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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의 창과 방패] 홍명보 감독을 매장시킨다고 모든 게 해결됩니까

조회수 2014. 7. 1. 11: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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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거를 너무 빨리 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걸 지금 현재 상황 속에서 자기 판단에 따라 결정하고 평가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과거 상황이 어떠했는지, 당시 왜 그 선택을 해야 했는지 등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거의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 말을 꺼내는 것은 홍명보 감독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1년 전으로 돌아가봅시다. 당시 한국축구대표팀의 상황은 암울했습니다. 국내파·해외파 불화설, SNS파문, 시한부 감독 최강희 감독의 한계, 축구대표팀 기대 이하의 부진 등 숱한 문제가 터져 나왔습니다. 급기야 월드컵 출전권도 가까스로 따냈습니다. 마지막 2경기에서 우즈벡은 상대 자책골로 1-0으로 이겼고 마지막 이란전은 패하면서 골득실차로 브라질행 티켓을 가져와야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굴욕적이었습니다.

당시 팬들은 무척 실망스러워했습니다. 그리고 축구대표팀에 대한 신뢰도 바닥을 쳤습니다. 그래도 월드컵을 치러야 했고 차기 감독이 필요했습니다. 월드컵을 고작 1년 남긴 시점에서 말입니다. 게다가 대표팀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고요. "독이 든 성배를 과연 누가 마시려고 하겠냐. 적임자를 찾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 때 다수 팬들(전부는 아닐지라도), 축구 전문가, 언론, 그리고 저도 홍명보 감독을 적임자로 지목했습니다. 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곧바로 월드컵 체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국 선수들을 잘 알고△한국 문화도 잘 이해하며△선수와 지도자로서 국제대회에서 성공한 경험도 있는 감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야만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감독과 선수들이 서로 빨리 이해하고 상호 문화 및 인식의 충돌을 최소화하면서 월드컵을 준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외국 지도자 필요성도 제기됐지만 외국 지도자가 올 경우 적응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시와 같은 응급상황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당시 홍 감독은 꽤 오래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축구 전문가와 언론들도 홍 감독이 쉽게 수락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습니다. 그건 브라질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에는 시간, 분위기, 대회 장소 등 모든 환경과 조건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괜히 대표팀을 맡았다가 실패할 경우 지도자로서 쌓아온 모든 경력이 단번에 무너지면서 너무 많은 걸 잃을 위험성도 높았습니다. 그걸 홍 감독도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민 끝에 홍 감독은 감독직을 수락했습니다. 올림픽 동메달을 딴 자신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자신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감독을 맡아야하는 걸 거부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한국축구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고, 자신을 감독 적임자로 생각하고 있는 팬들도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해 결론을 내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홍 감독은 "내 자식 같은 선수들을 칠 수 있다고 결심한 게 감독직을 수락한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홍 감독은 자신이 밝힌 몇가지 원칙을 결과적으로는 저버렸습니다. "소속팀에서 뛰지 못한 선수는 뽑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도 박주영을 끝까지 품었습니다. "누구도 팀보다 위대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기성용을 데려가기 위해서 여러모로 애를 썼습니다. 자식 같은 선수들을 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결국 런던올림픽 멤버 위주로 월드컵 대표팀을 구성했습니다. 이 모든 게 어쨌든 홍 감독이 본인 입으로 말한 것을 결과적으로는 지키지 못한 꼴이 됐습니다. 그리고 홍 감독도 스스로 "원칙을 깬 게 맞다"고 시인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걸 홍 감독이 거짓말을 했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제가 곁에서 지켜본 홍 감독은 인간적으로 어느 정도 잘못할 수는 있지만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의도적으로 '쇼'를 할 사람은 아닙니다.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환경, 분위기가 융통성 있게 변화되기를 기다렸지만 그게 되지 않자 결국 홍 감독은 비판을 감수하면서 자기 소신을 굽혔습니다. 홍 감독은 선수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박주영이 아스널에서 뛰지 못하고 있을 때 "다른 팀으로 옮겨라"라고 말했지만 팀을 옮기지 않은 박주영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홍 감독은 자신의 소신을 버렸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로 인해서 나돌 온갖 억측을 무릅쓰면서 왓포드에서도 부진한 박주영을 안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박주영 카드는 실패했지만 과정에서 홍 감독이 자신이 쌓아온 명성과 이미지를 구기면서까지 노력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홍 감독이 내놓은 최종엔트리에 대해 '의리'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의리 논란의 핵심은 홍 감독이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들에게 월드컵 출전권을 '선사'하기 위해서 선수를 뽑았느냐 입니다. 저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게 걸린 월드컵에 뛸 선수를 뽑으면서, 자신이 완전히 망할 수도 있는 위험성이 농후한 월드컵에 나설 선수들을 뽑으면서, 월드컵 출전권을 선물로 나눠줄 감독은 세상에 없습니다. 안정환 해설위원 말대로 의리는 선수들이 감독에게 지키는 것이지 감독이 선수들에게 베푸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홍 감독이 왜 런던올림픽 멤버로 갈 수 밖에 없었을까요. 그건 아주 간단, 명료합니다. 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자신이 확실히 아는 선수는 런던올림픽 때 23세 이하, 지금 25세 이하 선수들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이들은 홍 감독이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부터 함께 해온 선수들입니다. 그만큼 홍 감독과 선수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고 그만큼 월드컵 준비를 본격적으로, 신속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감독이라고 해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홍 감독이었다고 해도 십중팔구는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게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확실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월드컵이라는 강호들이 출전하는 세계 최고 대회에 감독 자신조차 확실히 알지 못하는 선수를 많이 뽑았다면, 그것이야 말로 엄청난 무리수이며 이해하기 힘든 모험수였을 겁니다. 즉, 홍 감독이 런던올림픽 대표팀 위주로 월드컵 대표팀을 꾸린 것은 의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 있게 알고 있는 틀 속에서 가장 적당한 선수를 선택한 것뿐입니다. 맞습니다. 그 틀이 너무 좁았습니다. 그건 홍 감독이 19세 이하 대표팀부터 23세 이하 대표팀을 맡아왔기 때문에 그 이상 연령대 선수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선수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간이 부족한 홍 감독은 자신이 경험해보고 파악하고 있는 틀 안에서 선수를 고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지금 생각해도 그게 가장 안전하면서도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홍 감독은 그걸로 월드컵 승부를 걸었습니다. 물론 과정에서 홍 감독은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고집을 부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위 말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은 우도 범했습니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런대로 잘 했지만 잘못 판단한 부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월드컵 직전 전지훈련과 월드컵 기간 중 홍 감독의 실수와 판단 착오도 적잖았습니다(이 부분은 바로 다음 칼럼에 냉철하게 짚어보겠습니다. 홍 감독의 과오를 따질 필요도 있고 그게 홍 감독뿐만 아니라 다른 감독들도 곰곰이 되새겨볼 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홍 감독이 알고 있기 때문에 홍 감독은 "월드컵에 나설 준비가 가장 덜 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 때문에 월드컵에 실패했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이때도 홍 감독은 선수들을 비판하지 않았고 환경을 탓하지도 않았으며 1년 전 자신이 감독을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기억하지 않느냐며 반문하지 않았습니다. 홍 감독은 모든 게 내 탓이라며 모든 책임을 스스로 떠안았습니다.

지금 팬들은 홍 감독에게 너무 가혹하리만큼 거의 모든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홍 감독은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이를 온몸으로 받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희생양을 찾아낸 뒤 그를 거의 매장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경향이 짙습니다. 물론 책임을 져야할 사람을 찾아내 잘잘못을 따지고 짚을 건 짚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그 사람을 매장시키는 것보다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뼈아프게 반성하면서 반면교사의 근거로 삼는 데 있어야 합니다. 책임자 한명을 매장시키면 사람들의 속은 후련해질지 모르지만 그걸로 모든 걸 잊어버리고 모든 걸 묻어버리면 똑같은 실수는 언제가 반복될 수 있습니다.

신문선 교수(성남 FC 사장)는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3년 동안 감독을 세 번이나 바꾸는 등 이번 실패는 일찌감치 예견됐다"면서 "홍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너무 혹독하며 지금 중요한 것은 홍감독 거취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를 통렬하게 반성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홍 감독은 이미 명예를 잃었고 홍 감독에 대한 신뢰도 바닥을 쳤습니다. 홍 감독 경질을 지금 하든, 조금 후 하든, 홍 감독은 이미 팬들의 마음속에서는 경질됐고 국내 감독에 대한 믿음도 동시에 깨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홍 감독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비난하고 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운 뒤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홍 감독, 선수, 대한축구협회, 언론, 축구계 선배들 등 국내 축구계 모두가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잘못을 했는지 냉정하게 돌아보는 것입니다. 월드컵 부진으로 인해 상처받고 속이 터지는 팬들의 마음, 십분 이해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월드컵 전후 과정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우리 모두 잠시 심호흡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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