좋은 패스를 뿌릴 줄 아는 미드필더, 탄탄한 수비력을 갖춘 수비수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게 바로 훌륭한 골키퍼를 갖는 것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우리가 수없이 목격했듯, 골키퍼는 팀에 승리를 안길 수 없지만 패하지 않게 하는 위대한 능력을 지닌 포지션이다. 이렇게 중요한 포지션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유소년 골키퍼 육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관심의 시작은 골키퍼 코치의 확대이며,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자질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사진=베스트 일레븐 DB, ⓒ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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