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나의 마지막 월드컵 중계를 떠나면서..

자카르타를 떠나 쿠알라룸푸르 경유 프랑크푸르트 .호텔에 짐만 풀고 다시 제네바로 갔다가 경기 마치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오니 고속도로 저 끝에서 날이 밝기 시작했다.36시간 만이었다.

2010년, 밤새 쏟아지는 별들을 구경하면서 포트 엘리자벳에서 케이프 타운까지 달렸던 남아공 월드컵의 기억이 떠올랐다.그날도 저녁 경기를 마치고 케이프 타운에 들어서는데 붉은 하늘 사이로 해가 뜨고 있었다.

이런 월드컵도 이제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하니 벌써 아쉬운 생각이 밀려온다.

오늘은 모스코바다.비행기로 새벽에 떠나서 러시아 대표팀 평가전을 보고 나면 내일은 브뤼셀로 이동한다. 벨기에의 평가전이 기다리고 있다.브뤼셀에서 저녁 경기를 마치고 또 다시 밤을 세워 새벽에 프랑크 푸르트로 돌아오면 반나절 정도는 충분히 쉴 수가 있다,

그리고 드디어 나와 두리 그리고 아내는 밤비행기를 타고 최종 목적지 브라질 리오로 떠날 것이다90년부터 시작한 월드컵 여행, 몸은 고단하지만 4년마다 경험하는 행복한 여행이다.

두리가 함께 해주기 시작하면서 나는 더 좋았고, 지금은 아들같은 중계팀 친구들의 보호[?]를 받으며 해설준비를 하고 있어서 이런 행운을 누리는 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

< 마지막 중계연습 >

'차범근이 마이크를 붙들고 90분을 떠드는 중계는 이번 브라질 월드컵이 마지막이다''차범근의 마지막 월드컵을 잘 마무리 해주고 싶다! 힘들지만 도와달라!'

아내는 SBS 스테프들을 쥐어 짜다가 염치없고 미안하면 이렇게 나를 팔아서 동정심을 유발해 쏴...! 한 분위기를 모면한다.하하하인정한다.나와 함께 일을 하는 것은 모두에게 고통이다.

강행군을 즐기는 노인을 누가 반가워 하겠는가! 거기다 나는 한국을 떠나면 한국음식을 거의 안 먹는다. 나와 함께 움직여야 하는 스테프들에게는 이 부분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 두리를 형이라 부르는 김찬헌 PD >

그래도 나에게는, 우리 월드컵 중계팀에는 찬헌이가 있다. 그동안 성재하고 두리가 나의 베프인 것처럼 알려졌는데 사실은 우리 모두의 호프이자 나의 기쁨조인 김찬헌 피디가 갑중의 갑이다.

지루한 이동을 하다가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노래 한 곡 하라!'고 아내가 신청한다. '댄서의 순정'을 시작으로 몇 곡을 뽑아대는데 주로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 씨의 노래다. 찬헌이의 노래솜씨에 여기저기서 불만이 쏟아진다.

성재는 자기는 안부르면서 비웃기까지 한다. 그래도 꿋꿋하게 부른다. 사진에 있는 이 친구가 김찬헌 피디다.

이 얼굴로 두리한테 형이라고 부르면 나도 깜짝깜짝 놀란다. 그런데 두리가 형 맞단다. 찬헌이 옆에 서면 세상사람들이 모두 돋보일 수 있기 때문에 아내는 찬헌이를 무척 좋아한다. 심지어 나까지도 돋보이게 해주는 능력.

성재는 바로 저 못생긴 얼굴이 찬헌피디의 재산인데도 불구하고 본인은 실력이 뛰어나서 우리 중계팀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줄 안다며 불만이 대단하다. 그러면서 정작 성재 자신은 '요즈음은 SBS 사장님보다 내가 더 바쁘다'며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강조한다.

사실 우리중에 그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 바쁘고 다 실력이 출중한 최고의 인재들이다. 특히 우리 찬헌이의 실력은 대단하다. 아이디어와 위트감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모두를 웃게한 월드컵 CF 가 모두 찬헌이 작품이다. SBS 월드컵 CF는 찬헌이를 닮아서 다 즐겁고 유쾌하다. 긴장되고 힘든 여행에서 찬헌이의 존재감은 가히 최고라고 해야 한다.

< 운동후 빨래는 호텔에서 >

월드컵 여행은 힘들다. 나처럼 매일 운동을 하는 사람은 땀에 젖은 빨래도 해야한다. 자동차 안에서 쪽잠도 자야한다.고속도로 식당에서 우리의 식생활을 거의 해결한다. 그중 매일 짐을 꾸리고 푸는 일은 정말 귀찮다.

어떤 기자가 월드컵때마다 챙기는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물어서 '엄청난 짐을 풀고 챙기는 두리엄마'라고 했던 적이 있다.아마도 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이 일이 얼마나 귀찮은지 바로 동의 할 수 있을 것이다.

< 자동차 안에서 쪽잠은 이렇게 >

월드컵에는 32개 나라가 참여한다.이 32개 팀의 경기를 분석하는 일은 해설위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다.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이나 방송국 자료를 통해서 대부분의 경기를 볼 수 있다.우리와 같은 조인 라시아 알제리 벨기에 같은 경우는 팀당 10-15경기, 그외에 팀들은 5경기 정도를 보고 준비한다.

엄청난 숫자다.물론 8강 이상 기대되는 팀들의 경기는 수도없이 끊임없이 봐야한다. 세계축구의 흐름을 리드하는 팀들이기 때문이다.지난 일년동안 거의 매일 하루에 한두 경기씩 보고 익혔다. 그러나 월드컵이라는 전쟁을 앞두고 각나라 팀들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변화를 주면서 전술적으로, 전략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는다.

우리는 그 변화를 쉬지않고 주시하고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시청자들에게 책임있는 설명을 해줄수 있다.방송할 팀들을 완전히 숙지해야만 나는 마음이 편해서 방송을 제대로 할 수 있다.

< 나의 베프들 >

SBS 에서 의뢰한 여론 조사에서 월드컵을 SBS 로 시청하겠다는 답이 80% 를 넘었다고 알려줬다.굉장한 부담감이다. 그리고 엄청난 책임감을 느낀다. 갑자기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성재가 있고 두리가 함께 하는데다 찬헌이까지 있다.

준비한 만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마지막 월드컵이 여러분들에게도 즐거움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또다시, 월드컵은 SBS!!!!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