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꽃산 꽃글]뻐꾹채
뻐꾹뻐꾹.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북악산의 숙정문 앞 공터. 목요일의 오후 4시를 지나는 무렵이었다. 사연이 있다. 노고산 자락에서 학문에 열중하는 일군의 대학원생들이 야외수업을 겸해서 나들이를 왔다. 지도교수와는 오랜 친분이 있는 터라 어렵게 짬을 내서 안내를 자청하고 늙은 복학생이 된 기분으로 수업에 동참했던 것이다. 와룡공원에서 출발했다. 세월의 때를 시커멓게 묻혀가는 성곽과 그 곁에서 함께 늙어가는 식물들. 멀리서 보니 은사시나무가 훤칠하고 며느리밑씻개가 돌틈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말바위 전망대에 서니 북한산이 코끝에 걸리고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부촌인 성북동이 발 아래 엎드렸다. 대부분 초행인 듯 단 몇 분 만에 확보되는 시원한 시야에 모두들 감탄했다. 몇몇의 입에서 성북동 비둘기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과연 학생들다운 이야기. 지금 그들은 돈이 아니라 시(詩)를 논하고 있는 것이렷다. 안내소를 통과하니 금방 숙정문이 나타났다. 문 밖으로 나가자 작은 공터가 있고 우뚝한 소나무 아래 한낮의 정적이 고즈넉이 고여 있었다.
그때 저 멀리 팔각정 숲 어딘가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 뻐꾸기 소리를 들으매 퍼뜩 떠오르는 야생화가 있었다. 그것은 북악의 동생처럼 이웃한 인왕산에서 며칠 전 본 뻐꾹채였다. 얼핏 보면 흔한 엉겅퀴 같은 뻐꾹채는 내 허벅지를 찌르며 뻘쭘하게 뻗은 가지 끝에 보랏빛 꽃을 달고 있다. 아주 긴 궁리를 머릿속으로 깊게 하다가 이젠 바깥으로 뻥 터뜨려놓은 듯, 곱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생각의 힘!
4시를 지나는 중이었지만 뻐꾸기는 시계가 아니라서 두 번밖엔 울지 않았다. 뻐꾸기는 아무도 제 소리를 기억해 주는 이가 없자 입을 닫았는가. 뻐꾸기 울음은 호응해 주는 소리가 없자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는가. 북악의 뻐꾸기 울음을 홀로 받아 주고 있을 인왕의 뻐꾹채.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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