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첨성대는 '피사의 사탑'인가
"물리학의 법칙을 부정했다."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을 두고 하는 말이다. 1173년 착공된 피사의 탑은 생기지 말았어야 할 건축물이었다. 부드러운 진흙 토양 위에 건립됐기 때문이다.
공사는 5년 만에 중단됐다. 4층까지 쌓자 탑이 약 7인치나 기우뚱한 것이었다. 이후 공사재개(1272년)-재중단(1278년)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370년에야 완공됐다. 하지만 이미 2m(약 2.8도) 이상 기울어진 사탑이 됐다. 19세기에 들자 1층의 한 부분이 땅속으로 3m나 푹 들어가고 말았다.
1838년 탑의 하부구조를 파악하려고 땅을 파보자 지표 아래에서 물이 용솟음쳤다. 한마디로 피사의 탑은 물 위에 지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1933년 무솔리니의 지시로 탑의 기초 속에 시멘트 80여t을 주입했다. 그러나 도리어 탑의 균형이 깨지고 더욱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보수공사가 결정된 1990년 탑의 기울기는 5.5m(약 5.6도)나 됐다. 탑의 높이가 약 50m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10%가량이 기울어졌다는 뜻이다. 건축학적으로 10% 이상의 기울기라면 탑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5.44도 이상의 기울기에서는 결코 피사의 사탑을 세울 수 없었다. 그러니까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물리학의 법칙을 부정한, 불가사의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기울어지지 않은 탑의 북쪽 흙을 36m가량 빨아들여 균형을 맞추려 했다. 그 덕분에 탑의 기울기는 0.5m 줄어든 5m(1700년대 수준)로 맞췄다.
그렇다면 첨성대는 어떨까. 최근 감사원은 첨성대가 북쪽으로 200㎜(1.95도) 기울고(2009년), 2013년에는 204㎜로 더 심해졌다고 발표했다(그림). 해마다 평균 1㎜씩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지나친 호들갑이 아닐까. 4㎜ 정도는 측정기구와 측정방법에 따른 오차범위 이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침소봉대' 감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첨성대의 하부에 피사의 사탑과 달리 불규칙한 침하(최대 161㎜ 부등침하)가 발생하고 있는 점은 찜찜하다. 불규칙 침하이다 보니 상부구조물 부재 간 벌어짐이나 균열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니까 첨성대는 피사의 사탑 단계는 아니지만 '요시찰 국보(31호)'인 것만은 사실이다. 요즘 부쩍 첨성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어찌됐든 감사원의 공이 아닌가 싶다.
< 이기환 사회에디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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